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미술실 한 편에는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은입사청동발(銀入絲靑銅鉢)이 있다. 은입사청동발은 고려시대 불교 의식 용구로 사용되었던 그릇으로 보인다. 입사는 동, 철 등의 금속에 선이나 홈을 파서 그 홈에 금, 은 등의 다른 금속을 채워 넣는 장식기법이다. 입사기법은 세밀하고 정교한 기술로서 금속 공예를 한 단계 발전시킨 기술이다.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낙랑시대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지배층의 칼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금속공예품에서 입사장식이 많이 나타나는데, 향로와 같은 불교미술품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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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입사청동발(왼쪽)을 X-ray로 촬영한 모습. 부산박물관 제공 |
유물 명칭은 은입사청동발이지만 은입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물 명칭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이때, 은입사 기법으로 만들어진 청동발이 맞는지 확인을 위한 과학적인 분석조사가 필요하다. X-ray 촬영과 XRF(X-선형광분석) 성분분석조사는 유물의 수수께끼를 과학적으로 풀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런 과학적 조사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은입사청동발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X-ray 촬영 원리는 물질의 종류와 밀도 등에 따라 X-선이 투과되는 정도차를 이용한 조사 방법이다. 투과 정도에 따라 흑백의 음영을 가진 화상이 만들어진다. 유물의 부식 정도, 입사나 문양의 존재, 균열과 수리 부위 등을 알 수 있다. 은입사청동발의 X-ray 사진을 보면 하얀 실선으로 새겨진 무늬가 보인다. 바탕 재질인 청동보다 은의 밀도가 높아 X-선의 투과량이 적어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주변으로 검은 실선 형태로 빼곡하게 그려진 문양들이 보인다. 이는 긴 시간을 지나오며 끼워져 있던 은입사선이 탈락하고 현재 음각된 선만 남아 검게 보인다.
X-ray 촬영을 통해 청동 녹 때문에 가려졌던 화려한 옛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구연부 안쪽 가장자리에 번개문을 돌리고 그 아래 연꽃문을 장식했다. 바닥의 중앙에는 만자(卍字)를 새기고 이를 중심으로 당초문과 연꽃문을 둘러 새겼다. 바깥면에도 여의두문과 연꽃문을 돌려 화려하게 장식했다. X-ray 촬영에 더해 XRF 장비로 분석하면 은입사의 성분까지 밝힐 수 있다. XRF는 X-선을 조사하여 나온 형광X-선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원소 성분을 알아보는 장비다. 이 조사 결과 은 성분이 99% 검출되어 은입사임이 확인됐다.
이처럼 과학의 눈은 유물의 아름다웠던 본래 모습을 복원해준다. 지금은 청록색의 녹이 끼어 고풍스러움을 더하고 있지만 천년 전 은백색의 반짝이는 선들로 빼곡하게 장식되었을 화려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