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그 자체’로 불리던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BIFF)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램을 추억하는 자리가 열렸다. 오랜 시간 그와 영화로 교감했던 이들은 항상 밝게 웃던 그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8일 영화의전당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아주담담: 다큐 ‘지석’과 인간 지석’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8일 영화의전당 아주담담 라운지에서는 박성호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김지석과 특별한 관계의 국내외 영화인이 둘러앉아 ‘아주담담: 다큐 ‘지석’과 인간 지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비앙카 발부에나 감독, 브래들리 리우 감독, 탄 추이 무이 감독, 쇼흐레 골파리안 프로듀서가 참석했고, 다큐 ‘지석’의 감독 김영조도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김지석과 첫 만남을 떠올렸다. 쇼흐레 골파리안 프로듀서는 “1996년 일본 필름 페스티벌에서 김지석을 처음 만났다. 우리 그룹 사이에서 낮부터 밤까지 혼자 영화 보는 남성이 화제가 됐는데 그가 김지석이다. 내가 먼저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자고 말을 걸었고, 우리는 많은 영화와 영화인을 함께 만났다. 그 인연이 26년간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신인 감독 시절 그를 만났다는 브래들리 리우 감독은 “2012년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였다. 당시 나는 월드시네마에 대한 경험이 없고 글로벌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는데, 그가 누구에게나 항상 웃어주고 악수하면서 따뜻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봤다. 이후 필리핀에서 또 만났을 때 그의 명성을 알게됐고, 이후로도 그는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말했다.

비앙카 발부에나 감독은 “그는 매년 8월 필리필 로컬 페스티벌에 참가해 글로벌프리미어를 골라가곤 했다. 필리핀 영화를 사랑하고 또 지원해줬다. 나에게도 비프 심사위원으로 초청해주는 등 도움을 줬다. 2012년에는 그의 초대로 부산에 와서 다큐멘터리 워크숍 등 여러 프로젝트를 참가했는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모두 사진 기록을 가지고 있어 특별한 것 같다.”

김지석은 무엇이 특별했던 걸까. 박성호 프로그래머는 “선생님은 1년에 1000편씩 단편 장편 등 굉장히 많은 영화를 봤다. 비프가 지금은 여러 프로그램이 다 완성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생님께서는 비프의 처음부터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 등 영화인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고 영화제를 완성해오셨다”고 소개했다.

탄 추이 무이 감독은 “다큐 ‘지석’을 보면서 어떻게 비프가 만들어졌는지 처음 알게됐다. 부산에 오면 그는 항상 웃고 있고 시간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였을 줄은 상상 못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김지석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신진 감독에게도 이 다큐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돈 없고 패기만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비프를 만들고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시켰는지 말이다”며 추천했다.

다큐 ‘지석’을 만든 김영조 감독은 선배이자 선생님인 김지석과 따뜻하고 가까운 기억을 남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께서 영화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영화제가 곤경에 처했을 때 지역 영화 감독들과 진지하게 논의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늘 슬퍼보이고 힘들어했다. 제가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 일이 진정됐을 때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는데, 그래서 선생님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다”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 감독은 “다큐를 찍으며 이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굉장히 부럽고 질투도 생겼다. 이분들의 기억엔 선생님의 밝은 미소가, 나의 기억엔 슬픈 이미지가 남아서다. 솔직히 여기 객석에서 이분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김지석은 2017년 5월 프랑스 칸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57세. 그는 1995년 당시 이용관 경성대 교수(현 이사장), 전양준 평론가(전 집행위원장), 김동호 전 문화부 차관(전 이사장) 등과 의기투합해 BIFF 창설에 산파 역할을 했다. 이듬해 BIFF가 출범하면서 20여 년 동안 BIFF가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발돋움하는 데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