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정스님 15년 연구 해설서 2권
- 中서 한역된 불경 왜곡 바로잡아

관정(觀頂·사진) 스님이 땀 흘려 농사짓듯 15년 동안 정성스레 지어서 마침내 펴낸 거대한 책 ‘반야심경 정해’에는 이런 취지의 대목이 때때로 나온다. “불교를 설명하면서 난해한 말을 많이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132쪽) 이 문구는 790쪽짜리 ‘반야심경 정해’ 전반을 철학처럼 관통한다. 이 원칙은 다른 동양 고전을 읽을 때도 꽤 잘 적용된다.

해인사 고려대장경 속 현장 스님이 한문으로 번역한 ‘반야심경’. 알아차림 제공

예컨대 유학 사서 가운데 ‘논어’가 가장 명쾌하고 경쾌하며 생기가 넘친다. 제자·대중·세상을 향한 공자의 가르침을 육성으로 전하기 때문이며, 배움(學)뿐 아니라 물음(問)과 익힘(習)과 실천(行)의 세계가 조화롭고 활기차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어’의 어떤 대목은 배우고 익힌 걸 실천해보면 단박에 깨우칠 수 있다. 그런 걸 쥐고 골방에 앉아 머리로만 이해하려 끙끙대고 복잡한 형이상학에 가둬버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 엉뚱한 길로 가고 만다.

관정 스님이 펴낸 ‘반야심경 정해’와 ‘반야심경, 무슨 말을 하고 있나’에서 받은 첫 느낌은 위와 같은 깨우침을 거듭 떠올리게 했다. 관정 스님은 ‘반야심경 정해’ 머리말에서 밝힌다. “‘반야심경’은 번역만 제대로 해놓으면 결코 난해한 경이 아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옛날부터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등에서 가장 많이 독송돼 온 경이지만 그 뜻을 알려고 하면 매우 어렵다.” 그 원인에 관한 스님의 견해는 명쾌하다. “왜냐하면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은 408년 ‘위대한 불경번역가’로 꼽히는 승려 구마라집이 한문으로 처음 번역한 뒤 649년 당나라의 고승 현장 스님이 한역(漢譯)했고 뒤이어 의정(당나라)·법월(마가다국)·법승(티베트)·혜륜(당나라)·시호(송나라) 스님이 한역본을 내놓았다. 그래서 한역본 8종이 전한다. 옛날 인도에서 기록한 산스크리트어본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티베트어 번역본과 영역본도 있다. 저자는 한역본 8종과 산스크리트어본을 중심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수많은 ‘반야심경’과 영역본·티베트어본을 철저히 연구했다.

관정 스님

그런 길고 고된 연구 과정을 거쳐 저자는 우리가 지금 한국어로 읽는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구마라집·현장 스님의 한역본에 중대한 오해·착오·왜곡 그리고 의도된 편집 행위가 있었음을 이 책에서 낱낱이 논증했다. 한국이 주로 접하는 한글 ‘반야심경’은 대체로 현장 스님이 한문으로 옮긴 번역본 등이 내세우는 중국 선불교·유식불교의 강한 영향 아래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참뜻과 견줘보면 이는 사실상 ‘반야심경’을 거꾸로 세워놓은 매우 잘못된 이해라고 저자는 매섭게 말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중국에서 기원한 선불교·유식불교는 부처가 인도에서 사람들에게 직접 전한 깊고 명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가르침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학술 불교 같은 것이 돼버렸다. 멈춤 수행은 있되 관찰 수행(위빠사나)은 빠졌다. 초기 불교와 대립한 힌두교가 주창한 관념적 형이상학 원리인 아트만 등을 넣었고, 이는 중국 특유 노장사상 등과 결합해 부처의 초기불교를 ‘소승불교’로 폄훼하고 부처를 깎아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런 경향이 ‘반야심경’이 오역·왜곡되고 난해해지는 현상에 그대로 녹아들어 한글 ‘반야심경’ 속에 자리잡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 사례는 ‘반야심경’ 말뜻 풀이다. 난해하고 불가사의한 추상 세계가 아니라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방법의 핵심을 말해주는 경’이라고 저자는 명쾌하게 푼다. 저자는 초기불교의 산스크리트어본을 중요하게 참조하면서 ‘반야심경’ 한 문장 한 문장 한 글씨 한 글씨를 새롭게 번역해 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거대한 책’의 느낌을 준다. 오온·공·무아·색즉시공·색수상행식 등 알듯 말듯한 불교 개념 또한 또렷이 정리했다.

‘반야심경 정해’ 저자 관정 스님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서 위빠사나금정선원을 운영하고 유튜브 ‘관정 스님 반야심경 강의’를 진행하며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금수암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