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태풍 끝에 배꼽조차 찾지 못해
눈물 섞어 갈아 낸 즙 그래도 다디달다
과수원 한 해 농사를 헐값으로 내는 날.
내 삶의 생채기도 향긋할 수 있다는 듯
오늘따라 유난히도 달콤한 배즙 뒷맛
먼 그날 셈할 일이네 아하, 눈물, 제값은.
태풍 힌남노는 가을 수확을 앞둔 과수 농가에도 큰 생채기를 남겼다. 가뭄이 심해 더 힘들었을 농심을 생각하니 공감을 더한다. 시인은 어느 해 태풍으로 농사를 망친 친구의 마음을 잔뜩 길어다가 하늘에 뿌려 보고 꽃도 피우며 내심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물론 ‘하늘 꽃’이란 없다. 그래도 꽃을 피우는 것은 자신도 늘 꽃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꽃의 불꽃 같은 상승적 이미지는 세상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시인은 이런 주제로 벌써 40여 편의 시를 쓰고 있다. 도치법으로 표현된 ‘먼 그날 셈할 일이네 아하, 눈물, 제값은’은 이 시조를 매듭짓는 귀한 말씀이 되어, 배즙의 달콤함과 함께 짙은 향기를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먼 그날은 내년 아니면 더 오랜 시간 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날일 수도 있다. 삶의 생채기를 다독거리면 언젠가는 제값을 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노래한 작품이 주는 여운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