- 흥남철수 때 피란민 가족부터
- 요즘 아이들 모습까지 그려내
동시집이 이렇게 특별한 짜임새를, 이토록 간결하게 건너오는 아름다운 감흥을 간직할 수 있구나. 동시집이자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동시집 ‘명태를 타고 온 아이’를 한 장 한 장 펼쳐 읽으며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인 홍정화, ‘건너온 사람들’과 ‘사이의 도시’ 등 6·25 전쟁 피란민의 삶을 담은 만화를 2권을 최근 펴낸 홍지흔 작가가 함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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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집 ‘명태를 타고 온 아이’에 수록된 삽화. 책상통신 제공 |
‘명태를 타고 온 아이’에 나오는 주인공 가족을 소개한다.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여덟 명의 어린 자녀들은 ‘기적의 배’라고 부르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흥남에서 거제도로 피난을 왔습니다.”(홍정화 시인이 쓴 머리말 중) 이 책을 지은이는 이런 가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 때 북한 흥남에서 우리 동포 1만4000명을 안전하게 데려와 준 고마운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넉넉한 이미지와 따스한 품이 이 책의 바탕을 이룬다.
시인 홍정화는 ‘그때 그 시절’ 이야기부터 요즘 가족과 아이들 모습까지 동시로 그려내고 홍지흔은 부드럽고 재기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과 동시가 잘 어울리기로는 첫 작품 ‘명태를 타고 온 아이’를 먼저 꼽게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피난 이야기는 쏙 빼고/ 명태 타러 가자고 둘러댔어요/ 아이들은 씩씩하게/ 바다를 건너왔어요/ 지느러미에 올라타고/ 꼬리를 붙잡고/뱃속에 들어가/낮잠도 잤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들도 명태도/ 서로를/ 잊지 않았어요” 이 작품에는 큰 명태에 피난민 수십 명이 올라탄 멋진 그림이 있다.
동시 ‘피 뽑는 날’이다. “아버지 옆 마을 가서/피 뽑아주고/ 곡식 얻어온다는 말에/ 밤새 울었습니다./아버지 피와 바꾼 쌀이라니/ 형이 숟가락을 놓았습니다/잡초라고요? /이름 좀 바꿔주세요/ 땅도 피를 뽑아야/ 먹고 산단다” 어린이 독자가 ‘피’를 잘 알는지 모르겠지만, 어른 독자는 이 동시 앞에서 빙그레 웃음이 나고 만다.
‘눈치 99단’은 재치있다. “눈이 내려오다가/ 눈치를 채고/ 재빨리 비로 변신/ 북쪽 고향 생각에/ 피난 온 아이들/ 펑펑 울까 봐/ 눈이 내려오다가/ 눈치를 채고/ 숨을 들이마시며/ 훕!/그때부터였을까?/ 남쪽 바닷가에서/ 눈을 보기/힘들어진 때가”
전쟁의 아픔, 할머니와 손자, 품어주는 마음, 돌보는 마음이 환하게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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