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6> 주홍글자-너대니얼 호손(1804~1864)

남편 없는 출산으로 평생을 ‘탕녀’ 낙인…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2-12-29 19:37:25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신앙 공동체인 청교도 마을 배경
- 간음녀라는 ‘주홍글자’ 형벌에도
- 남 도우며 살아가는 여성 이야기
- 아이 친부인 목사는 죽음 속 회개
- ‘마녀사냥’ 같은 교조주의에 경종

- 삶이 가진 개방성과 다양성 인정
- 무관심한듯 따뜻한 시선 큰 울림

“인간이 지닌 나약과 그에 뒤따르는 슬픔을 다룬 얘기랍니다.” 귀가 기울여진다. 내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호손도 그리 생각하고 이 고전을 쓴 듯하다. 1장에서 주제를 밝히며 덧붙였다. “암담한 결말을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게 했으니 기대하셔도 돼요.”

헤스터 프린이 펄을 안고 세일럼 마을 내 처형대에 올라 망신당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글 짜임새, 서술 방식, 출간 시기를 절묘하게 기획해 홈런을 날린 고전이다. 글 짜임새를 먼저 보자. 1장 앞에 ‘세관(稅關)’이란 서장(序章)을, 그 앞에 서문을 썼다. 여기서 호손은 자신과 가문에 얽힌 몇 가지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사실성 강조다. 자신은 실제로 1846~1849년 미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세관에 소속한 세입 감독관이었다고 밝힌다. 주홍 글자가 지닌 의미도 이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간 시기는? 호손이 세관을 나온 이듬해인 1850년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독성은 한껏 높아졌다. 호손은 히든카드를 한 장 더 쥐었다. 소재가 동서고금 화젯거리인 ‘상간녀 얘기’ 아닌가. 초판 2500권이 이틀 만에 동났다.

호손은 세관 사무실 잡동사니에서 오래된 양피지 꾸러미를 발견한다. 100년 전 전임자인 퓨 씨가 남긴 유물. 꾸러미를 풀어보니 빛바랜 주홍색 천 조각이 나왔다. 금실로 수 놓은 희미한 자국이 보이는데 글자 윤곽이다. 높이가 8㎝ 정도인 A자. 이어 발견한 퓨 씨가 쓴 원고. 궁금증을 풀어준다. 매사추세츠주 청교도 식민지 초기부터 17세기 말까지 살았던 헤스터 프린이란 여인이 이 주홍색 천을 옷가슴에 달았으며, 그녀를 둘러싸고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헤스터 스캔들’은 사실일까. 호손은 자신은 현실과 공상 사이에 자리 잡은 중립 지대에서 글을 쓴다며 그 판단은 독자에게 넘긴다. 그 결과, 사실과 상상력이란 양 날개를 단, 호손이 지은 이 첫 장편소설은 현대까지 훨훨 날아왔다.

추리 소설 같은 맛도 지녔다. 영어 서명(書名)이 ‘The Scarlet Letter, A Romance’. A는 정관사? 아니면 주홍색 천 조각에 나타난 A자일까. 로맨스라니! 현대 독자는 공감한다. 죄의식 회개 복수심 용서 후회 헌신 수치심 같은 인간 심리와 감정은 지금도 여전하니까.

저자는 이상향 사회 구축을 목표로 삼았던 초기 청교도 마을에 감옥과 묘지가 가장 먼저 생겼다고 운을 뗀다. 사회와 개인 간 갈등, 이상과 현실 간 괴리가 주제라는 걸 암시하듯. 1642년 6월 어느 날 아침, 보스턴 청교도 마을. 목조 감옥 문이 열리고 키 큰 젊은 여인이 간수와 함께 성큼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갓난애를 품에 안았다. 이 여인 이름은 헤스터 프린, 3개월 된 딸애는 펄이다. 몰려온 군중은 그녀 가슴팍에 달린 주홍 글자 A가 수 놓인 천 조각을 보곤 쑥덕거린다. 신앙 공동체인 청교도 사회에선 종교와 법률이 한 몸. 간음(Adultery)한 헤스터는 주홍 글자 A를 죽을 때까지 항상 옷가슴에 달아야 하는 벌을 받았다. 왜 하필 주홍색일까. 이 색은 귀족이나 가톨릭 사제에겐 권위·존귀를 상징하지만, 한편으론 ‘간음’을 뜻하기도 한다. 요한 묵시록 17장을 보면 탕녀 바빌론이 주홍색 옷을 입었다.

“저년은 우리 얼굴에 먹칠한 년이니까 죽어야 마땅해요.” 못생긴 마을 여자가 아우성쳐도 헤스터는 당당하다. ‘규범 따위는 돼지에게나 줘.’ 억압에 반발한다. 이 여인은 수예 솜씨가 뛰어났다. 금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고 독특한 무늬로 둘레를 두른 A자. 불의를 상징하는 그 글자가 여름 햇살에 반짝인다. 호손은 이런 식으로 청교도 사회를 풍자한다. ‘자신이 맡은 세관 검사관직이 종신직이라 늙은 짐승이 돼 갈까 봐 걱정이었는데 정권이 바뀌자 내 목이 제일 먼저 날아갔다’는 문장도 그렇다.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탕녀 바빌론. 주홍색 옷을 입고 있다.
남편 없이 출산한 그녀는 친부를 밝히지 않고 죄를 혼자 뒤집어쓴다. 하찮은 간통녀가 아니다. 호손은 그녀를 죄책감이란 수렁에 빠뜨리지 않는다. 헤스터는 아이를 안고 마을 처형대에 올라가 3시간 서서 모욕당한 후 해변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이방인이자 왜소한 한 노인이 군중 틈에서 지켜본다. 죽었다고 알려진 남편 로저 칠링워스다. 은둔한 학자인 그는 헤스터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정을 꾸렸다. 그 후 아내는 먼저 이 마을로 왔다. 남편은 뒤따라오지 않고 2년간 행방불명이었다. 다들 죽었다고 믿었다. 그는 친부가 누군지 아내를 추궁하지만, 답을 듣지 못한다.

이 마을 아서 딤스데일은 신망 높은 청년 목사. 그는 헤스터 모녀가 출옥한 날 이후 가슴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기고 날로 쇠약해진다. 의사를 자처한 칠링워스는 그를 치료한다며 같이 사는데 행동이 수상쩍다. 칠링워스 역시 갈수록 몸이 뒤틀리고 인상이 일그러진다.

7년 세월이 흘렀다. 헤스터는 주홍 글자를 단 채 잘 산다. 삯바느질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지역 사회에 선행을 베풀었다. 스스로 A자 의미를 바꾸었다. 간음(Adultery)한 여인이지만 능력(Able)을 인정받고 덕행을 쌓아 지역민에게 천사(Angle)라고 칭송받으니까.

친부는 딤스데일 목사였다. 그 사실을 눈치챈 칠링워스, 목사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걸 보는 낙으로 산다. 목사도 마침내 칠링워스 정체를 알아차린다. 파국을 감지한 헤스터와 딤스데일. 청교도 마을에서 함께 도망치려 하지만 비극이 기다릴 뿐이다. 딤스데일은 새 총독 취임을 축하하는 연설을 마친 후 헤스터 모녀와 함께 처형대 위에 올라섰다. 자기 가슴을 풀어 헤친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곤 헤스터 품에 안겨 숨진다. 군중은 목사 가슴에 A자 낙인이 있었다니 없었다니 하며 설왕설래한다. 7세로 자란 펄은 아버지 목사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딤스데일은 죽음으로 회개해 자신이 혼탁하게 만든 청교도 정신을 원래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 한 사람, 칠링워스가 남았다. 목사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살아온 그는 인생 목표가 사라지자 더는 살아갈 의욕을 잃었는지 얼마 못 가 눈을 감는다. 반전이 일어난다. 칠링워스 노인이 펄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헤스터 모녀는 목사가 숨진 후 마을을 떠났다. 몇 년 후 펄이 성장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문이 떠돈다. 늙은 헤스터는 홀로 해변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가슴엔 여전히 주홍 글자가 달렸다. 그녀는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다 홀로 숨진다. 그녀 묘비엔 단 한 자, A자만 새겨진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 이 고전 마지막 문장이다.

미국인에게 이 고전은 ‘국민소설’로 통한다. 미국을 세운 정신인 청교도주의, 이주민 역사·문화를 만나게 해주니까. 그들은 청교도주의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본다. 호손은 그중 그림자를 보여줬다. ‘마녀사냥’ 같은 교조주의가 가진 해독에 경종을 울렸다. 현대 미국인들은 그런 교훈을 이 고전에서 얻는다.

호손이 삶을 통찰하는 방식도 큰 울림을 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 ‘참된 유쾌함’이랬다. 사물을 정해진 틀에 집어넣지 않는다. 삶이 가진 개방성 다양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는 근대 정신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상을 무심·무관심한 듯 따듯하게 응시한다. “인간과 세상을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운 존재로 단정할 수 없다.”

‘주홍글자’를 읽으며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인색한 모습이다. 조금만 달라도 싫어하며 마구 찍어대는 낙인.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냈다. 내 손은 그 도장을 쥐지 않았는가. 한번 살펴볼 일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비서실장 유력설 장제원에 쏠린 눈
  2. 2부산롯데타워 지상공사 지연 의혹…市 "고의로 늦춘 건 아냐"
  3. 3쪽방 적응 어렵고 대인기피증까지…부산 노숙인 셋 중 1명 노인
  4. 4선박·항만, 수소 전환 ‘대세’…부산, 무탄소시대 이끌어야
  5. 5미워할 수 없는 황성빈, 첫 멀티홈런 ‘인생경기’
  6. 6황선홍호, 22일 일본전…2년 전 굴욕 씻을까
  7. 7[부산 법조 경찰 24시] 유사사건 무죄, 피고인 불출석에 연기…하윤수 2심 변수
  8. 8대가성 물품·상습 결근·횡령 정황…부산 공무원들 왜이러나
  9. 9부산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구 만든다
  10. 10똑같이 초과수당 부정수령…누군 선고유예, 누군 집행유예(종합)
  1. 1비서실장 유력설 장제원에 쏠린 눈
  2. 2서동 곽규택 "북항 재개발 승인권, 부산시 이관 법제화"
  3. 3[뉴스 분석] 유럽 G7회의 또 초청 못 받은 韓…美日 치중 외교 도마 위
  4. 4부산진갑 정성국 "아동복지법 보완해 교권강화 입법 완수"
  5. 5尹 오찬 초청…한동훈 건강 이유로 거절
  6. 6尹-李 영수회담 성사…총리 인선·민생지원금 등 의제 조율
  7. 7동래 서지영 "노후화된 사직 구장, 시민친화 공간 조성"
  8. 8野 6당 “채상병특검법 내달 처리하자”
  9. 9기시다, 야스쿠니신사에 또 공물
  10. 10尹, 새 대통령 비서실장에 5선 중진 정진석 의원 낙점
  1. 1부산롯데타워 지상공사 지연 의혹…市 "고의로 늦춘 건 아냐"
  2. 2선박·항만, 수소 전환 ‘대세’…부산, 무탄소시대 이끌어야
  3. 3부산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기구 만든다
  4. 4“韓·日·호주 산업 역량 결집, 액화수소운반선 개발 시동”
  5. 5“망미주공 시공사 선정절차 공정하게 진행할 것”
  6. 6“성공적 탄소중립 달성 위해 범국민적 동참 의지는 필수”
  7. 7“수소船 국제안전기준 전무…韓, IMO 제출 목표로 진행”
  8. 8“수소선박 중요성 시민 설득해야…충전소 등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 전환 필요”
  9. 9“국제사회 선박 오염원 규제, 수소 연료전지 시장 급성장”
  10. 10부산 울산 경남·TK, 제조+AI융합 협업 국비 300억 받는다
  1. 1쪽방 적응 어렵고 대인기피증까지…부산 노숙인 셋 중 1명 노인
  2. 2[부산 법조 경찰 24시] 유사사건 무죄, 피고인 불출석에 연기…하윤수 2심 변수
  3. 3대가성 물품·상습 결근·횡령 정황…부산 공무원들 왜이러나
  4. 4똑같이 초과수당 부정수령…누군 선고유예, 누군 집행유예(종합)
  5. 5[르포] 장애인 이동권 개선 1년 노력…휠체어 쏠림 등 갈 길 멀어
  6. 6오늘의 날씨- 2024년 4월 22일
  7. 7금정구, 2024년 제1회 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개최
  8. 8화명2동,「다(多)가치 나눔」우리동네 나눔가게 발굴 캠페인
  9. 9담배꽁초 투기 줄이는, 금정구만의 독특한 캠페인 추진
  10. 10'시술 불만' 성형외과 병원 알려주고 ‘똥손’…모욕죄 해당
  1. 1미워할 수 없는 황성빈, 첫 멀티홈런 ‘인생경기’
  2. 2황선홍호, 22일 일본전…2년 전 굴욕 씻을까
  3. 3반여고 정상원, 체육회장기 씨름 우승
  4. 4뜨거운 이정후, 홈구장서 첫 홈런
  5. 5최은우 17번홀 버디…극적 2년 연속 우승
  6. 6시장기 시민게이트볼대회, 부산진구 초연팀 우승
  7. 7롯데 유니폼 입고 “KCC!”…KCC, 부산시민 압도적 응원 속 챔프전 진출
  8. 8황성빈, 개인 통산 2호 홈런 폭발…이번엔 당당하게 홈 복귀
  9. 9"우리 성빈이가 달라졌어요"...황성빈, 하루에 3홈런 작렬
  10. 10전창진·라건아 "LG? KT? 어떤 팀이 챔프전 올라와도 상관없어"
우리은행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백의종군길에 접한 어머니 부고…벗도 발벗고 장례 도와
이병주 문학과 인문 클래식
스무살 처음 만난 루쉰…나림은 그의 문학에 한없이 심취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공간이 생기니 문화가 스며들더라…‘詩 낭독회 맛집’ 주인장의 솜씨
“K-속도가 한국사회 성장 가져왔지만 저주도 존재”
리뷰 [전체보기]
이 뮤지컬 후회없이 즐기는 법? 눈치보지 말고 소리 질러!
웅장한 에너지 보여준 ‘한국판 레미제라블’…연기·미술·음향 앙상블, 감동의 무대 펼쳐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누구나 마음 작아질 때 있어요 外
하마는 입 크기로 승자 가린다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부부 /장남숙
달고기 /윤종순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피라미드 게임’ 두 주연배우
‘스위트홈’ 시즌2 고민시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정순’ 정지혜 감독
‘파묘’ 배우 김고은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tvN ‘눈물의 여왕’ 국내외 흥행…‘사랑의 불시착’ 시청률 넘어설까
‘파묘’ 올해 첫 1000만 영화…비주류 한계 넘은 K-오컬트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같은 시대, 다른 계급 ‘격동하는 삶’
‘인연’과 ‘운명’을 사색하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4월 22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4월 18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구차원 9dimension 싱글 ‘The Ocean’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4년 4월 22일(음력 3월 14일)
오늘의 운세- 2024년 4월 18일(음력 3월 1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참된 의원의 모습을 보여준 조선 시대 조광일
머리에 꽃 꽂았지만 쓸쓸한 마음 감추지 못한 손곡 이달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 걷기축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