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1> 김우태 시집 ‘비 갠 아침’

등단 30년 만의 첫 시집… 알차게, 묵직하게 살아온 세월 담겼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5-22 20:04:34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80년대 대학시절 신춘문예 등단
- “너무 이르다는 자각에 도망쳐”
- 남해신문·시와생명 창간하는 등
- 바쁘게 살며 차곡차곡 쌓은 시들

1980년대에 문청 시절을 보낸 몇몇 시인은 당시의 작품 합평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 감성적인 언어로 이 부조리한 세상을 담을 수는 없어!’라는 비판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무엇을 쓰든 누가 비판할 수 있는가 싶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런 시각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그를 보듬어 감싸는 감성을 마음 속에서 하나로 삭혀내는 것이 시인의 운명일 것이다. 이래저래 시인의 고뇌는 깊고, 또 끝이 없다. 김우태 시인의 시집 ‘비 갠 아침’을 읽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었다. 경남 창원시에서 시인을 만났다.
등단 30여 년 만에 첫 시집을 낸 김우태 시인을 경남 창원국가산업단지 제3아파트형 공장 내 ‘문화대장간 풀무’ 앞에서 만났다.
■생애 최대의 풍경이었던 고향

김우태 시인은 현재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콘텐츠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곳의 또 다른 이름은 ‘문화대장간 풀무’다. 창원국가산업단지 제3아파트형 공장 내에 있다. 창원터미널에서 도로만 건너면 되는 곳이라 찾기가 쉬웠다. ‘문화대장간 풀무’는 가야문화권의 야철지였던 창원의 지역성과 역사를 반영하고, 여기에 문화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김우태 시인이 지었다. 문화대장간 풀무 주변은 나무들이 둘러섰고, 벤치도 넉넉하고, 조각 작품도 있었다. 누구든 와서 쉴 수 있는 곳이다.

김우태 시인은 1964년 경남 남해 서면 남정리에서 태어났다. 1973년에 남해대교가 완공됐으니, 그가 어렸을 때 남해는 말 그대로 ‘섬’이었다. 전기도 초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왔다. “배를 타고 부산에 오던 어릴 적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통통배, 기관 소리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배를 오후에 노량에서 타면 밤새 내해 바다를 달려 아침에 부산에 도착하는 배였습니다.” 그때는 멀고 험한 길이었다. “어린 저는 뱃멀미가 심했어요, 갑판에 올라가 멀미를 하다 지쳐 아예 누웠는데 밤하늘에 보름달이 환했답니다. 그때 물고기들이 뱃전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원무를 그리면서 날고 있는 날치였지요. 처음 보는 광경, 굉장한 원체험, 바다에 관한 신화적 체험이었지요.” 이야기가 실감나서 어두운 바다를 건너는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날치는 늘 그렇게 날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훗날 시를 쓰는 소년을 위한 축제를 잠깐 보여주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부러운 경험이다. “저의 유년시절은 생애 최대의 풍경이었습니다. 고향의 집과 마을, 바다, 부모님, 지나가는 아이의 뒷모습만 봐도 누구 아들인지 알아보고 챙겨주던 마을어르신들…. 큰일은 다함께 치러내는 살아있는 공동체사회였지요. 지혜와 선의, 풍속과 인정이 넘쳐나면서 절제되어 있던 곳이고요.” 그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돌아보며 ‘특별한 선물을 받은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에 바탕을 이루어준 자산이었을 것이다.

■세상과 사람을 담아내는 시

비 갠 아침- 김우태 시집 / 시와반시 / 2017
김우태는 부산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어 오월 광주의 비디오를 보았고, 사회과학 서적도 읽고, 문학동아리에서 시도 썼습니다. 모르고 살았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을 알아가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 세상을 향해 날선 목소리를 내는 문우들 사이에서 저의 시는 나약한 감성이라는 비판도 더러 받았지요.”

순박하고 우직한 시골 섬마을 청년 김우태는 그 시대를 자신의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대학 4학년 때 ‘오월문학상’을 받았고, 졸업을 앞두고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문학청년으로서는 누구나 부러워할 결실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시인으로 김우태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필자도 그게 가장 궁금했다. 첫 시집 ‘비 갠 아침’이 등단 30여년 만에 나온 까닭을 물었다. “시인으로서 준비가 덜 됐는데 너무 빨리 등단했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친 거에요. 혼자서 괴로워한 시간이지요.”

시를 놓고 고심하기도 전에 그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남해신문’ ‘시와생명’ ‘경남도보’를 창간하는 일부터 ‘남해사투리사전’ 발간, ‘경상남도사’ 전10권 발간, 인류의 보건과 위생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활동하는 세계화장실협회, 현재의 직무 등. 그는 늘 일을 하느라 바빴다. ‘경상남도사’는 전 10권의 목차만 봐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누군가는 시인으로서 시집을 내는 일이 더 중요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김우태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시와 한발자국 떨어져있었다 해도 세상의 일에 가까이 닿아있었으니, 그 모든 일은 시인의 몫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한 예리한 시선, 그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김우태의 시는 사람과 땅, 바다에서 태어났다. 등단 이후 써 온 시들을 묶은 시집에서 시 ‘차표를 끊어드리고’의 일부를 읽어보자.

‘밭 매는가 싶으면 마늘종 뽑고 / 나무 하는 가 싶으면 / 어느새 저녁 다 지어 놓으시더니// 손발이 너무 빨라 / 늙기도 저리 빠르셨나!// (중략) 어쩌다 아들 딸네 집 / 두루 사나흘 묵을 양으로 / 큰맘 잡수시고 나선 걸음이련만 // 빈 집에 쫄쫄 굶고 있을 / 강생이 얌생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고 / 이틀도 못 넘기고 휭 가버리시는 // 늙어서도 그 발길 도무지 따라 못 잡을 /날래디 날랜 / 저 깨꽃차림 뒷모습!”

정류장이나 차표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지만,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배웅하는 아들이 보인다. 가난한 시절, 힘든 살림을 알뜰하게 거두어 온 어머니를 가진 모든 아들이 가슴 뭉클해질 것 같다. 지난 시절의 세상과 사람이 이 시에 담겨 있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이 시를 읽는 방법도 각별하다. 남해읍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 화장품 가게에 이 시가 붙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들, 아들들이 이 시를 읽는다. 김우태 시인은 얼마 전 친구에게서 이런 소식도 전해 들었다. “밀양아리랑 전통시장에 김우태 시 ‘차표를 끊어드리고’가 붙어있더라!” 시집이 팔린다는 소식만큼 기분 좋은 이야기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2. 2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3. 3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4. 4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5. 5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6. 6[국제칼럼]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7. 7관객 춤췄다고 영업정지 ‘오방가르드’ 두 달만에 재개장(종합)
  8. 8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9. 9“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10. 10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1. 1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2. 2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3. 3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4. 4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5. 5"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6. 6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7. 7[속보]與 "'무책임한 의혹제기' 주진우, 사이버 레커로 전향하라" 직격
  8. 8이 대통령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비정상의 정상화"
  9. 9정동영 "김정은 방중, 긍정적으로 볼 여지 있어"
  10. 10北 ‘지뢰 폭발은 韓 자작극’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이사국들 회람
  1. 1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3. 3전기료 밀린 홈플러스…한전 ‘단전 예고’(종합)
  4. 4음악 들으며 북항친수공원 걸어요
  5. 5부산 온 세계 해사인 “안전·친환경 실천”
  6. 6“관광수익 주민에 환원해야 지역활력”…글로벌 20개 도시 리더들 한목소리
  7. 7BNK금융 3분기 누적순익, 작년보다 19% 감소
  8. 8복권판매점 늘어난다…정부, 우선계약 대상에 14만명 추가
  9. 9고리 3·4호기 '계속운전' 오늘 재심의…승인 땐 내년 재가동
  10. 10[한 손 뉴스] S/W 실행 환경 ‘Node.js’, 서버 해킹 보안 취약 경고
  1. 1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2. 2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3. 3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4. 4관객 춤췄다고 영업정지 ‘오방가르드’ 두 달만에 재개장(종합)
  5. 5“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6. 6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7. 7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8. 8日 주 20시간法 만들자 알바앱 급성장…편법 단기고용 판쳐
  9. 9[속보] 내일 기온 ‘뚝’ 떨어진다…대부분 지역 한파주의보
  10. 10강남 구룡마을 화재로 다량의 연기 발생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3. 3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4. 4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5. 5[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6. 6[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7. 7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8. 8롯데자이언츠 새 사령탑 ‘NC 우승 감독’ 이동욱…단장에는 이택근 선임
  9. 9‘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10. 10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우리은행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송현화-Magic Airs
지나-마음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8일 (음 9월 1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7일 (음 9월 17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