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로버트, 이 그림들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다정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에는 100여 년 전 한국인의 다양한 모습과 복식이 담겨 있다. 1900년 3월, 사보담 목사의 부인 에피(Effie) 여사는 이 그림책을 손수 만들어 미국에 사는 시동생 로버트(Robert)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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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 사보담의 그림책 ‘Korea’.
부산박물관 제공 |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리차드 사보담은 에피 사보담과 함께 1899년 한국 땅을 밟았다. 사보담 부부는 대구에서 첫 선교활동을 시작하였고 1년 후 부산으로 와 7년 동안 선교활동을 이어갔다. 사보담 부부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가족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담은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또한, 부산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으며 당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엽서를 수집했다. 덕분에 우리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개항기 부산의 모습과 부산사람, 그리고 그 속에서 이방인이었던 그들의 생활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에피 여사는 우리나라 옷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다양한 한복을 수집하였고 실제로 착용했다. 그중 우리 박물관에 기증된 것도 있다. 폭이 넓은 저고리와 길이가 긴 치마는 에피 여사가, 색동저고리·토시·꽃버선 등은 자녀인 알프레드와 마가렛이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한국 복식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어 가까운 친척에게 보냈다. 이번에 소개하는 ‘Korea’라는 제목의 그림책에는 한국인의 모습을 정감있게 스케치한 삽화와 간단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옷을 입은 한국인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맨살을 드러낸 젊은 여자, 저고리만 입고 있는 아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양반 남자 등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고 있다.
에피 여사에게 한복은 낯선 한국인과 그녀를 이어준 통로가 되어주었다. 짧은 설명문에는 한국인과 옷에 대한 애정 어린 호기심이 담겨있는데, 다음과 같다.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맨살이 춥지 않을까 생각하시죠? 모든 여자는 이렇게 옷을 입어요’. ‘한국의 정숙한 부인은 나이가 들 때까지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는 외출하지 않아요’. 따뜻하면서도 친절한 그녀의 감성을 읽을 수 있는 문구들이다.
7년간 부산에서의 생활 이후, 사보담 부부는 1907년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 선교를 위한 기금 모금과 강연을 하며 부산으로 다시 돌아올 준비를 했다. 그러나 1908년 12월 3일, 가솔린 폭발사고로 리차드 사보담 목사가 사망하면서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사보담 부부가 부산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2007년의 일이다. 그들의 외손녀인 사라 그린필드 박사가 외조부모님의 유품을 부산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우리는 마침내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부산박물관 부산관 근대실에는 에피 여사의 그림책을 비롯한 사보담 부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