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산악회 회장 지낸 저자
- 옛 지도·문헌 20년간 집대성

임재식 유유자적여행자클럽 회장이 쓴 ‘땅이름 여행-부산 지명 순례기’는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이라는 느낌이 갈피마다 배어 있다. 저자 임재식은 홍익산악회·천산산악회 회장을 지냈다. 중등학교 교사로 30여 년 공부하고 가르쳤으며 부산 영도구에서 20여 년, 사하구에서 40여 년 살았다. 그가 1998년 펴낸 ‘물처럼 바람처럼 길 따라 마음 따라’는 부산 관점에서 쓴 여행책이 아주 귀했던 그때 충실한 부산 관점 여행서로 알토란 같은 구실을 했다.

부산 동구 부산진성공원(옛 자성대공원·사진 앞쪽) 전경. 사진 뒤쪽 산줄기 아래 녹지가 증산공원이다. ‘부산’ 지명 유래와 관련해 ‘증산설’과 ‘자성대설’이 있다. 국제신문 DB

‘땅이름 여행’은 50년 넘게 산행과 여행을 다니며 우리 산천을, 부산을 관찰하고 느끼고 사랑한 저자가 부산 지명의 문화사이자 땅 이름으로 풀어낸 부산 인문학이다. 그는 “새로 생긴 사상구 부산도서관에 가면 부산에 관한 책만 모아 놓은 방이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기간 나는 부산도서관과 내 작업실을 오가며 이 책을 쓰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온 산하를 주유하던 그에게 코로나19는 집필 시간을 선사했다.

‘땅이름 여행’은 책 내용을 미덥게 해주는 특징을 또렷이 갖췄다. 첫째, 인용하고 참고한 자료가 다양하고 방대하다. 옛 지도와 옛 기록, 향토사학자들의 선행 탐구, 현대 학자의 연구 결과, 부산시와 각 구군의 공식 문헌, 증언, 설화, 문학작품, 인터넷 검색, 저자의 체험·기억·추론 등 20여 년 숙성한 자료를 매우 풍성하게 참조한다.

둘째, 원칙을 일관되게 지킨다. 중요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땅 이름은 대부분 옛날에 순우리말로 출발했다. 이를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의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므로 한자로 돼 있는 땅 이름의 순우리말 발음이나 뜻의 뿌리를 찾아가면 해당 지명의 기원·실체에 훨씬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서 저자는 부산 땅 이름 기원을 둘러싼 숱한 억지 해석과 무리한 추론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는다. 셋째,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한 가지 더 들자면, 평생 우리 산천을 산행하고 여행한 저자 몸속에 쌓인 감각이다. 책에는 부산 지명의 유래·본질에 관한 설득력 높은 설명이 아주 많다. 간혹 아리송한 대목도 있다. 어쨌든 저자 특유의 접근법 덕분에 책은 미덥게 다가온다.

저자를 인터뷰한 자리에서 “‘부산’이라는 지명의 기원을 동구 증산(지금의 증산공원)으로 보느냐 그 아래 부산진성(자성대)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저자는 “증산으로 본다”고 답했다. ‘부산 명칭 기원’은 몇 가지 설이 부딪혀 현재 정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인터뷰를 끝낸 뒤 증산과 부산진성을 둘러보았다. 바로 느낌이 왔다. 부산진성은 한 고장 이름의 기원이 되기에는 너무 작다. 산의 맥이 이어지고 규모를 갖춘 증산이 부산 지명의 기원일 것이라는 판단이 ‘감각적으로’ 들었다. 저자의 원칙과 감각에 설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