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론 1권 영국 망명 중 집필
- 상품·화폐·잉여가치설 등 담아
- 노동 착취설로 계급투쟁 강조
- 2, 3권은 엥겔스가 편집한 유고
- 소외 다룬 ‘경제학·철학 초고’
- “노동자 부를 생산하면 할수록
- 그만큼 더 가난해진다” 주장
- ‘공산당선언’ 엥겔스와 만들어
- 프롤레타리아의 단결 선동
- 佛 등 혁명 관여했으나 실패
“나는 자본가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가 자본주의 심장을 향해 화살을 쏜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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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는 실패한 사상가일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박물관이 마르크스 탄생 200돌을 기념해 2018년 10월 선보였던 ‘마르크스 포에버 전시회’는 그 답 중 하나일 터이다. EPA 연합뉴스 |
노동자-자본가-마르크스를 현대를 떠받치는 세 다리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마르크스를 ‘빨갱이 수괴’로 보는 글이 지금도 언론 매체에 등장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공산주의가 격돌하는 시대여서 그런가. 어떤 처지에서든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르크스 저서 읽기이고 그 첫 번째 책은 ‘자본론’이다.
‘자본론’은 모두 3권. 1권은 186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일어로 나왔다.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 도서실에 박혀 경제학을 공부해 십수 년 만에 써냈다. 독일어판 1~3권(2500여 쪽) 정본과 해설판 중 선택하면 된다. 2, 3권은 저자가 1883년 숨진 뒤 나왔다.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마르크스 유고를 편집해 1885·1894년 자본론 2, 3권을 펴냈다. 이 중 자본론 1권이 2·3권보다 더 알려졌다.
1권 목차는 이렇다. 상품과 화폐(1편)-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2편)-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3편)-상대적 잉여가치(4편)-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5편)-노동임금(6편)-자본의 축적 과정(7편).
경제서적인데 애덤 스미스(1723~1790)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같은 고전경제학자의 책과 결이 다르다. 헤겔 좌파였던 청년 마르크스가 경제학에 ‘인간 해방’이란 깃발을 꽂았다. 마르크스는 기존 종교 정치 사회가 제시한 틀을 뒤집어엎고 노동하는 인간, 호모 레이버스를 이 세상에 내놨다. 일하는 방식으로 보면 그는 혁명가다.
노동력만을 생산 수단으로 갖춘 프롤레타리아가 무력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고 이 세상을 얻는다는 믿음 아래 이 책이 쓰였다. 노동력 착취로 살찐 자본주의는 멸망하게 된다는 주장을 폈다. 논란이 시작되는 대목. 허튼 주장일까. 프롤레타리아 사회·공산주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세계가 승리를 거뒀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가진 이는 자본론을 읽게 된다.
■ 세계에 큰 영향
‘자본론’만큼 19세기 이후 세계에 큰 영향을 준 경제저서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 꼽힌다. 자본주의 개선에 초점을 두었으니 이 책은 자본론과는 반대 지점에 섰다. 열성 좌·우파라면 둘 다 읽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 관심을 두었거나, 자신을 임금노동자라고 여기는 일반 독자도 ‘자본론’을 집어들 수 있겠다. 경제이론을 이해하기가 버겁지만, 완독하면 ‘마르크스만큼 노동자 편에서 옹호하는 손뼉을 열심히 친 사상가는 없구나’ 하는 독백이 절로 나온다.
‘자본론’을 읽기 전에 마르크스 가치관과 철학을 익혀 두면 좋다. 그는 자본주의 속 인간을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바라봤다. 첫째, 인간은 ‘유적(類的) 존재’다. 둘째, 부(富)는 ‘약탈’로 얻는다. 셋째, 노동자는 착취당한다. ‘노동 착취설’이다. 사실이라면 악랄한 자본주의 속성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간단·명료하고 폭발성이 강하다. 좌파 노동계가 이를 좇았다. 다른 편에선 자본주의 생태계를 이 같은 이론 하나로는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본론’에서 이념 색채를 빼면 이 책은 자본주의 기본을 충실히 설명하는 경제학 저서다. 상품 속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첫머리에 놓였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부(富)는 거대한 상품 덩어리로서 나타나, 이 부를 구성하는 게 이 상품이다.” 저자에 따르면, 상품은 사용·교환가치라는 이중 속성을 보인다. 상품에는 노동 이중성이 나타난다는 얘기. 교환가치는 생산 과정에 투입되거나, 원료에 체화된 노동량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자신이 임금노동자라면 상품화된 내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 다룬 대목이 ‘잉여가치설’이다. 과거 노동이 쌓인 자본에 살아 있는 노동을 제공하는 당신이 노예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는가 하고 마르크스는 목청을 높인다. 계급을 내던지고 싸우라는 ‘계급투쟁설’이 자본론에 자주 등장한다.
■ 화폐·노동·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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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8년 11월 7일 모스크바에 10월 혁명 1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마르크스·엥겔스 동상 앞에 레닌이 서 있다. |
상품 가치 척도인 화폐를 깊이 다루었다. 화폐는 인간 노동을 사회 속에서 구현했기에 가치 척도이고, 일정한 금속으로 무게를 가져 가격 척도가 된다. 이런 가치를 만드는 건 인간 노동뿐이며, 기계 원료는 전혀 가치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봤다. 마르크스는 대공업은 농민을 노동자로 바꾸고, 농업을 진보케 한다고 했다. 또한, 기름진 땅을 기술이 약탈하는 현상이 거기서 빚어진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생산이 모든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피폐하게 한다는 얘기다. 마르크스가 마지막 7편에서 자본주의 탄생 역사를 표현한 문장은 이렇다. “오지에가 말하는 것처럼, 화폐가 ‘뺨에 자연의 핏자국을 묻히고 태어난다’고 한다면, 자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피와 땀을 흘리며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쓴 또 다른 저서 ‘경제학·철학 초고’는 헤겔 변증법을 좇는 당시 부르주아 경제학·철학 쪽으로 포문을 연 책이다. 그는 1843년 10월~1845년 2월 파리에 머물며 ‘노임’ ‘자본의 이윤’ ‘지대’를 주제로 초고를 썼지만, 출간하지는 않았다. 저자가 타계한 뒤인 1932년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는 내용이 빠지고 거친 초고 유고를 다듬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1부 3권으로 펴냈다.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노동을 단순한 영리 활동으로 보는 기존 시각을 비판하면서 인간 소외 문제와 관련해 다뤘다. “노동자는 부를 생산하면 할수록, 그 생산의 힘과 범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만큼 더 가난해진다.” “경제학은 노동자(노동)와 생산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찰하지 않아 노동의 본질에 숨어 있는 소외를 덮어 버리고 만다.” (제1 초고 4장 ‘소외된 노동’)
■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책
‘공산당선언’은 마르크스·엥겔스 공동 저서다. 1847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한 국제 혁명 조직인 공산주의자동맹에 참여한 두 사람이 만들어 이듬해 2월에 발표한 이론·실천 강령이다. 건조하고 딱딱한 어조로 시작하는 다른 철학·경제학 저서와 달리 선동하는 문구가 서두부터 치고 나온다.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지막 문장은 결의가 꿈틀거린다. “지배계급이여,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어라.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쇠사슬밖에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획득해야 할 전 세계가 있다. 온 세계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역사상 전무후무하고 대담한 선언이었지만, 알려진 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1848년 파리 2월 혁명, 6월 봉기는 프롤레타리아 실패작이었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같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혁명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들 혁명에 빠짐없이 발을 내딛자 각국은 추방령을 내렸다.
‘철학의 빈곤’은 1847년 혁명 열기로 심신이 뜨거웠던 29세 마르크스가 펴낸 첫 경제학 저서다.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에 대한 회답’이란 부제에서 내용이 일부 감지된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1865)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상을 전개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다.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프루동이 보인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대에 세웠다. 프롤레타리아가 부유한 부르주아와 계급투쟁을 벌여 임금 노예에서 벗어나는 역사를 쓰게 된다는 유물사관이 강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문장으로 조르주 상드(1804~1876) 표현을 빌려왔다. “싸움이냐, 죽음이냐. 피투성이 싸움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無)냐. 이 같은 물음을 엄연히 세울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오직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이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마르크스가 외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