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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김대중 마주앉아 나누는 현대사 이야기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류상영 지음 /논형 /2만 원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2-09-22 19:35:53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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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상영 교수 방대한 연구 바탕
- 두 거인 성장·가치관·이념 등
- 가상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
- 오늘날 반목의 정치에 큰 교훈

박정희 전 대통령만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속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마뜩잖을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속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이 마뜩잖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란 것이 그 근본에서 철학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타협하는 과정의 예술이란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류상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쓴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는 정말이지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느낄 것 같다.
1968년 경인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의 뜻으로 막걸리를 뿌리는 모습(왼쪽)과 1987년 광주 망월동 민주묘역을 찾은,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 유족과 함께 통곡하는 장면. 각각 ‘건설’과 ‘민주주의’를 표상하는 두 사진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삶과 정치를 상징한다. 논형 제공
한국 현실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주는 인상은 ‘상대의 말꼬리를 잡은 뒤 그것을 빌미로 상대를 없애어버리려고 끝도 없이 엉뚱하고 자잘한 짓을 하는 것’에 가깝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책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일단, 자잘하지 않고 굵다. 박정희와 김대중이라는 두 정치적 거인을 저자는 같은 테이블에 초청한다. 김대중과 박정희는 생전 정치의 영역에서 독하게 맞섰던 인물이다. 김대중에게 박정희는 타도할 수밖에 없는 독재자였고, 박정희에게 김대중은 없애야 할 비판자였다. 두 사람은 과연 토론할 수 있을까?

또한 이 책은 박정희와 김대중에 관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저자가 오랜 세월 꼭꼭 씹어 소화한 뒤 세심하게 적재적소에 펼쳐 활용한다. 생전 두어 번 스치듯 만난 두 거인이 가상의 대화를 나누는 게 이 책의 요체인데, 그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려면 저자가 두 사람 각각에 관해 해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내면에는 자신만의 해석과 판단이 있어야 하되 그것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절제도 필요한데, 저자는 그 일을 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로만 듣고 아직 읽지는 못한 원효 스님의 ‘화쟁’이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1부는 제목이 ‘인간적 대화: 나는 누구인가?’이고 제2부는 ‘철학적 대화: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 대목에서는 몰랐던 뜻밖의 사실도 꽤 알게 되고, 공감이나 연민도 느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과 어머니’ ‘가난’ ‘기뻤던 순간들’ ‘슬펐던 순간들’ ‘생과 사, 그리고 유언’ 등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자기 이야기를 펼치고 서로 맞장구도 치며 이해와 화해의 태도도 보인다. 저자는 두 사람의 저서·자서전 그리고 두 인물에 관한 학술 연구와 대중 서적까지 두루 참고해 자주 해당 책의 원문을 함께 제시한다.

전반부인 1부와 2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왜 일본을 크게 참고하면서 그토록 빠르고 거세고 국민을 앞에서 이끌어 가는 방식에 의지했는지 차츰 느낄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그가 행여 좀 늦게 가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적 과정과 대중을 중시하며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인으로 성장한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인 제3부는 ‘역사적 대화 : 박정희와 김대중이 얽혀 살아온 역사 현장들’이다. 두 사람은 서로 비판과 반박도 하면서 당시 치열했던 정치 현장에서 자기가 왜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회고하고 설명한다. 독자 처지에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대목에서는 동감도 하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비판의식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유신 정권’을 전후한 시기와 관련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가 옹색해진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도 이상을 놓지 않고 오랜 세월 버티며 한국 사회의 성숙을 목격한 ‘민주적 과정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죽일 놈’으로 치부했던 조선 시대 당쟁의 일부 주역 그리고 정치의 역할을 긍정하는 현재의 한국 시민이 꼭 읽어 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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