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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51> 가수 윤일로의 부산 노래

평양 출신 멋쟁이 싱어송라이터 … 피란지 부산 삶의 의지 북돋아줘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6-19 19:27:5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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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난 무대기질에 가창은 기본
- 작사·작곡 겸비한 재능으로 인기
- 군악대 근무 시절 백영호와 만나
- 부산 드나들며 깊은 인연 이어가

- ‘항구의 사랑’ ‘추억의 영도다리’
- 시련의 삶 극복해가는 과정 그려
- 환도전후 남포동 등 자세히 묘사
- 장소의 가치성 정착에 크게 기여

부산대중음악사의 기초와 터전을 일으켜 세운 이는 누구일까. 대중음악인들이 살아간 생애와 발자취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첫 번째는 해방 직후 일본에서 무대 경험을 쌓고 돌아온 그룹이다. 두 번째는 6·25전쟁 당시 북한이나 서울에서 피란 내려온 대중음악인 그룹이다. 세 번째는 피란 시기 부산의 여러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성행하던 악극단 멤버 그룹이다. 네 번째는 그들에게 음악을 배우고 익혀서 자립한 대중음악인 그룹이다. 다섯 번째는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며 부산의 야간업소 등 밤무대에서 장기계약으로 활동하던 그룹이다. 여섯 번째는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며 확고한 음악관과 신념을 갖고 활동한 청년그룹이다. 이 밖에도 특정그룹에 소속되지 않은 채 외로이 자신의 개성과 독자성을 구축해온 대중음악인이 많으리라.

가수 윤일로. 그가 부른 ‘추억의 영도다리’는 피란수도 부산의 아픔을 그려 대중의 호응을 이끌었다. 국제신문 DB
앞서 언급한 여러 그룹은 부산의 무대에서 공연하고 활동을 펼치며 자신의 명성을 키워서 독립적인 입지를 마련했다. 그 중 상당수는 보다 나은 성공의 기대감과 부푼 희망을 안고 부산을 떠나 서울 무대로 진출했다. 한 지역이나 공간의 예술적 특성과 분위기의 구축은 사실상 이 여러 그룹들이 땀 흘려 개척하고 쌓아놓은 성과인 것이다. 모든 여건이나 환경이 척박하던 시절, 그들이 부산에서 이룩한 공로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장하고 갸륵하다. 우리는 부산가요사, 혹은 부산대중음악사의 이름으로 그들의 활동을 높이 기리고 상찬해야만 한다.

반드시 부산 출생이 아니더라도 지난날 부산을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던 대중음악인들을 한 사람씩 기억하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얼마나 힘든 상황이 많았을 것인가.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과 모멸, 배고픔, 뼈저린 고독 등 갖은 난관과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빛나는 부산가요사의 위상을 이룩한 그들에게 경의와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숫자는 많다.

영도다리 모습. 국제신문 DB
부산 가요사의 기반을 쌓아 올린 이들 가운데 윤일로(尹一路·1935~2019)라는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는 1950년대와 60년대의 멋쟁이 청년가수로, 부산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평양 출신으로 일찍이 광복 직후 인천에 내려와 살았다. 본명은 윤승경(尹昇京)인데 선배 백년설이 오로지 가수의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라는 격려의 뜻으로 ‘일로(一路)’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윤일로는 11세 때 가요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예인으로서 재능이 뛰어났다. 가창(歌唱)은 기본이었고, 작사와 작곡까지 아우르는 싱어송 라이터의 재능을 뽐내었다. 여기에다 성대모사까지 잘해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타고난 무대인 기질을 인정받았다.

윤일로가 부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경남 진해의 해군군악대 근무 시절, 부산에서 열린 가요콩쿠르에 출전하면서부터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작곡가 백영호 선생의 인정을 받아 자주 부산을 드나들었다. 이후에는 손석우 나화랑 등의 작곡가와 깊은 인연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산 관련 노래도 발표하게 됐다.

윤일로가 부른 ‘추억의 영도다리’ 음반.
밝고 경쾌하면서도 애조를 띤 윤일로 특유의 창법은 곧바로 대중들의 기호와 완벽하게 부합됐다. 전체 발표곡 중 부산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가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남국의 룸바’(윤일로 작사·김부해 작곡) ‘마도로스 첫사랑’(김부해 작사·윤일로 작곡) ‘바다’(김형창 작사·윤일로 작곡) ‘비 내리는 플렛트홈’(김현사 작사·윤일로 작곡) ‘왜 왔더냐 이 항구’(윤일로 노래) ‘야속한 부산열차’(윤일로 노래) ‘청춘 십이열차’(윤일로 노래) ‘추억의 영도다리’(이철수 작사·이재현 작곡) ‘항구의 사랑’(최치수 작사·김부해 작곡) 등을 꼽을 수 있다. 윤일로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작품이 적지 않다.

부산역과 그 주변, 슬픔을 머금은 부산항구의 풍경, 남포동 광복동 영도다리 등 1950년대 피란지 임시수도 부산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작품이 많다.

그 중에서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노래는 ‘항구의 사랑’과 ‘추억의 영도다리’다. ‘항구의 사랑’은 부산에서 맺은 사랑을 정리하고 떠나가야만 하는 애달픔이 눅진한 정서로 깔려 있다. 환도 전후의 남포동 거리풍경이 선연히 떠오르고, 부산극장 간판의 깜빡이던 네온사인 광경이 묘사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1절과 2절 중간의 삽입 대사를 가수의 목소리로 직접 엮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추억의 영도다리’는 헤어진 옛 사랑이 그리워 다시 찾아온 부산항과 영도다리에서의 애틋한 추억을 환기하는 내용이다. 작중화자에게 있어서 부산은 미래에 대한 불투명 슬픔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랑과 격려가 있어서 그 힘으로 피란 시절의 고통을 근근이 버티며 이겨내었다. 그것을 못 잊어 부산과 영도다리를 다시 찾아온 사람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연민에 잠겨보지만 그 시절의 행복으로 돌아갈 수 없다. 현실은 가파르고 혼자 벅찬 세파를 헤쳐가기가 힘겹지만 삶의 고비마다 부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새로운 도전과 응전에 나서야 한다는 필연성을 일깨워준다.

1절에서는 시련과 방황, 혼미한 시적 자아의 모습이지만 2절과 3절로 옮겨가면서 자기중심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각성의 기류가 내부에서 조성되고 있다. 이것이 대중가요의 힘과 저력이다. 대중이 새로 유행하는 노래를 듣고 공감과 일체감을 경험하며 노래를 통해서 삶의 생기를 확보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부산과 영도다리라는 장소성의 가치와 엄정함을 뚜렷이 자리 잡게 하고 정착시켜가는 일에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 안개 낀 부산 항구 옛 추억만 새롭구나 / 몰아치는 바람결에 발길이 가로 막혀 /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 차디찬 부산 항구 조각달이 기우는데 / 누굴 찾아 헤매이나 어데로 가야하나/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쳤네/ 눈물진 부산 항구 이슬비만 나리는데/ 매디매디 사무치는 그 옛날 과거사가 / 오늘 밤도 애처로이 나를 울리네

<‘추억의 영도다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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