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 수상 학자 폴 크루그먼
- NYT 기고 칼럼들 책으로 펴내
- 사회안전망 허문 부자감세 등
- 美가 부활시킨 나쁜 정책 맹폭
- 보수주의·긴축 문제점 지적도

읽기에 마냥 편하거나 쉬운 책은 아니었다. ‘단짠단짠’ 형태의 묘미만큼은 확실히 있었다. 경제학용어나 경제현상 해설이 때로 좀 까다롭고 어렵게 다가왔다. 그러다 폴 크루그먼이 사정없이 ‘좀비’를 까는 대목에서는 통쾌하고 재미있고 쉬웠다. ‘단짠단짠’의 리듬감이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칼럼집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가 나왔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시 월스트리트에서 펼쳐진 금융 자본 규탄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월가를) 점거하라”고 쓴 달러 지폐로 마스크를 만들어 이 집회의 대의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신문 DB

폴 크루그먼은 잘 알려진 경제학자다. 1953년생인 그는 24살 때인 1977년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55살 때인 2008년 신무역론과 신경제지리학 연구 성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책에 실린 저자 소개를 인용한다. “2011년 경제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현존 학자 중 가장 좋아하는 경제학자’를 묻는 설문 조사 결과 크루그먼이 선정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논설위원 마틴 울프는 크루그먼을 가리켜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고, 가장 존경받는 칼럼니스트’라고 평했다.”

그는 유명한 논객이다. 그가 쓴 책은 경제와 정책과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독자 사이에서 곧잘 중요한 책으로 꼽힌다. ‘불황의 경제학’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 등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며 꽤 삐딱한 신문인 뉴욕타임스(NYT)에 격주로 경제 칼럼을 20년 동안 쓰고 있다. 이 책은 그가 NYT에 기고한 칼럼을 중심으로 엮었다. 영어 원제는 ‘Arguing with Zombies’.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부제에 집약됐다. ‘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크루그먼은 여기에 ‘좀비’라는 비유를 들고 온다. 분명 잘못된 (경제) 신념이고 (경제·공공) 정책인데, 패도 패도 살아남고 쏴도 쏴도 일어서는 좀비처럼 그것들이 이 세상을 배회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그는 비판한다.

저자 폴 크루그먼.

자! 그렇다면 누가 좀비인가? 흔치 않은 이 ‘천재+스타’ 경제학자가 가장 정성을 들여 꼼꼼하고 끈질기게 쥐어패는 좀비는 ‘부자 감세 좀비’다. 참고로, 이 책의 글 상당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 미국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부자 감세 주장과 담론은 미국에서 유서 깊다. “뭐니 뭐니 해도 ‘야수 굶기기(starving the beast)’ 전략, 곧 ‘부자 감세를 실시하고 그 결과 늘어난 적자를 구실 삼아 사회 안전망을 파괴하려는’ 전략이야말로 공화당이 수십 년 동안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것이었으니까.”(65쪽)

이 석학은 미국 경제를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단언한다. “명심하자. 감세가 낳은 단 하나 분명하고도 강력한 결과는 기업에 엄청난 이익을 안겼다는 것임을. 그로 인해 연방 정부가 법인 소득에서 걷던 세수가 곤두박질쳤다.”(77쪽)

그다음 좀비는? ‘기후 변화 부정 좀비’ ‘보편적인 의료 보험을 물어뜯는 좀비’, 특히 긴축 정책을 선호하는 경제정책 당국을 신랄하게 까는 ‘진지하고 점잖은 척하는 긴축 좀비’ 등이 인상 깊었다. 그는 미국 공화당을 향해 보수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맹공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 강조한다. “경제가 아니다. 문제는 정책이야, 바보야(It‘s policy, stupid).”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