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57> 슬픔을 진주처럼 노래한 최백호

가족 냉대와 가난, 병마…삶을 따뜻한 노래로 승화한 음유시인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10-23 19:24:16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이승만 정권 무능·비리 비판했던
- 무소속 국회의원 최원봉이 부친
-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 잃고
- 홀어머니 밑에서 어린시절 보내
- 돈 없어 연극영화과 진학도 포기

- 굴곡진 삶 달래주던 음악에 심취
-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
- 장르 넘나드는 명곡들 탄생시켜

모든 예술작품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슬픔과 고통은 예술작품을 빚어내는 토양이자 원동력이다. 가족의 죽음 가난 질병 지체장애 이별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한 예술가의 삶이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거기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면 오로지 패배와 망연자실만 남아있을 뿐이다.

노래하는 최백호.
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는 그 간난신고를 껴안고 그것을 자기와 통합시켜 놀라운 예술작품으로 승화한다. 베토벤이 겪었던 청각신경마비와 반복되던 실연, 도스토예프스키가 맞닥뜨렸던 불치의 병과 사형수의 절박했던 고통, 평생을 정신분열증으로 시달리며 기막힌 조형예술을 빚어낸 일본의 모던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 등을 생각한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리라. 한 예술가에 있어서 고통과 불행은 세월이 지나 되돌아볼 때 행복과 은총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물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수 최백호(崔白虎·1950~ )에게도 그런 적용을 해보게 된다.

부산 동래에서 출생한 그의 초반기 생애는 고독과 가난, 냉대와 질병이 주는 고통과 상처에 시달렸다. 국회의원이었던 부친 최원봉(1922~1950) 선생은 반골 정신을 지닌 분이었다. 그는 비판적 정신을 지닌 지식인으로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조리를 일일이 지적해 당시 집권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그해 11월 서울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던 중 추풍령 부근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외동아들 백호가 태어난 지 불과 7개월 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최백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최백호의 부친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형인 철학자 범부 김정설(1897~1966)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최원봉이 귀한 아들을 낳았을 때 범부는 제자의 아들 이름을 백호(白虎)로 지어주었다. 옛 고분 벽화에서 백호는 흔히 등장하고 있다. 백호는 용의 모습, 또는 흰 호랑이의 머리에 용의 형상으로 묘사가 된다. 그 까닭은 용이 하늘과 바다를 거침없이 다니고, 비나 구름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영험한 힘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백호는 집안의 고의적 소외와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백호의 조부는 손자를 ‘아비 잡아먹은 놈’이라며 심하게 일그러진 편견을 가졌다. 이 때문에 가장을 잃은 집안은 가난과 고립 속에서 고통의 시절을 보냈다. 사범학교 출신인 모친이 교직생활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2017년 발표한 40주년기념앨범 ‘불혹’.
대학 연극영화과에 합격했지만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홀로 고독한 시절을 보냈다. 부산 가야고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지만 이번에는 결핵이라는 질병이 백호의 삶을 주춤거리게 했다. 이럴 때 음악은 그의 삶을 지탱하게 해준 유일한 기둥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일한 의지였던 어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최백호는 천애고아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좋아해 마라톤선수가 되려고 했으나 부족한 폐활량과 건강 때문에 곧 한계를 느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1977년에 발표한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와 1979년의 ‘영일만 친구’, 1995년 발표작 ‘낭만에 대하여’는 가수 최백호의 위상을 요지부동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이런 곡이 단숨에 발표된 것은 아니다. 오랜 무명(無名)이라는 침잠과 고통의 세월을 견디며 갈고닦아 은인자중했던 덕분에 탄생한 명곡들이다. 그는 팝, 재즈, 누에보 탱고, 집시, 스윙 등 다양한 장르를 부드럽게 수용하고 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유명한 배우 김자옥과의 결혼과 이혼 과정도 세간의 큰 화제를 집중시켰다. 절창 ‘영일만 친구’는 힘든 시절 음악적 지향을 같이 하던 친구 홍수진에 대한 헌정곡이다. 포항 부근의 영일만 어느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음악에 몰입하다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최백호는 이 노래의 저작권을 포항시에 흔쾌히 기증했다.

최백호의 대표곡은 많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의 노래’ ‘그쟈’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불나비’ ‘소녀야’ ‘왜 웃느냐구요’ ‘첫사랑’ ‘길’ ‘울릉도’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 ‘너를 사랑해’ ‘인연의 정’ ‘서른아홉의 길목에서’ ‘어느 여배우에게’ ‘낭만에 대하여’ ‘어이’ ‘다시 길 위에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부산 출생의 가수 최백호가 자신의 고향 부산을 테마나 배경으로 다룬 노래를 들어보자면 ‘부산에 가면’ ‘청사포’ ‘바다 끝’ 등이 있다.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에도 부산의 옛 이미지가 짙은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노래 ‘부산에 가면’ 가사에는 부산역과 광안리 등의 공간적 배경이 등장한다. 부산 출생의 출향인사가 고향에 돌아와 첫사랑의 추억이 서린 곳을 떠돌며 지난 시절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이런 점은 노래 ‘청사포’도 마찬가지다. 해운대 동백섬 달맞이고개 청사포가 파노라마처럼 등장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나만 사랑한다고 / 철없던 그 맹세를 내 진정 믿었던가 / 목메어 울고 가는 기적소리여 / 해운대 지나서 / 꽃피는 동백섬 해운대를 지나서 / 달맞이고개에서 청사포를 내려다 보면(노래 ‘청사포’ 부분)

가수 최백호의 노래는 우선 따뜻하다. 가슴에 포근히 젖어든다. 그 아련함은 우리의 가슴 속에 저마다 지니고 있는 추억의 실타래를 낱낱이 풀어내어 지난날 아픈 상처와 고통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 소환은 우리를 다시금 고통 속으로 휘몰아놓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과 상처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성찰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최백호 콘서트를 경북 경산시민회관에서 감상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날의 감동이 다시금 재생된다. 최백호의 음악세계를 일으켜준 토양도 부산이었고, 신산했던 부산에서의 고통과 상처가 그의 대중예술을 더욱 크고 빛나는 것으로 추동시켰던 것이다. 최백호 노래의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비 내리는 부산 거리를 걷고 싶다.

-끝-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최일선’ 치안센터, 부산 절반 넘게 없앤다
  2. 2이 곳을 보지 않은 자 '황홀'을 말하지 말라
  3. 3북항재개발 민간특혜 의혹…늘어지는 檢 수사 뒷말 무성
  4. 4다대 한진중 개발사업 매각설…시행사 “사실무근”
  5. 5세수 메우려 치안센터 50곳 매각? 일선 경찰도 반대 목소리
  6. 6반나절 앞도 못내다본 기상청…부산·경남 심야폭우 화들짝
  7. 7구포역 도시재생 핵심인데…새 게스트하우스 ‘개점휴업’
  8. 8이재성 “온라인게임 해봤나” 변성완 “기술자 뽑는 자리냐”
  9. 9유튜버로 물오른 코믹연기 “다음엔 액션 해보고 싶어요”
  10. 10인사 안한 이진숙…최민희 과방위원장 “저와 싸우려 하면 안 돼” 귓속말 경고
  1. 1이재성 “온라인게임 해봤나” 변성완 “기술자 뽑는 자리냐”
  2. 2인사 안한 이진숙…최민희 과방위원장 “저와 싸우려 하면 안 돼” 귓속말 경고
  3. 3韓 일정 첫날 ‘尹과 회동’…당정관계 변화의 물꼬 틔우나
  4. 4대통령실 경내에도 떨어진 北오물풍선…벌써 10번째 살포
  5. 5野, 한동훈특검법 국회 상정…韓대표 의혹 겨냥 ‘파상공세’
  6. 6국힘 새 대표 한동훈 “당원·국민 변화 택했다”
  7. 7‘어대한’ 벽 깨지 못한 친윤계 ‘배신자 프레임’
  8. 8“2차 공공기관 이전 않으면 국가 지속가능성 위협”
  9. 9‘민주당 해산’ 6만, ‘정청래 해임’ 7만…정쟁창구 된 국민청원
  10. 10음주운전 3회 적발 땐 면허 박탈, 현장 도주자 처벌근거도 만든다
  1. 1다대 한진중 개발사업 매각설…시행사 “사실무근”
  2. 2‘에어부산 존치’ TF 첫 회의 “지역사회 한목소리 내야”
  3. 3부산상의 씽크탱크 ‘33인의 정책자문단’
  4. 4영도 청년인구 늘리기 프로젝트
  5. 5잇단 금감원 제재 리스크에…BNK “건전성 강화로 돌파”
  6. 6위메프·티몬 정산지연…소비자 피해 ‘눈덩이’
  7. 7못 믿을 금융권 자정 기능…편법대출 의심사례 등 수두룩
  8. 8[정옥재의 스마트 라이프] '세련된 게이밍 노트북' 오멘14 슬림 리뷰
  9. 9기아·현대 등 차량, 제작 결함으로 무더기 시정조치(리콜)
  10. 10주가지수- 2024년 7월 24일
  1. 1‘최일선’ 치안센터, 부산 절반 넘게 없앤다
  2. 2북항재개발 민간특혜 의혹…늘어지는 檢 수사 뒷말 무성
  3. 3세수 메우려 치안센터 50곳 매각? 일선 경찰도 반대 목소리
  4. 4반나절 앞도 못내다본 기상청…부산·경남 심야폭우 화들짝
  5. 5구포역 도시재생 핵심인데…새 게스트하우스 ‘개점휴업’
  6. 6대저대교·장낙대교 건설, 마침내 국가유산청 승인 났다
  7. 7김해 화포천 복원지연…람사르 등록 차질
  8. 8“부산 실버산업 키워 청년·노인 통합 일자리 창출”
  9. 9부산보건대, 경성전자고와 함께 지역청소년을 위한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 진행
  10. 10부산 다문화·탈북 고교생 맞춤 대입설명회 열린다
  1. 1단체전 금메달은 물론 한국 여자 에페 첫 우승 노린다
  2. 2사직 아이돌 윤동희 2시즌 연속 100안타 돌파
  3. 3부산스포츠과학센터 ‘영재 육성’ 주체로
  4. 4부산예술대 풋살장 3개면 개장
  5. 5‘팀 코리아’ 25일부터 양궁·여자 핸드볼 경기
  6. 6남북 탁구 한 공간서 ‘메달 담금질’ 묘한 장면
  7. 7마산용마고 포항서 우승 재도전
  8. 8부산아이파크 유소녀 축구팀 창단…국내 프로구단 첫 초등·중등부 운영
  9. 9남자 단체전·혼복 2개 종목 출전…메달 꼭 따겠다
  10. 10부산항만공사 조정부 전원 메달 쾌거
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19세기 말 함경도 지형·가구 수 담아 총 35면…군사 관련 정보없어 이례적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제주 소울푸드, 자리돔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내공과 에너지가 만났다, 클래식기타-바이올린 매혹의 하모니
詩 ‘낙화’를 가곡으로…“부산표 음악콘텐츠 만들어 널리 알리고파”
리뷰 [전체보기]
오감이 압도되는 화려한 연출
이 뮤지컬 후회없이 즐기는 법? 눈치보지 말고 소리 질러!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학생 발길 붙잡은 ‘등굣길 음악회’…일상에 스며든 리코더 선율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시로 깨닫는 사물 본연의 모습 外
동물과 교감하니 치유의 기적 外
방송단신 [전체보기]
9개 민방 합작 ‘핸드메이드…’, 한국PD대상 작품상 등 영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으레 /황순희
말 /최은지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돌풍’ 설경구
‘삼식이 삼촌’ 송강호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13년 만에 다시 작품으로 재회 ‘원더랜드’ 김태용·탕웨이 부부
‘범죄도시4’ 허명행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주말 관객 잡아야 빠른 흥행? 금요일 개봉 늘어난 이유
치솟는 제작비에 쪼그라든 편수…K-드라마 생태계 위기
일인칭 문화시점 [전체보기]
연극연출가 13인이 저마다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퍼펙트 데이즈’ 삶의 성실성에 깃든 영화의 존재론
음식·로맨스 뒤에 감춰뒀네, 가부장제를 겨눈 비수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25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4년 7월 24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영화 ‘이소룡-들 (ENTER THE CLONES OF BRUCE)’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25일(음력 6월 20일)
오늘의 운세- 2024년 7월 24일(음력 6월 1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검은 고양이 새끼를 얻어 키우며 시 읊은 고려 시대 이규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소학(小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