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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부터 중세 기독교까지, 피로 물든 문화유산 역사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10> 로마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3-12 18:58:4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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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술 절정 콜로세움·판테온
- 수천년 버텨온 산탄젤로 다리
- 한때 처형 시신 진열 장소 사용
- 무수한 삶과 죽음 껴안은 도시

- 가장 작지만 강한 나라 바티칸
- ‘피에타’‘천지창조’‘아테네 학당’
- 종교의 힘과 후원 덕에 이뤄낸
- 세계 최고 박물관이자 미술관

유럽의 도시 역사에서 언덕은 늘 권력과 방어의 상징이다. 로마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기원전 10세기부터 로마의 언덕 중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에는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로마제국의 건국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쌍둥이 형제인 레무스의 신화로부터 시작된다. 거사에는 늘 피가 따르게 마련임을 암시라도 하려는 듯, 그 역시 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고 팔라티노 언덕에 나라를 건국하고 자신의 이름을 본 따 로마라 명한다. 로물루스는 신분과 상관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로마의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여성의 수를 늘려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 이웃 부족인 사비니의 여인들을 납치한다. 비록 시작은 잔인했지만 다행히 이 여성들의 중재로 고대 로마는 한동안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진다.

팔라티노 언덕과 맞은 편 언덕 사이에 자리한 저지대에 ‘포로 로마나’가 있다. 고대에는 양쪽 언덕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면서 교역 행정 정치의 중심이 되었고, 현대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여행객들을 위한 관광 중심지가 된 곳이다. 현재는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약탈돼 폐허와 흔적으로만 남았지만, 과거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그 중심에 있던 곳이다. 포로 로마나는 그리스의 아고라와도 같은 곳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광장이 날로 팽창하자 국가는 개인 주택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후 이곳에 공공기관과 신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고대 로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카이사르를 살해한 후 화장한 곳이고, 공화주의자였던 키케로가 안토니우스에 의해 살해된 후 머리와 두 손이 내걸려진 곳도 이곳이다. 공화정이 막을 내리면서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으로 변모했으나, 제국과 이탈리아 근현대사의 극변 속에서 포로 로마노는 점차 잊힌 채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 그러니 포로 로마나는 로마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함께 해 온 곳이라 하겠다.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밤이 되자 조명을 밝힌 바티칸 시국.
■콜로세움

포로 로마나를 벗어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향한다. 개선문 바로 옆이 로마의 또 다른 상징인 콜로세움이다. 이탈리아어로는 ‘콜로세오’라고 불리는 이곳은 원도심의 정중앙에 자리하는데 원래는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이 있던 터다. 네로 사망 후의 혼란기를 평정하면서 황제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가 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기장을 건립을 시작했는데 당시 예루살렘 정복에서 노예로 데려온 유대인들이 일꾼으로 동원됐다. 최대 8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서기 70년대 건축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콜로세움의 관중석 사이를 걸으며 문득 2000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들의 피를 보며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 잔인했을까. 하지만 불현듯 그 잔인함이 당대만의 시대상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 원 한가운데 갇힌 채 싸움을 강요당한 사람이 살기 위해 싸우다가 끝내 죽거나 죽이는 모습을 둘러앉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잔인한 군중의 모습은 20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작금의 시대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형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집단 왕따나 인터넷상에서의 가혹한 조리돌림과 같은 모습이 “죽여라”를 외쳐대던 콜로세움의 관중과 무엇이 다를까. 시대 변화에 따라 사디즘의 광기 역시 형태를 달리하며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판테온

판테온 내부. 돔 천장의 커다란 눈과 대리석 바닥 위 배수구를 보면 고대 로마 건축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콜로세움의 외적 웅장함과 그 내적 잔인함을 뒤로 한 채 30여 분을 걸으면 유럽 돔 지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판테온’에 도착한다. 서기 125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재위 때 세운 것으로, 원래는 판테온(Pantheon)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었다. 이후, 가톨릭이 국교가 되면서 가톨릭교회로 사용되었고 그곳에 모셨을 로마 신들의 동상 역시 기독교 동상과 영웅들로 교체됐다. 여러 시대적 중요 인물과 함께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판테온의 내부는 최대 6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홀로서 돔 형태의 천장 한가운데는 ‘커다란 눈’(오쿨루스)이라 불리는 개구부가 있다. 창문이 없는 판테온의 환기구이자 자연조명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는 듯하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가 돔 설계 지식을 이곳에서 배웠다. 천장을 통해 빗물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대리석으로 된 바닥 정중앙과 가장자리 곳곳에 만들어 놓은 배수구 구멍조차 감탄을 감출 수가 없다.

■종교를 묻다

판테온에서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그곳에 ‘트래비 분수’가 있고, 온 만큼을 더 걸어가면 넓은 광장과 함께 스페인 계단이 나타난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 ‘로마의 휴일’은 여전히 로마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곳의 수 많은 관광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파를 뒤로한 채 다시 계단 오른쪽으로 길게 나 있는 콘도티 거리를 따라서 20여 분을 걸어가면 강이 나온다. 테베레강이다. 그 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다시 조금만 내려가면 아름다운 다리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산탄젤로(영어로는 Saint Angel에 해당) 다리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 중 하나인 바티칸 시국으로 이어주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베드로 광장과 성당이 나타난다. 종교적 의미를 넘어 중세 기독교 문명이 남긴 문화유산과도 같은 곳이다. 베드로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조각상인 ‘피에타’가 있다. 그리고 중세 기독교의 후원으로 가능했던 천재들의 거대한 캔버스라 할 수 있는 시스틴 성당이 이곳 바티칸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같은 인간이 그렸다고 믿어지지 않는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그러기에 종교적 공간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자 미술관이기도 한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거대한 성전과 화려한 실내 장식들, 그리고 아들의 주검을 안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 조각상까지도 가난하고 버림받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 온 예수의 가르침을 느끼기에는 왠지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역사 속 종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와 과학 문명이 지배적인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 참된 종교가 걸어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기에 더욱 적절해 보인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은 분명 보이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종교의 힘과 후원 덕택으로 이룰 수 있었던 찬란한 문화유산들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탄젤로를 건너며

테베레 강을 건너는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인 산탄젤로 다리.
바티칸 시티를 나오면서 다시 산탄젤로 다리를 건넌다. 다리 양옆에는 이름에 걸맞게 예수 고난의 상징들을 들고 있는 천사들 조각상이 서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다리가 한때는 처형장과 처형당한 시신을 진열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베아트리체 첸치다. 베아트리체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로마 최고의 미녀라고 소문났던 친딸 베아트리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게다가 딸이 이를 교황청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사실에 분노하여 그녀를 외딴 성에 가둔다. 귀족 신분이자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한 프란체스코를 아무도 처벌하지 못할 것이란 걸 알고 베아트리체와 그녀의 계모와 형제, 하인들은 함께 그를 살해한 후 실족사로 꾸민다. 그러나 사실이 밝혀지면서 베아트리체의 어린 남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담자들이 처형당한다. 베아트리체 역시 목을 잘리는 처형을 당하는 데 그곳이 바로 이 산탄젤로 다리 위다. 그녀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던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귀도 레니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리고 훗날 그의 제자이자 17세기 이탈리아 여성 화가 엘리사베타 시라니가 스승의 그림을 모사해 다시 그녀의 터치로 그려내는데 이 그림이 더 유명하다. 강압적인 아버지를 둔 딸로서의 여성적 공감이 담겨서일 것이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다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남겨진 자료 연구를 통해서다. 그러니, 어쩌면 화가들이 남겨 놓은 그녀의 순수하면서도 가련한 이미지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이 아닌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가짜를 믿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악한 아버지의 어린 희생양이었다는 것만은 진실인 듯하다.

무구한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현재의 로마로 이어졌다. 그 장구한 세월을 껴안은 채 이 도시는 또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그리고 국가라는 수레바퀴 아래서 묵묵히 바퀴를 굴리고 있는 시민의 삶은 또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 역사에 귀를 기울인 채 지혜의 길로 이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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