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9> 전복 월경채취금령 불망비

군사가 진상품 전복 캐가자 정조가 금지령… 기장 어민들 공덕 칭송

  • 나동욱 전 복천박물관장
  •  |   입력 : 2022-07-17 19:27:04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오래된 비석들이 줄지어 있다. 그중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해 비문(碑文)조차 희미해진 비석 하나가 눈에 띈다. 전복월경채취금령불망비(全鰒越境採取禁令不忘碑·사진)다. 이 비석은 부산 기장 지역에서 힘들게 전복을 캐던 어민의 삶을 닮았다. 바다와 싸우느라 거칠고 갈라졌던 그들의 삶에도 온기가 전해진 때가 있었다. 누구의 공덕을 칭송하는 뻔한 불망비와 달리 이 비석은 그 시절의 따뜻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1년 여름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아이 봉수대 유적에서 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다. 휴식시간에 발굴 인부로 일하던 효암마을의 주민으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봉수대 동남쪽 해안가 서당터라는 곳에 글자가 보이는 바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주민의 말대로 서당터 끝 경사면 고목에 의해 위태롭게 받쳐져 있는 바위가 있었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새긴데다가 오랜 세월 탓에 비문이 닳아 판독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병영에서 경계를 넘어와 전복을 캐는 폐단을 조정의 영에 의하여 영구히 금하게 한 것을 만고에 잊지 않을 것을 기린다. 가경 4년 1월에 세우다(兵營越境採鰒○○ 因朝令永爲革罷 萬古不忘碑 嘉慶四年己未元月日)’. 가경 4년은 청나라 연호로 1799년(정조23)에 해당된다.

명문 중 채복(採鰒)은 비석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중요한 단어였다. 조선왕조실록의 검색을 통해 그때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권세를 가진 울산 병영(경상좌병영)의 군사들이 기장으로 넘어와 전복을 채취해 갔던 것이다. 맛이 좋기로 소문난 기장 전복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고, 국가의 제사에 쓰이는 귀한 진상품이었다. 그런데 군사들이 경계를 넘어와 전복을 자꾸 캐가자 정작 기장군 어민들은 전복을 채취하지 못하고 비싼 값에 사서 진상을 해야 했다. 공납의 부담으로 기장군 아홉 포구의 어민들은 파산에 이르고 도망갈 지경이었다. 참다 못한 당시 양산군수 윤노동이 1798년 상소를 올려 임금에게 호소하였다. 그러자 정조는 기장으로 넘어가 전복을 따는 일을 일체 금지시키는 영을 내렸다.

우리는 역사 교과서에서 공납의 폐단을 배운 적이 있다. 진상품을 마련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군사들의 마구잡이식 전복 채취로 기장의 아홉포구 어민들은 아연실색하였을 것이다. 그 절망스러운 순간에 정조의 명령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을 어민들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도 야외전시관을 지날 때면 나는 이 비석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춘다. 비석에서 전해지는 당시의 온기를 느끼면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4. 4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8. 8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9. 96일 개막 BIFF도 ‘암살자(들)’ 후폭풍…레드카펫·무대 행사 줄취소
  10. 10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1. 1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2. 2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3. 3국힘, 장외집회로 정부·여당 압박…민주 “張, 북치고 고함만”(종합)
  4. 4[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5. 5'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6. 6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7. 7[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8. 8與 “조희대, 국감 출석 불응 의사…불출석은 국회법 위반”
  9. 9영화 '암살자(들)' 논란 속 장동혁, 고(故) 육영수 생가 방문
  10. 10'광대극' 조소 이어 미사일로 응답한 北. 좁아진 청와대 입지
  1. 1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2. 251억 예상 임대수입 다시 계산하니 29억? 사업성 검증 논란
  3. 3‘직원용 시스템’ 등 빈틈 공격…現 보안체계론 AI해킹 무방비
  4. 4부산의 혁신 기업들, 지역발전 동맹 결성
  5. 5CU ‘리센느 빵’ 보름만에 60만 개 판매
  6. 6나들이객 마음에 쏘~옥…유통가 의류·와인 행사 가을대전
  7. 7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8. 8해운대 노을 보면서 명상…파라다이스호텔 오션힐링
  9. 9부산銀, 산업 전문성 더해 지역기업 금융 강화
  10. 10“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1. 1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2. 2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3. 3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4. 4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5일
  6. 6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7. 7기장 병산저수지 때 아닌 녹조…악취 진동
  8. 8[한 손 뉴스] 1400년 역사 동래온천지구…전국 네 번째 온천도시 지정
  9. 9“누이센터·대봉산 휴양밸리 등 준비해 온 사업, 완성할 차례”
  10. 10돔 최상층 ‘스카이홀’ 길이 600m 컨벤션 場
  1. 1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2. 2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3. 3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6. 6‘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7. 7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8. 8[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9. 9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10. 10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