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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국 ‘찬란한 부활’ 가능케 한 합스부르크家 문화유산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3> 빈①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1-15 19:47:51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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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로마제국으로 기억되는
- 합스부르크 왕가 영광의 역사
- 고스란히 남은 오스트리아 빈

- 두 차례의 세계대전 패전 기억
- 특유의 문화적 개방성으로 극복

- 옛 성벽 허물어 만든 둘레길
- 건축물·미술관 등 둘러보면
- 모차르트부터 프로이트까지
- 빈의 ‘위대한 인물’ 만나게 돼

오스트리아 빈에는 여전히 합스부르크 ‘왕국’이 살아 있다. 합스부르크는 스위스의 작은 산골 마을 가문에 불과했지만 14세기부터 약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거의 모두 차지하고 유럽을 지배하는 세계사를 썼다. 이 가문의 번영에는 유럽 주요 가문과의 정략결혼이 있었고,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인 마리아테레지아가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온 세상을 다스린다(AEIOU)’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자존감은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막을 내렸고,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까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됐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문화 예술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제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서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수도 빈이 있다.
알베르트 공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궁전인 알베르티나 미술관. 미술 애호가였던 알베르트공의 소장품을 전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유럽 대부분 도시가 그러하듯 빈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지만 그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다. 비슷한 역사를 겪은 이웃 부다페스트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2차 대전 후 정치적 중립국을 선포함으로써 세계 정치에서 비롯되는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도 있겠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외정책 유산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합스부르크는 민족적 관용정책을 펼치면서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제도에 배타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고 너그러웠다. 왕가의 마지막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가 1857년 발의한 ‘링-슈트라세(링-도로) 칙령’은 이러한 열린 세계관의 정점이다. 그는 빈을 둘러싼 높은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넓은 도로를 냈다. 경계와 차단이 있던 자리에 연결과 포용을 내어놓고 도시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경계가 사라지자 바람이 통하고 사람 마음이 통하면서 도시는 훨씬 더 건강해졌다. 고인물은 썩는 법이다. 사람이든 도시든 자유로이 흐르고 서로 소통해야 생명도 관계도 이어갈 수 있다.

■성 슈테판 성당

고딕 양식의 대표주자 중의 하나인 슈테판 성당.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뽀죡뾰족한 지붕은 타일로 된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링-슈트라세를 중심으로 빈의 주요 볼거리들이 모여 있다. 역사적인 건물과 왕조 이후에 건립된 근대 이후의 건물, 심지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최근 건축물까지 모두가 은근히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빈을 만들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을 위기로 내몰았다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건축물에서도, 도심의 형태에서도 빈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공존과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대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이어온 가톨릭 가문의 축이라는 명성답게 빈 역시 그 중심에 성당을 세웠다. 성 슈테판 성당이다. 성당을 중앙에 두고 크게 빙 둘러 성이 있었던 셈이다. 성곽을 허물고 만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이것이 ‘링-슈트라세’다.

빈 둘레 걷기를 슈테판 성당에서 시작해 보자. 유럽 성당은 단순히 종교적인 건물이라기보다 역사 그 자체다. 고딕 양식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슈테판 성당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뽀죡뾰족한 지붕은 타일로 된 모자이크로 유명한데 합스부르크 가문 문양인 두 마리의 독수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엔 2차 대전으로 파괴된 성당을 복구한 연도인 ‘195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늘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로 읽힌다. 성당 내부 한쪽 벽에 있는 모차르트 부조 역시 이곳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기억하고 있다. 빈의 영혼이라 불리는 이곳은 엄숙함보다는 건강하게 박동하는 빈의 붉은 심장처럼 느껴진다. 쇼핑거리와 이어져 있는 성당 앞 광장은 연말이라 더욱 시끌벅적하다. 이런 분위기에 일조라도 하듯 대성당도 노랗고 붉은 조명과 경쾌한 종소리로써 빈 시민과 여행객들의 심박수를 끌어올린다.

성당을 뒤로 한 채 큰 도로를 따라 걸으면 빈 시청사와 국회의사당이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대통령 집무실과 다양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호프부르크 왕궁이 있다. 다시 도로를 따라가면 거대한 마리아테레지아 동상이 있는 광장이 나타나고 그 양쪽으로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이 마주 서 있다.

미술사 박물관에서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왕녀의 어린 시절 초상화 연작을 비롯 ‘바벨탑’ 등 피터 브뤼겔의 대표 작품,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렘브란트의 ‘자화상’ 등 유명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넓은 전시실을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박물관 중앙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행복에 취하는 것이다. 많은 걸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크림을 얹은 비엔나식 커피 한잔으로 충분하다. 피로가 풀리며 왕실 거실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에 젖는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미술사 박물관 내 중앙에 있는 카페.
미술사 박술관을 나와 남쪽으로 향하면 작은 광장이 보이고 그 위로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식 액세서리가 결합한 듯한 건물이 보이는 데 그곳이 알베르티나 미술관이다. 이곳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첫 사위였던 알베르트 공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궁전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가장 아꼈던 첫째 딸 마리 크리스틴에게만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그 사랑의 주인공이 알베르트공이다. 미술 애호가였던 알베르트공의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의 이름도 널리 기억됐다. 가장 인기 많은 ‘토끼’를 비롯한 알브레히트 뒤러의 주요 작품, 중세와 르네상스 작품은 물론이고 피카소와 칸딘스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소장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전시로도 유명한데, 마침 ‘장 미셸 바스키아’의 전시가 한창이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바스키아는 흑인 작가로 그래피티 화가 1세대다. 거리의 낙서로만 인식되던 그림을 예술로 승격시켰다. 그를 알아본 앤디 워홀의 죽음 이후로 마약 중독에 빠져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인종주의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차별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인종과 국가와 연령이 필요 없는 수많은 관람객이 숨을 죽인 채 그의 침묵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프로이트

빈에는 수백 년 된 미술과 음악이 살아 숨 쉰다. 우리가 손꼽는 많은 화가와 음악가가 이곳에서 나고 살았거나 활동했다. 이곳에는 근대역사와 학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프로이트 뮤지엄은 링-슈트라세 안에 있다. 성 슈테판 성당에서 동남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찾을 수 있다. 그가 생전에 거주하면서 환자를 치료했던 집에 그의 필체와 사진, 소장품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 집에서 쓴 ‘꿈의 해석’을 비롯해 프로이트의 서명이 있는 주요 저서를 볼 수 있으며,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살바토르 달리와 르네 마가리트 같은 초현실주의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겠나마는 1900년대는 조금 더 특별하다. 사전 모의도 없이 니체와 다윈과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합심해 시대의 급변을 이끈 시대다. 종교 중심에서 인간과 이성 중심으로 세상의 눈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꿈의 해석’이 있다. 지금은 흔하게 인정되는 인간의 ‘무의식’을 거론함으로써 인간의 심리를 이성·합리·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기 시작한 셈이다. 인간을 더 잘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프로이트 문학관에 적혀 있는 문장 하나가 숙제처럼 마음에 남는다. “인간 감정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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