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목적으로 쌓은 특수한 성
- 봉수대와 연계로 방어기능 충실

- 인근 개발 가속화로 보존 위기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營鎭堡城)의 변천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나왔다. ‘조선의 영진보성-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국학자료원)가 그것이다. 한국 성곽 연구자 이일갑 시공문화재연구원 원장이 썼다. 이 원장이 지난해 8월 발간한 ‘조선의 읍성’(국학자료원)에 이은 조선 시대 성곽 관련 학술서다.

‘1872 군현지도’에 보이는 다대포진성(붉은색 원 내). 평면이 네모꼴이다. 규장각 소장

성곽은 단순하게 성돌로 이뤄진 축조물이 아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성곽은 개인, 집단, 부족, 국가 등의 물리적인 힘으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동일한 관념과 행동양식을 가진 개인들이 결합된 집단체들이 축조한 결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곽은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등 역사 전반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곽이 있는 지역의 역사 전개나 지리 특성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조선의 영진보성’은 성곽 유적의 고고학적 연구·조사 성과를 고지도를 비롯한 문헌과 비교·분석해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의 역사적 실체를 짚은 책이다. 개발로 훼손이 가속화돼 언제 죄다 사라질지도 모를 우리나라 영진보성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의미도 있다.

영진보성은 도성과 읍성, 산성 등 일반적인 성곽과 구분된다. 군사 목적으로 쌓은 까닭이다. 진(鎭)은 군사상 중요한 곳에 설치한 지방행정구역이다. 보(堡)는 제진(諸鎭)의 보조적 방어시설이다. 그래서 영진보성은 “당대 군사전략, 군사편제, 축성기술, 무기체계, 동원체계 및 주변 국가와의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곽”이다.

먼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영진보성 인근 봉수대에 관한 해석이다. 저자는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주변에 축조된 봉수대가 기존 봉수체계와는 또 다른 운영체계, 즉 영진보성과의 연락을 유지하며 영진보성에서 확인되지 않는 사각 지점에 대한 레이다 기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대표 사례는 부산 사하구 다대포진성. 이 성은 좁은 해협과 완만하게 굽은 지형 안쪽에 자리 잡고, 주변에 크고 작은 섬이 있어 적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이점이 있지만, 반대로 적의 출입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를 보완해준 것이 인접한 아미산의 응봉봉수대이다. 이를 통해 다대포진은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영진보성의 설치·폐지가 해당 지역 지명의 변천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울산의 개운포진과 부산 개운포진, 거제도 조라포진과 구조라포진, 부산 기장군 두모포진과 부산 동구 두모포진 등이 그런 사례다. 다대포 지명 역시 다대진에서 유래했다. 또 저자는 부산진성 위치와 관련해 임진왜란 이전에는 부산 동구 좌천동 해안지대(부산항 매축 이전), 임진왜란 이후에는 동구 범일동 부산진성공원(옛 자성대) 주변에 각각 자리 잡은 것으로 판단했다.

임진왜란 때 영진보성이 의도적으로 해체돼 왜성 축성 재료로 쓰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저자는 “특히 울산 서생포왜성의 경우 최근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된 목조 굴립주 건물의 잔존 양상 등을 파악해볼 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선 남부를 일본의 영토화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