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에요. 불평등을 유지시키는데 동의하고, 공정이라는 것을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죠. 이런 의식은 어디서 길러진 걸까요. 바로 ‘교실’ 입니다. 한국 교실에서 12년간 성실히 교육을 받은 아이는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될까요, 아니면 위험한 파시스트가 될까요.”
지난 18일 부산 중구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상지인문학아카데미 ‘영화와 도시’에서 중앙대 김누리(독문과) 교수가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교육개혁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김 교수는 서울대와 독일브레멘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중앙대 독문과 교수이자 독일 유럽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날 강연은 지난해 국내 개봉한 미국 영화 ‘컴온 컴온(C’mon C’mon)’을 함께 관람하고 김 교수의 초청강연으로 진행됐다. 영화 ‘컴온 컴온’은 어린이의 삶과 미래에 대해 인터뷰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호아킨 피닉스)가 9살 조카 ‘제시’(우디 노먼)와 단둘이 지내며 겪게되는 에피소드를 담아낸 가족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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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부산 중구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상지인문학아카데미에서 중앙대 김누리(독문과)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상지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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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사회는 지옥… 낭만적 얘기 할 때 아냐”
김 교수는 이 영화를 ‘위험한 영화’라며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봤다.
“미국사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동안 야만사회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주제를 잘 다룬 영화가 ‘노매드 랜드’에요. 미국사회 중산층의 붕괴를 잘 보여주고 있죠. 영화 ‘컴온 컴온’은 아이들의 미래를 낭만적으로만 그린, 전형적 헐리우드 문법의 영화로 느껴져요. 지금 미국은 이런 낭만적인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에요.”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
“아이의 시각에서 미국사회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는데, 정작 현실에 대한 얘기가 없어요. 지금 미국사회는 지옥입니다. 이런 사회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얘기한다는 건 참혹한 현실을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회피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김 교수는 최근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발표한 ‘슈퍼리치의 생존’ 보고서를 들며 ‘파국에 이른’ 극단적 부와 빈곤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2020, 2021년 두 해 동안 창출된 부의 63%가 상위 1% 슈퍼리치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 기간 하위 90%는 겨우 10%만 차지했다.
“가장 위험한 건 ‘그래도 살 만하다’식의 긍정적 메시지에요. 계속 이렇게 가도 된다는 거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컴온 컴온’이 아니에요. 이대로 가면 안됩니다. 바꿔야 해요. 지금 너무 위험한 상황인데 그중에서도 한국처럼 무감각한 사회가 없어요.”
그는 최근 국내와 유럽 선거 아젠다를 비교하며 말을 이어갔다.
“유럽에서는 22세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어요. 독일 총선에서만 해도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은 ‘생태’ ‘기후변화’ 문제였습니다. 전체 정치 아젠다의 46%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지난해 3월 대선만 해도 어때요. 절박한 경고음 속에서도 환경, 기후변화 문제는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 없어요. 누가 더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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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부산 중구 BNK 부산은행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상지인문학아카데미에서 중앙대 김누리(독문과)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상지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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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사회가 당면한 네 가지 파국
김 교수는 대한민국 사회가 4가지 파국에 이르렀다며 경고했다. 앞서 강조한 ▷생태적 파국뿐만 아니라 ▷전쟁 파국 ▷사회적 파국 ▷교육적 파국이 그것이다. 그는 2017년 9월 독일에 머무르며 접한 일촉즉발의 한반도 전쟁 위기 분위기와 달리 국내에선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스포츠스타·연예인 이슈가 올랐던 경험을 언급하며 한국인의 전쟁불감증을 염려했다.
“독일 국영방송에서 ‘전쟁 임박’을 첫 번째 톱뉴스로 방송하고 동북아 전문가들의 특별대담이 열렸어요. 현지 유력지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선 ‘전쟁 직전’이라고 1면에 나고요. 독일이 호들갑을 떤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냄비 속 개구리’였을까요.”
그는 지난해 10월 쓴 칼럼 ‘북한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것’에서 이렇게 썼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는 ‘전쟁에 가까워진’ 상태였으며 미국은 군사적으로 ‘모든 선택지를 검토했다’고 회고했고, 미군 합참의장 출신 마이클 멀린은 2017년 말 한 방송에 나와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전쟁이 가까워졌다’고 경고했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영구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회적 파국’에 대한 이야기는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로 시작했다.
‘세계 가치관 조사’를 보면 ‘소득이 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불평등’을 선호한다고 답한 한국인은 2014년 무려 59%였으며, 2020년에는 66%로 더 늘어났다.
“이러한 의식은 ‘교실’에서 길러지고 있고요. 학교 교육을 잘 받았다는 이른바 ‘전교 1등’들을 보세요. 판사 검사 의사들이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의사 정원 늘린다니 병원에서 옷 벗고 나와 시위했어요. 양승태 사법부는 또 어땠나요. ‘사법농단’으로 국민을 우롱했죠. 극단적 경쟁교육과 왜곡된 능력주의가 이런 ‘병자’를 만들고 있는 거에요.”
김 교수는 더는 ‘교육개혁’을 미룰 수 없다며 그 절실함을 피력했다. 독일의 거대한 교육 실험을 예로 들며 ‘교육개혁을 통해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난민을 받는 문제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할 때 독일 메르켈 총리는 100만 명을 받겠다고 했어요. 실제로는 117만 명을 받았죠. 그리고이듬해 선거에서 독일 국민은 메르켈 총리를 다시 뽑았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1970년대 시작한 독일의 교육개혁이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낸 겁니다. 그 핵심이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는 건데, 가장 대척점에 놓인 나라가 바로 지금 한국이죠.”
우리 아이들에게도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유년기, 청소년기를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살도 안 된 아이들이 불행의식에 사로잡혀 삽니다. 이때 아이들은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연애 경험을 하거나 왕성한 지적호기심으로 예술작품을 향유하고 공유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야 하는데, 지금 한국사회는 이 모든 걸 못하게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혁명에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