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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타계 30주년…나림 문학과 아나키즘 <8> 나림이 가상한 맹자와 장자의 대 토론회

장자 ‘자유론’ 꿰뚫은 나림, 맹자 ‘대장부론’ 날선 비판

  • 조광수 전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  |   입력 : 2022-06-26 19:05:25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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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에게 길을…’ 굴원 등 소환
- 사상가들의 만남 근사한 묘사

- 기원전 333년 대량토론 전거
- ‘가상 배틀’로 아나키즘 역설
- “인의예지 강조로 사람들 분란
- 왕도정치는 엘리트주의일 뿐
- 서로 관여 없어야 태평천하”

나림은 장자와 맹자를 만나게 했다. 위 혜왕이 구국과 구세의 묘책을 얻고자 주재한 대 토론회다. 재상 혜시가 사회를 보고, 만당의 관객이 집중했다.
중국 고대의 대사상가 맹자(왼쪽)와 장자. 나림 이병주는 ‘장자에게 길을 묻다’에서 장자가 맹자 굴원 순우곤 등과 만나 토론하게 한다. 특히 장자와 맹자가 펼치는 대토론은 압권이다.
물론 가상이다. 역사책 어디에도 맹자와 장자의 토론 기록은 없다. 연보(年譜)를 꼼꼼하게 따지는 학자들은 식겁할 일이지만 나림은 천지개벽 이래 모든 대소사가 다 기록되어 있느냐고 반문한다. 세상엔 기록된 사건보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이 더 많다는 상식을 말하고, 대량(大梁)에서 기원전 333년에 맹자와 장자가 공개 토론했음을 증명하는 전거를 들기도 한다. 도전적인 주장이다.

장자의 상상력을 닮은 나림의 상상력은 얼마든지 토론회를 가상할 수 있다. 작가만의 특권이다. 대 자유인 장자와 대장부 맹자를 한 자리에 모셔 토론의 향연을 베푸는 건 독자에겐 불감청고소원일 따름이다.

■굴원, 초왕 사신으로 장자 찾아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정치인이자 시인인 굴원의 동상. 국제신문DB
나림은 ‘장자에게 길을 묻다’ 서두에 굴원이 초왕의 사신으로 장자를 찾아왔다고도 가상한다. 초왕의 초청을 장자는 신구(神龜)의 예를 들어 거절한다. 초나라가 신주처럼 모시는 3000년 된 거북이 죽어 비단 상자에 귀하게 싸여 있기를 바라겠는가 아니면 살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바라겠는가 하고 묻는다. ‘추수편’의 기록이다. 다만 그 사신이 누구였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 대목에서 나림은 굴원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정치에서 뜻을 펴다 실각하고 결국 정치에서의 좌절로 멱라수에 투신하는 굴원을 애써 불러 대혹자(大惑者)로 치부한다.

장자가 보기에 굴원은 남에게 쓰일 사람이 아닌 큰 그릇이다. 그런 골기(骨氣)의 인물이 정치란 난장(亂場)에서 허우적대다 아랫것들의 참소와 암군(暗君)의 외면에 실의해 “거세개취아독성(擧世皆醉我獨醒), 거세개탁아독청(擧世皆濁我獨淸)”을 외며 허망해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온 세상이 다 취해 널브러졌는데 혼자만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온 세상이 다 혼탁하기 그지없는데 나 혼자 맑으니 외롭고 허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하니 평생 헤어나지 못하는 대혹자인 것이다.

■당대 최고 학자 순우곤, 장자와 대담

나림은 순우곤도 장자를 찾아오게 한다. 순우곤은 당대 최고의 아카데미인 직하(稷下)의 대표 학자이자 골계(滑稽)의 명수였다. 순우곤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은유와 비유의 대가인 장자, 유머와 풍자의 고수인 순우곤이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나림은 시연해 보인다. 순우곤이 직하에 장자를 초청해 천하제일을 뽐내는 자들의 몽(蒙)을 틔워보고 싶다고 하자 장자는 “무지한 사람의 몽은 틔울 수 있지만 설익은 지식을 뽐내는 자의 몽은 틔우기 어렵다”고 답한다. 천지간에 절대미란 없으며, 학문은 세력이 아니라 진실이 제일이라고도 한다.

■맹자의 도덕론 VS 장자의 자유론

사마천도 놓친 장자와 굴원 그리고 장자와 순우곤의 만남을 근사하게 묘사한 ‘이사마’ 나림은 이제 장자와 맹자를 단 위에 올려놓는다. 토론 이슈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맹자의 도덕과 장자의 자유이고, 둘째는 맹자의 왕도정치와 장자의 무정치다.

먼저 연장자인 맹자가 사람의 선한 단초인 사단(四端)과 그 배양 확충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른 통이 크고 기가 센 대장부다. 장자도 맹자의 사상엔 동조하지 않았지만 열정과 집념만큼은 인정을 한다. 맹자는 도덕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라며, 반구제기(反求諸己)를 통해 사단을 꾸준히 확충하면 누구나 대장부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반구제기란 반성하는 자세로 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성찰과 자책을 통해 자신의 양심을 수습하는 것이다.

장자는 도덕이란 둥근 물건을 모난 그릇에 맞춰 고치려는 것이라며,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고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도척(盜跖)의 예를 들어 인의도덕이 얼마나 억지스러우며 위선적인가를 말한다. 도척은 도둑계의 지존이다. 졸개들이 도둑으로서의 성공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남의 집 방 안에 깊이 감춰둔 것을 단박에 파악하는 게 성(聖)이고,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며, 물러날 때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게 의(義)다. 손에 넣어도 되는지 여부를 아는 게 지(智)이고, 장물을 고루 나누는 게 인(仁)이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도덕은 선인이나 악인 모두에게 다 적용되는데 현실적으로 악인이 더 잘 활용한다. 인의도덕이란 큰 도적이 작은 도적을 강압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척마저 운운하는 도덕이라면 오히려 사라져야 인성도 자유로워지고 천하도 태평해진다는 뜻이다.

도덕만이 인간을 만물 중에 귀하게 만든다는 맹자의 주장에 대해서 장자는 백락의 예를 들어 반박한다. “말발굽은 상설(霜雪)을 밟을 수 있고 말의 털은 풍한을 막을 수 있다. 풀 먹고 물 마시고 뛰어다니는 게 말의 진성(眞性)이다. 그런데 백락이란 자가 나타나 말을 잘 키운다고 자랑하며 말에 낙인을 찍고 털을 자르고 발톱에 철을 두르고는 마사에 가뒀다. 열 마리 중 두세 마리는 그래서 죽었다. 또 훈련이란 명목으로 굶기고 목마르게 하고 매질까지 하니 반수 이상이 죽었다. 세인들은 백락이 말의 명인이라 칭송하지만 터무니없다. 말이 난동 부리는 건 다 백락 탓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성인이란 존재가 나타나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서로 의심해 분열하고 시비가 붙어 다투게 된 것이다. 사람은 본성과 상성(常性)에 따라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두는 게 최상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도덕이란 가르쳐서 될 게 아니라 각자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장자는 맹자가 인간 속의 성인을 꿈꾸고 그 꿈을 규범화하려 하고 그 규범에 도취해선 어느덧 규범과 존재 즉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망각해버렸다고 비판한다. 맹자의 성현을 절대시하는 관념은 선발된 자의 사상 즉 수재의 사상이며 우등생의 사상일 뿐이다. 현실의 인간을 모두 우등생으로 만들려는 사상은 “총명한 무지”라고도 했다.

■맹자의 정치 VS 장자의 무정치

이어지는 이슈는 정치와 무정치다. 맹자는 분업론의 입장에서 정신노동자(勞心者)와 육체노동자(勞力者)를 구분했다. 그리고 전문가 정치를 강조했다. 대장부의 수양과 능력을 갖춘 자만 정치의 작업을 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권력의 근거는 설득력이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성인 군주가 베푸는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다. 바로 왕도정치다.

장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여할 필요 없는 세상이 곧 태평천하라고 여겼다. 가장 좋은 관계는 나무꼭대기의 가지와 풀밭의 사슴 사이처럼 아무 상관 없이 각자의 생명에 충실하게 지내는 것이다. 게다가 누구도 천하의 흥망에 책임질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신보다 세상을 먼저 구하겠다고 나선다면 또는 사(私)보다 공(公)을 우선하겠다고 왼다면 그건 허위다. 말끝마다 세상을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은 그저 허세 부리는 자다. 사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사심이다. 대의명분이나 국가를 앞세우는 척하는 위군자(僞君子)는 오히려 소인보다 더 패악이다.

장자는 맹자의 사상을 정치 제일주의 내지는 출세주의로 규정했다. 한번 행차에 여러 대의 수레를 끌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정치 전문가로 대우받으며 온갖 특권을 즐긴 행태를 비판했다. 말로는 폭군은 방벌해도 된다며 ‘군경민중(君輕民重)’을 주장해 백성의 입장을 중시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엘리트주의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맹자의 왕도정치란 결국 성인 군주가 대장부 관리와 함께 백성을 이끌어가는 통치이다. 장자는 이끈다는 것 즉 치(治) 자체를 문제시했다. 원을 그릴 때 컴퍼스 없어도 되고 사각형 그릴 때 꼭 자가 필요한 것 아닌데 왜 굳이 그 틀로 그리려고 하는가. ‘혼돈’ 우화가 바로 틀의 무서움과 이끄는 것의 어이없는 이야기다.

나림의 장자 해석은 도전적이다. 쾌활하고 도발적이다. 하지만 본질을 꿰뚫고 있다. 나림은 ‘사랑스러운 장자’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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