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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갈망한 저항도시…카프카·쿤데라 낳은 문학도시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5> 프라하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2-05 19:36:56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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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중심지서 이중제국 속령
- 공산당 독재 거쳐 독립 국가로
- 격동의 세월 버텨온 골목골목

- 교황청 거역한 사제의 저항정신
- ‘프라하의 봄’ 운동으로 이어져
- 카프카 동상·매달린 프로이트
- 삶의 본질 묻는 조각물 곳곳에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연인을 위한 데이트 도시로도 어울리고 고독을 즐기려는 혼자만의 여행지로도 좋다. 찾는 이가 누구든지 이방인을 위해 문을 열고 따뜻하게 반긴다. 도시가 주는 환대는 프라하 구도심 건물들의 특이한 구조에서부터 느껴진다. 나이가 많은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길게 나 있는 작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인 듯한 곳에 다다른다. 길이 없어야 하는 그곳에 벽 대신 건물을 연결 짓는 아치형의 통로가 있다. 프라하는 건물을 지을 때 길과의 연결을 먼저 생각하고 설계한 듯하다. 도시 전체가 닫힘과 경계가 아니라 열림이고 소통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과 여행객들이 프라하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편안함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매서운 바람에 꼭꼭 문을 닫는 겨울철임에도 프라하는 여전히 관광객들로 흥겹다.
프라하 최고의 관광지인 프라하성.
■격변의 체코 역사

체코인들은 약 9세기경 이곳에 보헤미아 왕국을 건설했다. 14세기경에는 체코가 유럽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도약하는데, 이곳 프라하에서 태어난 룩셈부르크 가문의 카를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다. 하지만 15세기 중엽 이후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속령으로 남으면서 화려하던 시절도 멈춘다. 1918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고, 1939년에는 독일에 의해 보호령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한다. 1945년 프라하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소련과의 연립정부와 연립내각이 들어서고 공산당 1당 독재가 시작된다. 1968년 개혁파의 ‘프라하의 봄’이 시도되지만 소련군에 의해 좌절되고, 더욱 강한 공산 정권에 의해 지배받다가 1980년대 말 민주화 바람을 타고 거세진 시민의 요구와 시위에 굴복한 채 1988년 12월 최초의 비공산계 대통령을 탄생시킨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지속적인 대립으로 인해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각각의 독립 국가가 되었다.

■이방인의 가슴을 적시다

프라하의 상징인 틴 성당.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재해 있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프라하는 이제 차분하면서도 활발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다.그 세월 동안 역사와 함께 무너지고 재건되면서 버텨 온 골목골목에는 작고 예쁜 가게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밤이 되면 하나둘씩 켜지는 골목의 은은한 가로등 불빛에는 왠지 모르게 이방인들의 가슴을 적시는 프라하만의 무언가가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 대부분이 그러하듯, 프라하 역시 도시의 주요 명소들은 구도심에 모여 있고 모두 걸어 갈 수 있다. 골목을 누비다가 많은 사람들이 향하거나 모여 있는 곳으로 따라가 보면 그곳이 명소이기도 한 도시다.

구시가의 중심에는 얀후스 동상과 틴 성당, 그리고 천문시계로도 유명한 구청사가 모여 있는 광장이 있다. 매시간 정각이 다가오면 수많은 인파가 구청사 앞에서 한 곳을 향해 올려다보며 서 있다. 시청사 정면에 있는 ‘천문시계’가 움직이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고장난 듯이 멈춰있던 시계가 정각에만 살아나는 것을 목격하기 위해서다. 정각이 되자, 건물 벽면에 붙어 있는 오래된 시계는 녹음된 목소리와 함께 살아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계는 곧 다시 멈춘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감동이라기보다는 실망의 탄성에 가깝다. ‘이게 다야?’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다음 정각이 다가오면 광장은 또다시 구경꾼들로 가득 찬다.

■얀 후스의 저항정신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 ‘카프카’.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시끌벅적한 광장 한 모퉁이에 검은 동상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얀 후스다. 혼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 가운데 함께 있다. 그는 15세기 초 가톨릭이 전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의 이곳 가톨릭 사제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개혁을 부르짖는 고행의 사제가 된다. 민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대신에 체코어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교황청을 거역한다. 더불어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결국 사제직을 파면당하고 급기야 화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100여 년 전에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부르짖음으로써 진정으로 낮은 이들과 함께하는 사제가 되고자 하였다. 프라하는 얀 후스의 저항 정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후 바츨라프 광장을 중심으로 일어난 체코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 그리고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 할 수 있는 ‘존 레논의 벽’ 으로 이어갔다.

■종교적 소용돌이

얀 후스 동상과 가까운 곳에 프라하의 상징과도 같은 틴 성당이 보인다. 겉으로만 봐도 여느 성당과는 달라 보인다. 원래의 설계가 그대로 남은 1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하부에 고딕 양식의 뾰족한 두 개의 첨탑이 얹혀 있다. 그나마 자세히 보면 첨탑의 높이도 다른데, 그러다 보니 높은 탑을 아담, 낮은 탑을 이브라 부른다. 겉모습과는 달리 성당 안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성당은 프라하의 종교적 소용돌이도 함께 보여주는데 첨탑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성모의 황금빛 후광이 그것이다. 한때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후스파의 성당으로 사용되면서 그곳에는 황금 성배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후스파의 교세가 약해지고 다시 가톨릭교회로 바뀌면서 교회는 성배를 녹여 성모의 후광으로 사용했다.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뒤로 걷다 보면 성당만큼이나 오래된 듯한 아치 건물이 보인다. 오래전 이곳에 도시의 성벽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일명 ‘화약탑’의 아치다. 한때 화약 저장고로 사용되면서 그렇게 불리고 있지만 틴 성당과 함께 무구한 프라하 역사의 생생한 증거이다.

■고해성사 비밀 지킨 성인

발걸음을 돌려 아름답기로 유명한 ‘카를교’를 지나 블타바강을 건넌다. 다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다리 위에 세워놓은 서른 개의 조각상들은 마치 야외 조각전을 방불케 한다. 여기서도 여행의 일반 공식이 들어맞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무조건 가서 확인하라’. 다가가 확인해 보니,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이다.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발설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로 이곳 강물에 내던져져 익사 당한 사제다. 가톨릭 사제에게는 고해성사 내용을 비밀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뢰를 지킨 그는 후에 성인으로 추앙되었고, 프라하 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삶의 본질을 묻다

강 너머 언덕 위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성이 있다. 카프카의 ‘성’의 배경이자, 도시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프라하성’이다. 프라하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채 단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는 곳으로서 9세기 말부터 거의 900년에 걸친 증축과 신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대대로 권력을 차지한 이들이 머물렀던 곳이며 현재는 체코의 대통령 관저가 여기 있다. 세계 5대 성당중 하나인 비투스 성당이 이곳에 있으며 이외에도 두 개의 성당과 수도원 및 박물관 등이 성안에 있다. 사람 두 명이 간신히 비킬 수 있는 좁은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성당의 종탑 꼭대기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체코에 오면 두 명의 위대한 문학가가 떠오른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다.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 이후 프랑스로 망명 간 이후 최근에야 체코 국적을 되찾다 보니 이곳에서 그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아직 무리다. 대신에 프라하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카프카를 만날 수 있다. 프라하성으로 통하는 ‘황금골목’ 어귀에 ‘카프카 문학관’이 있다. ‘변신’과 ‘성’으로 잘 알려진 그의 문학과 삶의 기록과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그가 가졌을 정체성의 혼돈은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이라는 표현에 잘 담겨 있는데, 그는 부유한 상인 출신의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못마땅한 아들이었다. 다비드 체르니라는 조각가는 거대한 움직이는 카프카의 동상을 통해 그에 대한 이해를 담아냈다. 한 쇼핑센터 근처 작은 광장에 서 있는 이 작품은 시간마다 15분 동안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삶의 매 순간이 어떤 합리성이나 원칙으로 흘러가던가? 그 삶 가운데 당신의 정체성은 어느 것인가? 과연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는 존재이긴 한가?

다비드 체르니는 ‘시대의 반항아’ 또는 ‘괴짜 조각가’라는 애칭을 지닌 이곳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다. ‘카프카’ 외에도, 카프카 문학관 앞에 있는 ‘오줌 누는 사람들’과, 구시가의 한 골목길 사이에 걸려 있는 일명 ‘매달린 프로이트’(Man Hanging Out) 등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점점 ‘생각’을 망각하고 있는 현시대에서 그는 카프카가 던졌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유머와 불편함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듯하다.

저항 정신과 남겨진 역사, 골목골목의 이어짐과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타자들, 그리고 인생의 부조리함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을 모두 품은 도시가 프라하다. 아름다우면서도 고독을 느끼게 만들고, 따뜻하면서도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그런 도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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