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일·주로미 부부 ‘또 바람이…’
- 민중의 세계사 작업 네 번째 작품

- 샤우낙 센 감독 ‘숨쉬는 모든 것’
- 인도 솔개로 환경오염 문제 고발

와이드 앵글은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분야의 수작을 모아 선보인다. 사회적 메시지를 공감하기 쉬운 소재로 풀어낸 작품들은 영화의 시선을 넓혀 색다르고 차별화된 비전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다큐멘터리 경쟁과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상영작 6편을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경쟁

또 바람이 분다

★또 바람이 분다(김태일·주로미/대한민국)

지난 10여 년간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닌 김태일과 주로미 감독이 비로소 그 작업의 총합에 이르렀다. ‘오월애(愛)’(2010) ‘웰랑 뜨레이’(2012) ‘올 리브 올리브’(2016)에 이은 ‘민중의 세계사’ 작업의 네 번째 작품. ‘또 바람이 분다’는 전작들을 아우르며 그들 자신의 이야기도 담겼다. 이 시리즈의 제작사 ‘상구네’는 다름 아니라 감독 부부의 가족들이다. 전 가족이 스텝이 되어 광주 캄보디아 보스니아 팔레스타인을 다니며 고생을 사서 했고, 어느새 감독의 두 아이는 어른이 됐다. 가벼운 주머니로 세계분쟁지역만 골라 다닌 한 가족의 여정은 가족사이자 매우 특별한 성장담이 됐다.

★친애하는 어머니, 죽음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첸시이/미국·중국)

친애하는 어머니, 죽음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감독인 딸은 엄마의 암 투병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다. 30년 간 의사로 일한 엄마는 잘사는 일만큼 잘 죽는 일에 관해 생각해 왔다. 병원을 놀이터 삼아 자란 감독은 죽음을 둘러싼 풍경이 익숙했지만, 막상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난다. 투병과 돌봄에 관한 모녀의 사적 에세이처럼 보이던 영화는 어느새 죽음을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어떻게 죽음 앞에 서야 하는가’라는 만만치 않은 화두를 던져온 영화는 다시 삶을 긍정하는 일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눈썹(정윤석/대한민국·홍콩·중국)

눈썹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로 국내외적으로 주목받은 정윤석 감독의 세 번째 장편. 한국 중국 일본을 오가는 국제적인 프로젝트인 ‘눈썹’은 ‘인간의 대체물’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이들을 통해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인간성에 대해 사유하기를 제안한다. 메신저(전령) 메시지(말씀) 메시아(구원)로 나뉜 챕터 안에는 중국 섹스돌 공장의 노동자들에 이어 AI 로봇으로 일본정치 체제의 혁신을 꿈꾸는 정치인, 러브돌과 같이 사는 중년의 일본인이 교차로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숨쉬는 모든 것(샤우낙 센/인도·미국·영국)

숨쉬는 모든 것

HBO의 ‘숨쉬는 모든 것’은 인도의 솔개와 솔개를 돌보는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주인공들은 땅에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솔개가 부쩍 증가하는 걸 발견한다. 이유는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다. 먹이가 사라져서, 쓰레기가 많아져서, 물과 공기가 더러워져서 등등. 그리고 영화는 솔개의 문제가 정확히 인간의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솔개와 같은 땅 물 공기를 공유하는 우리는 솔개가 건강하지 못한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 수 없다. 솔개의 시체와 더러워진 마을의 모습이 함께 떠오를 때 관객은 웬만한 장르 영화보다 더 무서운 미래를 예감할 수밖에 없다.

★철수에게 자유를(하줄리·이성민/대한민국·미국)

철수에게 자유를

1973년 이철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어느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긴급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아시아인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한 백인 증인들의 엉터리 증언과 수사관들의 방기가 초래한 결과다. 이 사건에 의구심을 가진 한인 기자가 수사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기사를 쓰면서 무고한 이민자 청년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 영화는 수많은 이의 구호 활동이 이철수에게 미친 영향과 10년간의 수감 생활이 그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가감 없이 비추며 한 사람의 삶을 통감하게 만든다.

★미얀마 다이어리(미얀마 영화집단/네덜란드·미얀마·노르웨이)

미얀마 다이어리

2021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은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또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안전과 자유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시민이 무려 20만 명에 달한다. 미얀마 다이어리는 정부의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행동을 작은 카메라로 담은 작품이다. 카메라가 기록한 내용만큼이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끝까지 익명으로 남아야 했던 감독과 스탭의 존재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