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 루터교 목사 슬하에 장남으로 태어난 니체는 5세 때 36세 아버지를 여읜 뒤 신앙심 깊은 외가 친척에게 맡겨졌다. 청소년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16세 때 문학·음악 그룹인 ‘게르마니아’를 만들었다. 그는 이 그룹에서 바그너 음악을 알게 된다. 18세 때 고질병인 두통이 시작됐다.
20세에 시 ‘알지 못하는 신’을 발표했고, 본대학에 입학해 신학·고전 문헌학을 리츠 교수에게 배웠다. 21세에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읽고 한때 이 사상가에 빠졌다. 24세(1868년) 때 낙마로 다쳐 염증을 얻었다. 이 해에 바그너를 처음 만나고 그를 숭상하게 된다. 25세에 스위스 바젤대 고전 문헌학 조교수로 채용된 뒤 프러시아 국적을 버리고 스위스인으로 변신한다. 29세 때 편두통이 심해지고 나빠진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31세에 눈병과 위장병까지 앓는다. 34세 때 반유대·인종차별주의자가 된 바그너와 관계를 끊었다.
35세 때인 1879년 병으로 바젤대 교수직을 떠났다. 아울러 발작 증세(118일간)가 심해졌다. 이때부터 1888년까지 10여 년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연금으로 생활했다. 1888년(44세) 연말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났다. 이듬해 예나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50세 니체는 거의 광인이 돼 외출하지 못한다. 55세에 19권짜리 니체 전집이 나왔다. 이듬해 니체는 바이마르에서 숨져 고향 뢰켄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