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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타계 30주년…나림 문학과 아나키즘 <7> 이병주와 장자의 만남

“생명을 사랑하고 자유 즐겨라” 장자 사상, 아나키즘으로 체화

  • 조광수 전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  |   입력 : 2022-06-19 19:22:4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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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림 역작 ‘장자에게 길을 묻다’
- 정취 있는 삶과 소요유 재구성
- 맹자와 가상 정치토론도 설정
- “자유, 자신이 창출하라” 압축

- 사르트르 등 초대 ‘향연’ 불발
- 후학들에 남긴 선물이자 숙제

나림의 아나키즘은 ‘장자에게 길을 묻다’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장자는 워낙 큰 사람이다. 한 번 울음에 천하가 떨고 한 번 날갯짓에 수천 리를 날아가는 붕(鵬)과 같은 인물이다. 삶의 태도에 거침이 없고, 귀천이나 미추 또는 시비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유인의 전형이다.

나림이 장자를 선택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우선 장자는 정감이 넘치는 인물이기 때문이고, 다음 담담하게 소요유(逍遙遊)했기 때문이다. 나림은 장자에 사로잡힌 이유를 “그 상상력의 비견할 수 없는 장대함에 있다”고 했다. “사상은 언제나 그 인간의 실재보다 지나치게 크든지 작든지 하는 게 보통이니” 나림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장자의 상(像)을 그려 본 것이다. 기왕에 장자의 상상력과 나림의 상상력이 만나는 대목이니 황당이 다소 지나쳤을지 모르나 죄스럽지는 않다고 토로한다. 과연 나림의 장자 상 그리기는 탁발하다. 발칙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장자, 상상력 풍부·엉뚱·슬픈 사람

나비의 꿈을 꾸는 장자를 그린 그림 ‘장주몽접(莊周夢蝶)’. 호접몽(胡蝶夢)으로도 불린다. ‘장자(莊子)’의 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다가 깬 뒤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된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국제신문 DB
먼저, 장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취가 있는 따듯한 인물이었다. 나림은 장자의 진실함과 자유로움을 말하기에 앞서 “엉뚱한 사람” “슬픈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넉넉한 인간성을 묘사한 바 있다. 사람 관계에서 잡을 손이 없는 태도를 두고 “그는 비정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다분히 위악이다. 담백하고 소탈하며 심지어는 장난스럽기까지 한 장자의 모습을 나림은 상상력을 양껏 발휘해 그렸다. “가끔 찾아가서 어리광을 부려볼 만한 친구”로 여겼다.

장자는 확실히 다른 제자백가와는 차이가 난다. 심지어는 같은 도가인 노자와도 다르다. 사람의 성격을 차갑고 뜨겁고로 나눈다면, 제자백가의 인물 중 가장 건조하고 차가운 사람은 한비와 노자이고 가장 뜨거운 사람은 묵자와 맹자다. 순자는 가운데서 차가운 쪽이고 공자는 가운데서 뜨거운 쪽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노자나 한비처럼 냉정하지는 않지만, 반전 평화에 목숨을 건 묵자나 정의감에 불타 폭군방벌을 외친 맹자처럼 뜨겁지도 않다. 장자의 행적을 보면 확실히 정이 두터운 사람이다. 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외롭다. 나림이 표현한 엉뚱하고 슬픈 사람인 것이다. 나림이 노자가 아닌 장자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 뜨듯한 인간성에 있는 것이고, “장자가 인간성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노자가 지(智)의 인물이라면, 장자는 혜(慧)의 인물이다. 논리적 배움이나 추리적 이해를 넘어선 깨달음이란 게 있다면, 장자는 그런 혜심(慧心)이나 혜성(慧性)에 이르렀다. 바로 지인(至人) 또는 진인(眞人)의 경지다. 천지의 비리(秘理)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자락 정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는 나림은 확실히 노자보다 장자 취향이다.

사람의 크기로 말하자면, 기질과 성향은 달라도 장자는 공자와 비견할 수 있다. 천재가 대재가 된 경우란 의미에서 장자는 공자와 비슷하다. 시대와 불화하더라도 끝내 소신을 지킨 특A급 인물이란 면에서도 아주 근사하다.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을 B급이라 하고 시대에 아부하는 사람을 A급이라 한다면 시대와 불화하고 역행하더라도 믿는 바를 견지하는 사람을 특A급이라 할 수 있다. 매우 귀한 경우다.

장자는 나비의 꿈 호접몽을 꿀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고, 권력을 신구(神龜)나 제사용 소에 비유해 거절할 정도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친구 혜시가 재상 자리를 노리나 의심해서 자신을 라이벌로 경계하자 원추(봉황)와 올빼미의 비유로 점잖게 ‘넛지(nudge)’ 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숱한 우화와 은유는 또 어떤가. 모두 장자의 유머감과 담백함 그리고 폭넓은 공감대를 보여주고 있다.

공자(왼쪽)와 맹자. 국제신문 DB
■부자유한 현실서 자유 추구, 소요유

다음, 장자의 위대함은 세상을 구제하려 애쓰는 대신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다는 사실에 있다. 장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 즉 살아 있음이었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자유였다.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선 담담했을 뿐이다. 끝도 나지 않을 시시비비를 가리고 다투기엔 삶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는 게 전부였다.

나림은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장자의 결의였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부자유한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자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해명한 것이 장자 사상”이라고 정리했다.

제자백가는 세상다움을 위한 고뇌의 결과다. 세상이 세상다워지려면 지도자가 역할을 다해야 하고,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치다움이 실현되어야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결국 그건 사람다움과 통하는 것이다. 강조점을 어디에 두든 결국 사람다움에서 시작해 세상다움으로 이르는 구상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다움과 정치다움이 성패를 결정한다.

그런 구세(救世)의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전전긍긍하던 공자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지혜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구상을 피력했던 노자나, 얼굴이 볕에 타서 까맣게 되고 다리털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현장에서 뛰었던 묵자 모두 마찬가지다. 현실 정치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소극적인가 적극적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을 구하려는 노력과 구상만큼은 다 같다.

유독 장자만 다르다. 장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무정치다. 어떠한 구세의 구상도 없고,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 세상을 구원하지 말아야 구원이 있는 것이다. 정치란 게 장자에겐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장자는 큰 지혜를 추구했고, 생명과 자유라는 핵심 가치에 주목했을 따름이다. 자잘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치는 본질과 전체 맥락을 중시하는 장자에겐 무의미한 놀음이었을 뿐이다. 인간은 결국 자기실현인데 자기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문제 세상의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나서니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다. 정치에 목숨을 걸고 또 정치 때문에 목숨을 구하기도 잃기도 하는 게 일상이지만, 그런 것에서 탈속할 수도 있는 것도 인생 아니겠는가. 정치다움이나 지도자다움에 대해 담담했던 것이다.

정치사상의 불모성(不毛性)을 체회(體會)한 장자는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라 했다. 천하는 천하에 두면 된다. 흥망과 성패 그리고 시비 모두 천하의 현상이거늘, 천하의 일은 천하에 맡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고 자유를 즐기면 족한 것이다. 바로 소요유다.

■장자와 맹자가 정치토론한다면

나림은 장자가 정치를 무화(無化)한 건 “정치란 한마디로 남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쓰려는 수작”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뭐라 포장하든 정치의 본질은 나의 뜻을 남에게 강제하는 폭력이다. 남의 마음을 내 맘처럼 갖다 써서는 안 된다는 나림의 신념은 ‘장자에게 길을 묻다’ 제 6장의 장자와 맹자의 대토론회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가상의 토론은 나림의 정치사상을 압축한 대목이다. 그 책의 후기 두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는다. “너의 자유는 너 자신이 창출하라.” “자유란 장자에게 있어선 각자의 자기가 각자의 자기로서 각각 자기의 직면하는 극한상황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림이 갈수록 그리운 건 더는 그처럼 박력 있고 공력 있는 글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림은 “언젠가 짬이 있으면 나는 장자를 도스토옙스키와 마르크스, 사르트르를 청한 자리에 같이 초대해 놓고 플라톤의 ‘향연’을 닮은 향연을 베풀어볼 작정이다”고 했지만, 그 호언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 기막힌 향연은 후학들에게 남긴 선물이자 숙제이다. 그 기획을 후학들이 실행해야 하는데, 적어도 당대엔 어렵겠다. 문인들은 도리질하며 부정하겠지만 나 같은 독자의 눈엔 나림에 방불하는 작가는 아직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후생가외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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