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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54> 부산 온천동 출토 명문기와

기와에 새겨진 이름, 고려시대 부산 대표 호족가문 추정

  • 김동윤 복천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3-05-15 19:26:05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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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거리를 지나다 곳곳에 달려있는 연등을 보면서 ‘부처님 오신 날’이 곧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중에는 이름과 저마다의 기원을 담은 연등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부산 온천동에서 출토된 명문기와. 부산박물관 제공
어디 여행을 가거나 나들이 삼아 사찰을 방문해 보면 연등뿐만 아니라 기와에도 시주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사업번창’ ‘수능대박’ ‘건강기원’ 등 각자의 소망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기와불사’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인근 차밭골 유적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에서도 이처럼 ‘고려시대판 기와불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부산박물관 동래관 고려 시대 전시실에는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기와 2점이 있는데, 기와 표면에는 군데군데 결실된 한자 명문이 좌우가 반전되어 찍혀있다.

원래 기와를 만들 때는 ‘戶長同正鄭諧(호장동정정해) 戶長同正鄭子赫(호장동정정자혁)’이라는 명문이었을 것이다. ‘호장’은 지방 향리의 최고위직, ‘동정’은 일정한 직무가 없는 관직[散職], ‘정해·정자혁’은 사람 이름이다. ‘호장이면서 동정직(職)을 겸직한 정해와 정자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고려 시대 부산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정해와 정자혁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과정 중 지방에서 실질적 지배자로 활동하였던 호족(豪族) 세력들은 중앙에 편입되거나, 지방행정의 실무를 담당하는 향리(鄕吏)층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 부산의 향리 가운데 대표적인 세력은 ‘동래정씨(東萊鄭氏)’ 가문이었는데, 이들은 부산의 토착 세력으로 가문 대대로 호장직을 맡았던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다.

명문 기와에 남은 정해와 정자혁이라는 인물도 정씨 성을 가진 호장이었다는 점에서 동래정씨 가문의 일원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까지 사료나 동래정씨 족보에서 동일한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는 추정에 그칠지도 모르겠지만, 기록 속에 등장하는 동래정씨의 흔적을 유물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동일한 명문을 가진 기와가 고려 시대 부산의 행정중심지로 생각되는 망미동 동래고읍성에서도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향리의 유력자 이름이 찍혀 있었다는 점에서 온천동 차밭골 유적도 동래고읍성에 버금가는 행정시설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려 시대를 살았던 정해와 정자혁이 본인과 가족들의 무병장수와 건물 수축에 있어 무사고를 기원하며 기와에 본인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무리한 추측일까. 지금의 ‘기와불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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