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여여정사 주지인 도명스님
- 다양한 사료 통해 가야사 조명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이며 김해·밀양 여여정사 주지인 도명(道明) 스님이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를 펴냈다.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실제로 ‘빗장’을 열어버리기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빗장 열었을 때 더 깊이 들어가면 새 지평을 열 수 있다.

고려대가 소장한 ‘삼국유사’(왼쪽)와 규장각본 ‘삼국유사’. 흰 선으로 표시한 ‘미(未)’와 ‘말(末)’ 비교를 통해 저자는 책에서 기존 해석을 뒤집는다. 담앤북스 제공

한국 역사와 문화에서 불교는 종교이면서 그 자체로 비중과 중요도가 매우 높은 역사·문화 구성 요소라는 독특한 위상이 있다. 쉽게 말하면, 불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역사·문화가 보인다는 뜻이다. 말이 난 김에 잠깐만 옆길로 새 본다. 어떤 공동체의 역사·문화를 공부하면 정체성을 느끼거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뒤엔 그 대상을 더 잘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역사·문화를 곡해하거나 왜곡하면 사랑도 막힌다. 일제강점기 그릇 작고 식견 좁고 짜증 잘 냈던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집요하게 한국 역사를 왜곡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때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가 불상과 경전을 고구려에 전했다’. 이 기록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시점을 알려주는 지표로 공인돼왔다. 그러나 역사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 기록을 ‘최초 불교 전래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의심받고 도전받고 있다.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를 쓴 도명 스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보통 종교는 전래-수용-공인-포교의 네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전진의 순도 스님이 고구려에 오고 난 2년 후 초문사와 이불란사라는 사찰이 지어졌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을 통해 불교 최초 전래로 기록된 372년 이전에 이미 불교가 어느 정도 전파됐다고 볼 수 있다. … 고대사회에서 종교가 전래되어 공인받기까지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렸다.”(34쪽) 이 책에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쓴 추천사 한 대목도 참고할 수 있다. “사실 가야불교를 조금 연구해 보면 고구려 소수림왕이나 백제 침류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사료가 적지 않다. 중국의 ‘고승전’에는 소수림왕 때 전진에서 불교가 왔다는 372년 이전에 중국의 고승과 고구려도인이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인들은 이미 불교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16쪽)

도명 스님은 책에서 가야불교에 집중한다.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옛 기록을 엄정하게 연구하고, 가야 시조 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이 가야로 들어온 경로를 새롭게 고증하며, 김해 등지에 널린 가야불교 흔적을 치열하게 살핀다. 그 과정에서 ‘허황옥 신혼길 날짜별 동선’을 복원한다. ‘삼국유사’ 고려대 소장본과 규장각 소장본에 모두 ‘말(末)’로 기록돼 있는데, 학계 많은 학자가 ‘미(未)’로 해석해온 대목을 날카롭게 짚어내 기존 해석을 뒤집는 대목도 인상 깊다.(85쪽 ‘삼국유사 권제3 탑상 제4 금관성파사석탑’)

도명 스님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쓸 때 그러했던 것처럼, 가야불교 현장을 무수히 탐방하고 문헌 연구를 함께하며 이 책을 썼고, ‘가야불교’ 연구의 빗장을 열었다. 도명 스님의 유튜브 채널 ‘아는 스님 TV’에서도 가야 불교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