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출신… 결혼 후 경기도 정착
- 도심서 벗어난 뒤 자연에 눈 떠
- “다름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나무
- 아이들 같은 잣대로 평가해 상처
- 있는 그대로의 모습 받아들여야”
이십대의 어느 겨울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앙상한 가지가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 나무들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저게 무슨 나무지?” 중얼거렸는데 동행했던 선배가 한심하다는 듯이 뒤통수를 툭 치며 “네가 학교에서 제일 많이 봤던 나무도 못 알아보느냐”며 핀잔을 준다. ‘가장 많이 보았던 나무’라는 힌트에 퍼뜩 생각해냈다. 벚나무였다. 벚꽃이 필 때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난리법석을 피웠던 필자였다. 그런데 다른 장소에 서있고, 꽃이 떨어지고, 잎이 졌다고 해서 그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니…. 부끄러웠다. 벚나무뿐이랴. 꽃과 잎을 떨구고 가지만 드러낸 나무라면 알아보지 못한다. 사시사철 같은 모양새인 소나무나 겨우 알아볼 정도다.
그 여행길에서의 ‘벚나무 사건’을 생생하게 떠올려 주는 그림책을 만났다. 김선남 작가의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이다. 그림책의 글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동네엔 나무가 참 많아. 처음엔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꽃이 펴서 알았지. 벚나무였다는 걸.”
작가에게 나무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김선남 작가를 경기도 군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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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남 작가가 살고 있는 경기도 군포시 능안공원 앞에서 만났다. 책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에 등장하는 공원은 작가가 매일 걷는 이곳을 떠올리게 한다. |
■낯설었던 자연을 받아들이다
김선남 작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을 하면서 경기도에서 산지 20여 년이다.
“저한테 나무의 생태를 물어볼 건 아니죠?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그저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작가에게 처음 연락을 했을 때 그가 한 말이다. 작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뭘 아는 게 있어야 물어볼 게 아닌가. 그저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나무를 그린 그림책도 좋아하는 독자를 만난다는 생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선남은 도시 아이였다. “서울 명동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도 명동성당 안에 있었어요. 시국 집회를 일상 풍경처럼 보고 최루탄 냄새가 익숙했지요. 시골 풍경은 물론이고 자연생태도 제겐 책에서나 보던 것이었어요. 서울도 변두리로 나가면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지만 저는 도심 한 복판에서만 살았던 터라 낯설기만 했어요. 결혼을 하고 경기도에서 살면서 조금씩 익숙해졌지요. 어느 정도였느냐면 밭에서 금방 따 온 상추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요. 깨끗하게 다듬어 포장된 마트의 상품으로만 봤던 채소가 아니었으니까 신기했지요. 그랬던 제가 많이 변한거지요.”
김선남은 군포의 능안공원 앞에서 살고 있다. 아파트를 나와 공원의 언덕길을 넘어 작은 작업실로 간다. 매일 걸어가는 길에 나무와 꽃이 있다. 그가 “산을 넘으면 작업실”이라고 했기에 정말인 줄 알았는데 언덕이었다. 10여 분이면 갈 길을 그는 30~40분 걸려 걷는다. 걷는 동안 보아야 할 것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산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능안공원의 수목에는 특이한 팻말이 있었다. 작가와 함께 몇 개를 읽어보았다. ‘낙엽 지는 넓은 잎의 중간키 나무, 꽃은 3월에 산골짜기 얼음이 녹을 때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뭉쳐 피고 열매는 가을에 빨갛게 익는다’. 산수유에 대한 설명이다. 덜꿩나무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넓은 잎의 작은키 나무. 흰꽃은 5월에 모여 피며 열매는 주홍색으로 익고 윤기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소박하고 간결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다정한 설명이다. “이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이걸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능안공원이 주민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능안공원에는 지금 덜꿩나무가 흰꽃을 피우고 있다.
■ 나무와 그림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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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김선남 지음 / 그림책공작소 / 2021 |
김선남은 왜 나무를 그리게 된 걸까.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화가에게는 금기시 된 소재 중 하나가 나무에요. 이미 훌륭한 나무 그림이 많이 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큰 부담도 있죠. 하지만 전 나무가 좋았습니다. 저에게 나무는 조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대상입니다.”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어린 조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생겨났다. 김선남의 마음에서 나무와 그림책은 그렇게 만났다. 지금까지 주로 나무 그림을 그렸다. ‘은행나무’ ‘날아라 막내야’ ‘나무 하나에’ ‘한 나무가’ ‘갈대의 길’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를 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담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서울 이야기’도 냈다.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은행나무 씨앗을 품은 화분을 들고 왔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씨앗을 심게 하는 식목일 행사를 했던 겁니다. 아이는 열다섯이 되었고, 지금도 그 나무가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집에서는 그 화분이 슬며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김선남의 집에서는 은행나무와 아이가 함께 자랐다. “나무를 키우면서, 또 나무를 보고 그리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같은 나무라도 자세히 보면 달라요. 한 가지에서 핀 잎도 다르고요. 다 달라요. 우리 아이들도 그렇답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 다른 아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보고 평가하려 합니다. 그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름’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김선남의 책이 ‘나무’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정작 표현하고 싶었던 주제는 ‘다름’이었다. 모두 다 다른 채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라는 것, 나무도 사람도 그렇다는 것. 그게 자연이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를 펼치면 나무가 자라는 공원이 있다. 작가가 매일 걷는 능안공원이 떠오른다. 계절마다 다른 꽃과 열매로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나무가 있다. 세상에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다르다.
김선남은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나무를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에 생겨나 그 무수한 세월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