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 행복하게한 현모양처
- 세 딸은 악필인 아버지 도와
지인과 가족이 쏟은 노력과 사랑에 힘입어 마르크스는 20세기 세상을 크게 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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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4년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르크스 엥겔스 라우라(둘째 딸) 엘리나(막내딸) 제니(큰딸). |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영원한 동지이자 벗이었다. 독일 베를린 마르크스 엥겔스 광장에 나란히 선 두 사람 동상이 그 표징이다. 1842년 11월 말 쾰른 ‘라인신문’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엥겔스는 방세조차 제대로 못 내는 마르크스를 도우려고 만사 제쳐놓고 돈을 벌었다. ‘자본론’ 1권이 완성되자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숨진 후 미국인 벗 조르게에게 조전을 띄웠다. “인류는 두뇌 하나를 잃었네. 인류가 가졌던 가장 소중한 두뇌를.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은 계속 전진하겠지만 그 중심은 사라졌네.” 물심양면으로 마르크스에게 힘을 준 또 다른 조력자는 마르크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빌헬름 볼프. ‘자본론’ 1권에 마르크스가 볼프를 향한 헌정사를 올렸다.
마르크스의 아내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엥겔스 표현을 빌리면 ‘남을 행복하게 하는 데서 가장 큰 자기 행복을 찾아낸 여성’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이 한 문장에 나타난다. 장녀 제니, 둘째 딸 라우라, 막내딸 엘리나는 타인은 못 읽는 아버지 글씨를 알아봐 원고로 옮겨 적었다. 마르크스는 이런 자녀들을 등에 태우고 말 울음을 내며 함께 놀았다.
부부는 영국 런던 이스트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곳 마르크스 묘석엔 다섯 이름이 새겨졌다. 마르크스 부부, 장녀의 아들인 해리 롱게, 마르크스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 그리고 마르크스가 유달리 아꼈던 막내딸 엘리나이다. 인간을 차별 않고 사랑했던 마르크스였기에 이런 비문은 자연스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