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인주 트리어 유대교 가정에서 7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지만, 청년이 됐을 땐 무신론자이자 급진 자유주의자였다. 인문학에 빠졌던 그는 예나 대학에서 에피쿠로스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으나 강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1842년 10월 반정부 매체인 라인신문에서 편집 주임으로 일한다. 학계 진출 좌절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발을 들이는 계기였다.
1843년 라인신문이 폐간당하자 예니와 결혼했던 저자는 파리로 이주해 프랑스 사회주의와 경제학을 연구하게 된다. 1844년 독일-프랑스 연보를 발행하고 엥겔스와 공동으로 ‘신성가족’을 썼다. 이즈음 헤겔 비판이 시작됐다. 1848년 6월 ‘새 라인신문’을 발행하고 이듬해 이 신문에 ‘임금노동과 자본’ 논문을 실었다. 1850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자본론’ 집필에 뛰어들었다.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에 들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이 수립되자 ‘프랑스 내란’을 써 이 코뮌에 바쳤다. 1881년 부인 예니가 세상을 떠났다. 2년 뒤 저자도 런던에서 65세로 숨졌다. 벗 엥겔스는 1895년 타계했는데 유언에 따라 뼛가루는 이스트본 바다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