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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도자와 비슷…독창적 철학 있어야 단단해져”

국제아카데미 19기 21주 강의- 도예가 지산 이종능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2-11-10 19:36:4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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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
- 한 손으로 20일 걸려 꽃병 완성
- 다친 손가락 보며 초심 되새겨

“사람도 도자와 같아요. 강한 체력과 끈기, 자신만의 철학이 없으면 1200도 불에 주저앉고 마는 거죠.”

지난 9일 롯데호텔부산에서 열린 국제아카데미 19기 21주 차 강의 ‘흙과 불 그리고 인생’에서 도예가 지산 이종능(사진)은 도자 작품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작품은 2004년 그가 KBS 다큐 ‘도자기’에서 실연한 이집트 도자기. “이집트는 BC 3700년에 청동기가 시작된 문명국가지만 도자는 18세기가 돼서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흙 때문이죠. 도자는 어떤 흙을 어떤 방법으로 굽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흙에 다른 흙과 소뼈를 더해야 도자를 만들 수 있었죠.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가 있어야 더욱 단단해집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 이종능의 독창적 세계는 흙에 불의 형상을 담아내는 ‘토흔(Tohheun·土痕)’이다. 1200도 불 속에서 흙은 원래 색을 잃어버리고 유약의 색에 의존한다. 토흔은 산에서 갓 얻어낸 흙의 색과 질감을 유지하는 도예 기법으로, 40년 넘게 그가 추구하는 평생의 화두. 스스로를 ‘흙의 본질적인 원시성에서 색감 질감 선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작가’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의 작품 세계는 런던의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적 미술관에서 한국 전통 도예의 정수를 알리고 있다.

그를 매료시킨 흙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가 처음 흙에 마음이 뺏긴 건 1979년 대학 시절 지리산 여행에서다. 비가 많이 와 산이 무너졌는데, 물기를 흠뻑 머금은 무지개 빛 흙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이때 흙과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대학 4학년 때 다른 친구는 취업 얘기를 나눴지만 저는 달랐어요. 조직생활을 하는 취직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힘들더라도 즐거운 꿈을 꿀 수 있는 것, 내가 원한다면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더니 ‘도공’ 이더군요. 지금도 제가 도공이라는 사실에 저는 꿈을 꾸는 것 같아요.”

확신과 설렘으로 흙과 불의 길에 들어섰지만, 공장식 백자·청자 가마는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문화는 릴레이 경주와 같다. 이 시대는 이 시대의 도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지리산 계곡에서 만난 무지개 빛 흙을 떠올렸다. 새로운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일본 중국 등 동양 도자 세계를 둘러보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작가는 도예 생명의 기로에 서게 되는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일본 카라츠 지역의 르다 가마에서 작업할 때였다. 참나무 장작이 무너지면서 오른손 중지 손가락을 다쳤다. ‘나는 도예가이기 때문에 중지가 중요하다’는 그에게 의사는 ‘괜찮을 것이다’고 안심시켰고, 작가는 자신의 손을 맡겼다. 그러나 수술이 끝난 뒤 그는 세상이 무너져내린 것 같았다. 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사라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공포감이 밀려왔다.

곧장 다른 병원을 찾아 다른 살을 떼다 접합 수술을 했다. 도자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 한 손으로 꽃병을 만들어봤다. 20일이 걸렸다. “이때 깨달았습니다. 도자기는 숙련된 기술과 기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마음으로, 사랑으로 만드는 거라고요. 그래야 내 생각과 마음이 그 속에 녹아들어 가 생명이 탄생하는 거구나 느꼈습니다.” 변호사들이 찾아와 이전 병원에 소송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용서했다. “나의 그릇이 나의 아픔과 남의 실수도 감싸 안고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소우주 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손가락을 볼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게 됐고 신경 감각이 무뎌갈 때 마다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죠.”

이종능의 도예 세계는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기원하는 ‘불의 남자 이종능 도예전’에서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앙리 마티스 전시에서 오마주 작품으로 선보인 10여 점을 포함해 달항아리, 도자기 백화, 진사 그리고 토흔 작품 등 약 80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부산 남구 동명대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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