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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0> 모비 딕-허먼 멜빌(1819~1891)

노선장의 광적 고래사냥…‘자연 꺾으려는 자, 재앙 부른다’ 경고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2-10-06 19:35:2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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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시절 포경선 탄 경험 바탕
- 성경·신화·역사를 소설로 엮어
- 19세기 美고래잡이 생생한 묘사
- 인디언 부족 이름 딴 ‘피쿼드’호
- 백인이 저지른 폭력·우월감 비유

- 향유고래는 탄소 줄여주는 생물
- 배를 채우러 잡아먹어선 안 돼

“저는 방금 사악한 소설을 한 편 끝냈는데 어린 양처럼 순수한 느낌이 듭니다.”

작가 스스로 사악하다고 한 소설, ‘모비 딕(Moby Dick)’이다.
싱긋 웃는 듯한 가분수 향유고래는 순한 포유류다. 덩치에 비해 작은 날개 지느러미와 강력한 꼬리지느러미로 유유자적 헤엄치는 중이다. 대왕오징어를 잡아먹다가 얻은 채찍 자국 같은 입가 상처가 눈에 띈다. 도서 ‘거의 모든 것들의 바다’ 제공
독자가 이 고전을 읽은 뒤 저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소설이 숨긴 속마음을 알아낸 특급 독자이기 때문.

멜빌은 ‘주홍 글자’ ‘큰 바위 얼굴’을 쓴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과 가깝게 지냈다. 멜빌은 호손을 셰익스피어와 견줄 만한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15살 연상인 선배 소설가를 무척 좋아했나 보다. 31세 멜빌은 심해처럼 뭔가 심오해 보이는 장편 ‘모비 딕’(1851년)을 발표하기 전 호손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방금…”은 그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이 의미심장한 말을 염두에 두고 책장을 넘겨보자. 겉으론 포경선 노선장 에이해브 얘기다. ‘직진형’ 인간인 그에게 모비 딕이라는 거대한 흰색 향유고래(백경)는 철천지원수다. 그 괴물이 오른쪽 정강이를 물어뜯어 의족을 낀 장애인이 됐다. 불구로 사는 고통보다 일개 고래에게 당했다는 치욕이 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에이해브를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모비 딕에게 죽임당하는 쪽으로 결말을 낸다. 자연을 꺾으려는 자는 재앙을 면치 못한다는 경고일까. 이렇게 마무리된 ‘모비 딕’은 ‘비극 소설’로 불린다.

저자는 청교도주의자였다. 그렇게 자라왔고 소설 속 일인칭 화자도 마찬가지. 기독교를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그랬기에 출간 후 기독교인인 미국 독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평단도 주목하지 않았다.

1891년 멜빌이 작고했을 때 나간 짤막한 신문 부음 기사는 대표작을 언급하며 ‘Mobie Dick’으로 잘못 썼다.

에이해브 선장과 모비 딕이 최후 일전을 벌이는 장면. 모비 딕 크기가 상당히 과장됐다.
그 뒤 100년 넘게 에이해브 선장과 모비 딕은 해저에 잠들었다. 그랬던 그들이 함께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저자 탄생 100주년 직후인 1920년께다. 멜빌 문학 세계가 재조명되면서 벌어진 반전. 저자가 사망한 1891년 절판됐던 작품이 이제는 ‘위대한 미국 소설(Great American Novel, GAN)’로 불린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주홍 글자(너새니얼 호손)’ ‘압살롬 압살롬(윌리엄 포크너)’ 같은 명작, 그 반열에 들었다.

135장인데 장마다 소제목이 달렸다. 본문에 비유와 상징이 넘실댄다. 책 제목부터 거친 바다 냄새. 모비는 속어로 ‘거대한’, 딕은 ‘녀석, 놈’이란 뜻이다. 향유고래는 영어로 ‘Sperm Whale(정액 고래)’. 이 고래 머릿속에 든 기름을 고래 정액으로 오인해 그리됐다. 다른 이름·명칭에도 상징성이 뚜렷하다. 기독교인인 백인 청년이 일인칭 화자다. 첫 문장에서 “Call me Ishmael(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이라며 등장한다. 이슈메일은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 구약성서 창세기 속 인물이다. 히브리어 이스마엘을 영어로 읽으면 이슈메일. 그는 모비 딕과 함께 수장된 포경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전말을 비장하고도 쓸쓸히 전한다. 에이해브(Ahab)는 구약성서 열왕기에 나오는 왕 아합의 영어명이다. 전제군주였던 아합과 포경선 일인자 에이해브는 닮았다. 이처럼 성서 인용이 많다는 건 멜빌이 종교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

모비 딕을 추적하는 포경선은 피쿼드(Pequod), 1637년 미국 전투 부대가 전멸시킨 인디언 부족이 피쿼드다. 배 이름은 백인이 저지른 폭력과 우월감과 동의어. 피쿼드호는 작은 사회다. 온갖 인물이 탄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폴리네시아 식인 종족 출신 작살잡이 퀴퀘그(Quequeg). 그는 ‘백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일등항해사 스타벅(다국적 커피점 스타벅스가 그의 이름을 땄다)은 합리주의자다. 이 포경선에서도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하다. 백인 항해사는 흑인 소년을 학대한다. 하지만 이슈메일은 이교도이자 유색인인 퀴퀘그를 믿고 의지한다.

멜빌은 야심만만한 작가였다. 성서 창세기, 고대 서양사, 근대 문화를 소설로 엮었다. 문장이 서사시 같고 문학·예술성이 빼어나다.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고래는 조용한 기쁨, 빠르고 힘찬 움직임 속에서 맛보는 평화로운 안정감에 싸여 있었다. 에우로파를 납치하여 자신의 우아한 뿔에 매달고 헤엄쳐 가는 하얀 황소, 즉 제우스, 처녀를 계속 곁눈질하며 추파를 던지는 그의 아름다운 눈, 크레타섬에 마련된 사랑의 보금자리를 향해 황홀할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제우스, 그 위대한 신 최고신 제우스도 성스럽게 헤엄치는 저 아름다운 흰고래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133장, 추적-첫째 날)

묘사가 백과사전식으로 치밀하다. 20대 후반 포경선에 승선한 경험이 진가를 드러낸다. “타운호(Town-Ho)~.” 19세기 미국 포경선에서 돛대 꼭대기에 올라간 선원이 고래를 발견하면 이렇게 외쳤단다. 망망대해에서 포경선들이 우연히 만났을 때 선원들이 상대방 배를 즉시 방문하는 관례가 ‘Gam’인데 어떤 사전에도 이 단어가 실리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53장, 사교 방문) 현재 이 단어는 사전에 올랐다.

포경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가령, 고래는 바다에 내려진 작은 보트 4, 5척이 잡는다. 보트마다 포경 밧줄이 재어져 대여섯 선원을 둘러쌌다. 고래가 작살을 맞고 도망치면 이 밧줄을 획획 소리를 내며 풀린다. ‘선원이 밧줄을 목에 걸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다. “포경 밧줄이 실제로 풀려나가기 전, 노잡이들 주위를 조용히 굽이치고 있을 때의 그 우아한 평안, 이것이야말로 이 위험물의 다른 어떤 양상보다도 진정한 공포감을 훨씬 더 불러일으킨다. …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60장 ‘포경 밧줄’)

80장까지 읽은 독자는 ‘고래 박사’가 된다. 향유고래는 머리가 전체 몸길이의 1/3인 가분수다. 상아질 이빨이 대개 42개이고, 흰 아래턱뼈는 조각·공예에 쓰인다. 머리뼈는 6m 깊이에 있고, 그 밑에 자리 잡은 뇌는 덩치에 비해 작고 모양은 인간 뇌를 닮았다. 머리 앞부분은 거의 수직에 가깝고, 머리(혹)는 단단한 피부조직이 둘러싸였는데 아주 견고하다. 향유고래는 코가 없으며 눈 위에는 주름살이 많고,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귀를 숨겼다. 고래 머리엔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 분수공이 뚫렸다. 향유고래는 한 개, 참고래는 두 개다.

노련한 포경 선원은 멀리서도 물보라 형태만 보고도 고래 종류를 알아낸다. 참고래는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처럼 양 갈래로, 향유고래는 앞쪽으로 기울어진 물줄기를 뿜는다.

멜빌은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를 잡아먹는다고 썼다. 몸체에 난 채찍 자국은 바위에 긁힌 상처랬다. 오늘날 우리는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와 엉겨 싸우다가 얻은 상흔이라는 걸 안다. 86장 ‘꼬리’를 보면, 향유고래에서 가장 특별한 기관은 꼬리지느러미. “고래는 결코 꼬리를 꿈틀거리지 않는다. 사람이든 물고기든, 꿈틀거리는 동작은 열등하다는 표시다. 꼬리는 고래가 추진력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몸 아래쪽에서 두루마리처럼 앞쪽으로 돌돌 말아 넣었다가 뒤쪽으로 빠르게 튀긴다.” 고래가 모든 생물 중 가장 경건한 생물이라고 확신한다.

고래를 잡아먹고 가두어 구경하는 시대는 지났다. 고래가 보고 싶다면 인간이 바다로 가야 한다. 향유고래는 탄소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늦춰주는 친환경 생명체 아닌가.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그런 반성문을 쓰면서 ‘모비 딕’을 다시 읽어보면 새롭다. 예전 부끄러운 시절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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