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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53> 작곡가 남국인 작품에 나타난 부산

남진·나훈아·주현미 히트곡 제조기… ‘부산표 감성’ 고스란히 담아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7-17 19:33:0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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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호에 발탁돼 가수로 데뷔
- 제대 뒤엔 작곡가로 방향 전환
- 바다·태종대 등이 예술적 토양
- 스승 능가하는 여러 작품 발표
- 작사가 정은이 내조도 큰 힘돼

한 인물이 자신의 출생지를 떠나 새로 자리를 잡게 된 뒤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면 출생지보다 정착지가 더욱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시간의 분량으로도 그렇거니와 정착지에서의 모든 토양과 환경이 그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과 기반을 조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남국인. 오른쪽 사진은 가수 김승진(왼쪽)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남국인을 만난 모습. 이동순 제공 KBS 화면 캡처
작곡가 겸 작사가로 활동했던 남국인(南國人·1942~ )의 경우가 그렇다. 태어난 곳은 경북 문경이란 설이 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년기에 가족과 부산으로 옮겨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요100년사’를 비롯한 여러 자료에는 남국인의 출생지가 부산 동구 범일동으로 기록돼 있다.

남국인은 부산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음악을 좋아했으며 여러 친구를 사귀었다. 그에게 있어서 부산은 실질적 고향이다. 출생지의 기억보다는 성장지의 체험이 훨씬 강렬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본명은 남정일이다. 배정중과 배정고를 다녔다. 원래는 가수가 될 꿈을 지니고 강남주노래학원을 다녔는데, 강남주는 일제시대 후반기의 인기가수였다. 거기서 지향이 같았던 가수 진송남을 만나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이 시절에 우연히 작곡가 백영호에게 발탁돼 미도파레코드에서 ‘녹 슬은 기타’(월견초 작사·백영호 작곡)란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했다. 친구 진송남은 원래 뜻한 바대로 가수의 꿈을 이루었으나 남국인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작곡이 훨씬 재미가 있어서 노래를 만드는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 백영호 작곡의 노래 ‘해운대 소야곡’ 등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대중적 반응을 얻지 못하자 아예 서울로 터전을 옮겼다.

이 무렵 가수 남인수의 모창 가수로 알려진 남강수(본명 이동휘)와 남성 듀엣을 결성하고 ‘남형제’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역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 때부터 남국인은 가수보다 작곡가의 길로 방향을 완전히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삶의 여정에서 그런 선택은 상당히 지혜로운 결정이라 하겠다.

남국인이 작곡가로서 발표한 첫 작품은 배호의 노래 ‘누가 먼저 말했나’이다. 1960년대 후반 ‘마음은 서러워도’란 노래를 발표했는데 남국인이 이 가요작품의 작사, 작곡을 했다. 처음에 가수 유민의 목소리로 취입을 시켰으나 대중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곡은 이후 5년 뒤인 1973년 부산 출생 가수의 저음가수 박일남이 리바이벌해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남국인은 대중음악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가져서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도 여러 편 했다. 작사가로서의 예명은 ‘고향’이다. 이미자의 ‘평양기생’도 작사가 남국인의 명성을 드높여준 작품이다. 남상규가 불렀던 ‘동백꽃 피는 고향’에서 남국인은 1960년대 후반 고향 울릉도를 떠난 청년노동자가 고향이 그리워서 포항 부두를 헤매는 애절한 정서를 훌륭히 담아냈다.

대구 출신의 가수 배성을 만났을 때 그의 음악적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의 음색과 창법에 맞게 다듬어낸 노래가 ‘사나이 블루스’이다. 이 작품은 작곡가 남국인의 재능과 명성을 크게 각인시켜 준 인상적인 노래였다. 김상진의 노래 ‘고향이 좋아’도 남국인이 작사와 작곡을 전담한 작품이다.

이처럼 남국인의 작품을 받아서 히트를 시킨 가수는 참으로 많다. 이미자 패티김 남미랑 남상규 진송남 이수미 나훈아 남진 배성 은희 펄시스터즈 김상진 김상희 배호 하춘화 김부자 이용복 이상열 정훈희 전영록 주현미 현철 송대관 문희옥 설운도 김승진 이선희 장윤정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가 많다. 웬만한 한국 대표가수의 노래는 거의 망라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트곡 전문제조기란 말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작곡가로서의 위상은 공고해졌다. 대표곡 목록만 보더라도 ‘님과 함께’(남진) ‘사랑은 눈물의 씨앗’(나훈아) ‘바보처럼 울었다’(진송남) ‘황금의 눈’(배호) ‘마음은 집시’(이용복) ‘우수’(남진) ‘잃어버린 30년’(설운도) ‘고향이 좋아’(김상진) ‘마음은 서러워도’(박일남) ‘가지 마오’(나훈아) ‘비 내리는 영동교’(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주현미)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전영록) ‘스잔’(김승진) ‘사랑의 거리’(문희옥) 등 부지기수이다. 자못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런 히트곡을 만들기까지 부인이었던 작사가 정은이 여사의 내조와 조화로운 합작이 큰 역할을 했다. 마치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의 경우에 비견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남국인의 아내 정은이 여사는 2020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가요사에서의 대표적 대중음악인 남국인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의 작사와 작곡으로 발표된 노래에는 부산이란 공간성, 장소성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고향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를 말한다. 작사가 남국인에게 있어서 진정한 고향은 부산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보고 듣고 겪은 것들, 친숙한 벗들과 일가친척, 지인들이 모두 부산에 살았다. 그러기에 작사든 작곡이든 그의 작품 속에는 부산의 모든 시간성, 역사성이 미세하고 정교하게 무르녹아 있다. 마치 잘 익은 석류알이 열매 속에 촘촘히 들어찬 것처럼 부산 바다 갈매기 남포동 마도로스 뱃고동 항구 해운대 태종대 영도 광안리 송도 등 부산 고유의 온갖 특색과 정서가 남국인 작품세계로 깊숙이 젖어 들어 있다.

그는 일찍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옮겨 갔으나 그의 오감 속에 들어앉은 상처와 애환, 그리움과 갈망, 추억의 공간은 오로지 부산이라 하겠다. 그것은 악성 베토벤이 타향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든 시간을 넉넉히 견뎌낸 장엄한 극복의 과정과도 같다. 대중예술이 지니는 다정함 그리움 안타까움의 근원은 바로 항도 부산에서 물줄기가 생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은 남국인 대중예술의 고향이자 터전이며 비옥한 토양이다. 부산에서 형성된 남국인 대중예술의 공간성 시간성 심성의 바탕은 그의 독자적 개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민족의 제단에 헌정한 무수한 대표곡이 한국근대사의 고달프고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민중으로 하여금 얼마나 용기와 격려를 지니도록 이끌었던 것인가. 작곡가 백영호에게 발탁돼 스승 백영호를 거의 능가하는 탁월한 작품을 줄기차게 발표한 남국인. 우리가 그의 노래를 부르거나 즐길 때 작가의 이런 헌신과 공로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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