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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9> 부산 해장국 ‘생선 맑은국’

계절마다 속 풀어주는 놈 따로 있다, 뽀얀 생선국의 향연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2-28 19:01:5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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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난류 합쳐지고 섞이는 지역
- 겨울 대구·봄 도다리·여름 참돔…
- 수 십 가지 수산물 탕거리 풍성

- 제철무 대파 넣고 시원하게 끓인
- 술상 밥상 넘나드는 특별한 음식

집안 어른의 아침상에는 늘 속풀이를 겸한 뜨겁고도 시원한 국이 큰 대접에 한 그릇씩 올라왔다. 조개 특유의 향이 잘 우러난 뽀얀 재첩국이나 말린 명태, 북어를 쫙쫙 찢어서 참기름에 달달 볶아 끓여놓은 북엇국, 오징어 한 마리 조근조근 채 썰어 무와 함께 시원하게 끓여낸 오징어국….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싸고 양 많은 계절 생선을 넣고 숭덩숭덩 삐져낸 무와 어슷하게 썬 대파를 풍성하게 넣고 끓여낸 ‘생선국’만한 것은 없었다. 연신 “어허, 어허~ 시원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던 국이 생선국이었다. 이 생선국은 집안 어른이 약주 드신 다음 날 단골로 밥상에 올라왔던 밥국이자 해장국이었다.
가덕도 대구탕 한 상. 겨울에 특히 맛있다고 알려진 대구탕은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에 임금도 좋아하던 귀한 음식으로 알려졌다.
■제철 생선으로 다양한 생선국 즐겨

우리 민족만큼 국과 탕을 좋아하고 즐겨 먹는 이들이 또 있을까? 오죽하면 정식 밥상 구성에 밥과 함께하는 국이 메인 음식이다. 우리 민족의 특징을 잘 반영한 국과 함께 즐기는 ‘습식문화(濕式文化)’, 국과 밥을 주식으로 하는 ‘탕반문화(湯飯文化)’라는 용어들이 학술 및 문화어로 정착한 것도 국을 사랑하는 우리 음식 정서에 기인한 것이겠다.

장터에서 유래한 장국밥도 국밥의 유래이기도 하지만 국에 밥을 말아 설렁설렁 패스트푸드화한 ‘국 문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입맛 없을 때 국에 밥을 말아 먹는 행태도 국이 우리 음식문화에 미치는 기여가 상당하다. 부산 사람들 또한 뜨거운 탕국에 진심이다. 조그마한 백반집에서도 넉넉한 국이 사람을 반긴다. 바다에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주로 해산물을 이용한 탕국이 많다. 국물을 내는 재료도 멸치 같은 다양한 말린 수산물을 활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탕국의 재료 또한 지천으로 널린 수산물이다. 특히 생선을 넣고 끓여내는 생선국은 그 종류만 해도 손에 꼽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잡내가 없는 흰살생선뿐만 아니라 체취가 강한 붉은살생선 또한 주요 식재료로 쓰인다는 점이다.

조리법도 고추장으로 국물을 내는 매운탕에서부터 생선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맑은국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맑은국은 밥상 술상을 가리지 않고 식탁에 오른다. 칼칼하게 끓여낸 매운탕은 술안주로 생선회와 더불어 먹는다면, 맑은국은 그 경계 없이 즐겨 먹는 탕국이겠다.

그러하기에 생선 맑은국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인 생선국으로 자리 잡아 널리 즐겨 먹는 음식으로 정착했다. 그 이유는 신선한 생선을 계절 따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기에 생선마다 지닌 특유의 체취, ‘맛의 지문’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겨울은 생선 맑은국의 향연

경남 통영에서 즐겨 먹던 물메기탕.
부산의 생선 맑은국은 계절마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봄에는 도다리를 비롯한 가자미국, 숭어 맑은국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참돔 맑은국과 서낙동강에서 올라오는 까치복국, 가을에는 깊은 수심에서 올라오는 대형 어류 돗돔 뼈로 끓여내는 돗돔뼛국과 다양한 잡어로 끓여내는 바다 추어탕까지….

부산은 겨울에 생선 맑은국의 향연이 펼쳐진다. 북쪽 오호츠크해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대구로 끓이는 가덕도의 대구탕부터 한류 따라 남하하는 밀복으로 끓여 먹는 기장의 밀복국, 기장과 다대포에서 별미로 먹을 수 있는 활 아귀탕, 겨울마다 남해 전역에서 넉넉하게 올라와 사람 입맛을 기껍게 하는 물메기탕도 있다.

요즘 저장시설과 원양어업의 발달로 사계절 생선 맑은국을 즐길 수 있는데 그중 대중화된 것이 복국일 것이다. 부산 사람들이 널리 즐겨 먹는 생선 맑은국이면서 치명적인 독성에도 ‘이독치독(以毒治毒)’의 건강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식사를 청하거나 해장을 권할 때 부산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복국 한 그릇 하러 가까?’다. 복국 종류도 다양하다. 복국의 최고 경지 ‘참복국’부터 해장하기에 그저 그만인 ‘까치복국’, 깔끔한 맛이 일품인 겨울 진객 ‘밀복국’, 살점 발라먹기가 쏠쏠한 ‘졸복국’, 사시사철 가장 대중화된 ‘은복국’…. 그만큼 부산의 식단에서 복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겨울에는 단연코 대구탕과 물메기탕이다. 이들로 끓여낸 탕을 맛보기 위해 일 년을 기다린다는 이도 많다. 대구는 겨울에 맛있다고 이름마저 ‘눈 설(雪)’ 자를 차용한 설어(鱈魚)이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에 임금도 좋아하고, 집안 어른 겨울감기를 저어해서 올리는 귀한 음식이기도 하다. 진해만 가덕수로에서 우리 식탁에 오르는, 푸드마일리지가 착한 향토 식재료이다.

물메기는 원래 통영에서 즐겨 먹던 식재료이다. 물메기를 말려 뒀다가 된장국에 넣고 끓여 먹던 음식이었는데, 부산 사람들은 그 시원한 맛을 못 잊어 겨우내 회로 먹고, 탕으로도 먹는다. 물메기 껍질을 국수처럼 후루룩 삼키거나 등뼈에 붙은 점액질을 쪽쪽 빨아먹는 것도 별미다.

아귀탕도 괜찮다. 부산말로 큰 입을 뜻하는 ‘아구’는 부산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다. 부산 사람들이 사계절 즐겨 먹는 향토음식 ‘아구찜’이 상식(常食)이라면, ‘아구탕’은 겨울 별식쯤 되겠다. ‘바다의 푸아그라’라 할 만큼 짙고 고소한 풍미를 자랑하는 애를 넣고 끓이기에 생선 맑은국 중에서는 뻑뻑하고 덜 맑은 편이다. 그만큼 진한 맛을 내는 음식이다.

봄바람이 느껴질 때면 단연코 가자미국이 일품이다. 가덕수로 진해만을 비롯해 통영, 거제 등지에는 봄의 전령 ‘문치가자미’(도다리)가 기지개를 켠다. 이를 잘 장만해 갓 올라온 애쑥을 한 움큼 넣고 끓이는 도다리쑥국은 봄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봄을 맞는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전설의 물고기’ 구수한 돗돔뼛국

부산에서도 특별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 맑은국에는 ‘돗돔뼛국’과 ‘눈볼대국’이 있다. 돗돔은 부산 앞바다에 초여름 출몰하는 대형 어류로 ‘전설의 물고기’로 통한다. 300~500m 수심 깊은 곳에 서식하는 심해어로 길이 2m, 무게 150㎏까지 나가는 어종이다. 충무동 부근의 선어 횟집에서만 운수(?) 좋을 때 회로 먹을 수 있는데, 이때 함께 딸려나오는 음식이 ‘돗돔뼛국’이다. 워낙 덩치가 커 돗돔 등뼈와 부산물로 끓여내는 돗돔뼛국은 마치 ‘곰국’을 먹듯 진하고 구수한 맛이 제대로이다.

영도 남항동 물회 골목에 가면 여러 종류의 물회를 맛볼 수 있는데, 특히 눈볼대 물회는 감칠맛과 고소한 맛으로 인기가 높다. 눈볼대 물회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국이 ‘눈볼대국’이다. 입에 착착 감기는 국물 맛에 숟가락을 연신 놀리기 바쁠 정도이다. 몇몇 식도락가는 물회보다 이 눈볼대국을 먹기 위해 찾을 만큼 은근하게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동해와 남해의 경계 지역 부산. 한류와 난류가 합쳐지고 뒤섞이는 지역인 데다 동남해 어장에서의 수산물류의 공급이 수월해 다양한 수산물이 풍부하고 신선한 곳이다. 게다가 생선 본연의 맛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음식 하나라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미각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 부산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은 생선이 가지고 있는 제맛을 다루는 조리법에 익숙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생선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극대화해 깊고 풍성한 풍미를 제공하는 부산의 생선 맑은국. 부산에서나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생선 맑은국으로, 봄날의 미각을 제대로 살려보는 것도 ‘입춘지절(立春之節)’의 묘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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