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삼동 유적 ‘흑요석’은 日 규슈산
- 선사시대부터 양국왕래 시작 증명
- 한민족 설움·희망 서린 부산항 등
- 시그니처급 문화 자산이 주렁주렁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도시를 알고 싶은가? 역사부터 살펴라. ‘부산 역사’를 X축으로, ‘월드엑스포’를 Y축으로 삼은 그래프를 상상한 뒤 X와 Y가 만나는 항목을 떠올려 보았다. 개방성·교류·화합·모색 등을 특징으로 하는 월드엑스포(Y축)와 짝을 이룰 만한 요소를 부산 역사(X축)에서 꼽아보았다. ‘기억의 도시’로서 부산은 품이 넓어서 흥미로운 ‘좌푯값’을 여럿 길어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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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대교 아래 유라리 광장에 서 있는 피란 가족 조형물.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안전과 자유와 평화를 찾아 부산으로 몰려든 전국의 피란민을 상징한다. |
■ 패총과 흑요석-선사시대
부산 영도구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있다. 동삼동패총은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를 잘 보여주는 타임캡슐 같은 유적·유산이다. 신석기인이 만든 유명한 조개 가면부터 빗살무늬토기 동물뼈 장신구 음식물 유적 등 다채로운 유물이 있다. 그 속에서 흑요석과 죠몽토기도 출토됐다. 동삼동패총의 설명문을 그대로 가져와 보자.
“흑요석은 유리질의 화산암으로 가벼운 타격으로 예리한 날을 만들 수 있으므로, 석기시대에는 가공하여 칼 화살촉 등으로 사용하였다. 성분에 따라 원산지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한반도 남부지역 흑요석은 대부분 일본 북부규슈산으로 밝혀졌다. 죠몽토기와 더불어 신석기시대 한일 간의 활발한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다.” 부산은 선사 시대부터 열린 고장, 교류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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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삼동패총전시관의 신석기 시대 조개 껍질 가면(왼쪽)은 선사 시대 인류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오른쪽은 일제강점기 부산~시모노세키를 오간 연락선 고려환. 국제신문 DB |
■ 세계 향해 문을 열다 - 개항
조선 시대인 1407년(태종 7년) 조정은 처음으로 부산포와 내이포(진해)를 열고 왜관을 설치한다. 부산 학계에서는 이를 부산항 제 ‘1차 개항’ ‘자주적 개항’으로 보곤 한다. 1407년 조정의 결정으로 바깥세상을 향해 문을 연 뒤로 부산항은 지금껏 616년 동안 닫힌 적이 없는 소통의 요충이었다. 일본의 압력에 밀려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고 부산항 등을 개항한다. 부산에서는 이를 2차 개항으로 칭한다. ‘근대 개항’이라고도 한다.
조선에 닥친 근대는 외세의 압력과 폭력을 타고 왔다. 근대 시기 부산의 영욕은 실상 이즈음 시작됐다. 1차 개항과 2차 개항 사이 ‘왜관 시대’가 수백 년 부산에 있었음을 놓쳐선 안 된다. 왜관은 조선-일본 교역이 이뤄진 곳이다. 최근 장편소설 ‘두모포왜관수사록’을 펴낸 작가 배길남은 “두모포왜관 시대부터 부산은 동북아 허브로 떠올랐다”고 했다.
■ 소설 ‘파친코’ - 일제강점기
작가 이민진이 쓴 장편소설 ‘파친코’ 주인공 선자의 집은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다. 그래서 이 소설엔 태종대도 나오고 자갈치시장도 나온다. 어떤 인물은 평양에서 왔고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왔다. 선자는 일본 오사카로 간다. 오사카 쓰루하시 시장 야키니쿠 식당도 중요한 장소다.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미국으로 간다. 미국에서 미국계 조선인 피비를 만나 사귀다 다시 일본으로 간다.
이 모든 일은 부산에서 시작한다. 부산을 하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외침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새로운 고통이 집결한 곳도, 서로 사랑하며 꿋꿋이 살던 가족이 새 삶을 꿈꾸며 떠나버린 곳도 이 도시다. 선자뿐이겠는가. 일제강점기 한민족이 한반도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본 고국산천도, 일본 패망 뒤 돌아오며 처음으로 본 하늘과 바다도 부산이었다.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드라마와 스토리가 있겠는가.
■ 피란수도 1023일 - 6·25
국제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 출신 대문호 나림 이병주(1921~1992) 선생이 쓴 대하소설 ‘산하’ 제4권(1989년 늘푸른출판사 간행본 기준) 한 대목이다. “그 무렵의 부산 -. 피난민이 한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여간 분뇨의 냄새보다도 강한 불안이 부산을 휩쓸고 있었다. 서울서 대전,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이곳까지 올 때는 그래도 부산이라고 하는 갈 곳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피난을 해야 한다면? … 그렇게 해서 부산은 불안의 도시였다.” (제16장 허상과 실상)
6·25 한국전쟁 시기 부산 모습이다. 그때 부산은 임시수도가 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보듬어 지켰다. 모든 게 일촉즉발이었던 냉전 시대, 평화를 지키는 데 이바지했다. 부산은 현재 피란 수도 1023일의 ‘기억’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노력한다. 이 도시엔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다. 부산항은 ‘유엔헌장을 최초로 실천한 현장’으로 꼽힌다.
■ 산복도로 - 산업화 시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 정보가 있다. “2022년 5월 16일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부산 산복도로에서 86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40년 경력 버스 기사님이 달인으로 소개됐다.” 86번이면 부산진구 범곡교차로에서 산복도로 구간에 접어든 뒤 성북고개를 넘어 동구를 관통하고 중구 국제시장까지 내처 달린다. 부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짜릿함을 함께 느끼고 싶으신가? 산복도로로 가는 버스를 타시라! 산복도로는 부산의 시그니처급 문화 자산이다.
6·25 전쟁 때 생고생하며 한국을 지킨 부산은 전쟁 참화는 겪지 않았다. 적은 부산까지 오지 못했다. 그래서 수많은 피란민이 일시에 몰려왔다. 산업화 시대가 오면서 일자리를 구하러, 제조업 끝판왕이자 대도시였던 부산으로 전국 젊은이가 몰려왔다. 땅도 길도 집도 모자랐다. 부산은 도로를 산으로, 고지대 사이로 내기 시작했다. 이게 산복도로다. 산복도로를 달리면 부산의 심성과 문화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