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의 도자기 원조마을’로 불리는 경남 김해시 상동면의 궁벽한 농촌 마을에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여류 도공의 스토리’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특히 주민이 배우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연극에 참여하는 마을주민을 비롯한 배우들이 최근 공연이 열릴 백파선 광장에서 대사 연습을 하고 있다. 극단 진영 제공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 소재 백파선연구소는 오는 7일 마을 내 야외무대에서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 백파선(1560~1656)’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공연한다고 5일 밝혔다. 백파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규슈에서 ‘아리타 도자기 여신’으로 추앙받게 된 인물이다. 이 마을 출신으로 추정되는 여류 도공의 고난과 성공스토리가 연극의 골자다. 진영읍에서 활동 중인 극단 진영이 참여했다.

연극은 모두 8장으로 1시간20분에 걸쳐 공연하는데, 18명의 출연 배우 가운데 절반 가까운 8명이 마을 주민이다. 농촌 주민이 마을 역사를 소재로 한 연극에 참여하는 시도는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다. 극단 진영 김혜정(73) 대표는 “주민은 도자기 작업 일꾼, 아이 등의 역할을 맡아 참여한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변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 마을이 도자기를 소재로 연극을 올리는 것은 600년 역사를 가진 도자기 원류마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2016년 6월 마을 뒷산에서 고려시대 분청자기 가마터가, 지난해 11월에는 백자 가마터가 발굴됐다. 조선시대 대규모 요업단지인 ‘감물야촌(甘勿也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됐다.

백파선을 주제로 한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실내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극단 진영 제공

임진왜란 때 이곳의 도공이 무수히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당시 여류 도공인 백파선도 함께 끌려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인연으로 이 마을은 코로나19 이전까지 백파선의 활동 무대였던 일본 사가현 아리타시를 찾아 교류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마을 연극사업을 주도한 이봉수(66) 김해시 마을만들기추진위원장은 “앞으로 숙련도를 높이고 내용을 보충해 모든 배역을 주민이 맡는 게 목표”라며 “궁벽한 산골 마을을 ‘연극 마을’로 널리 알려 역사 관광지로 만드는 게 장기적인 플랜이다”고 포부를 전했다.

백파선 연극은 지난해 11월 학교 강당에서 첫 공연을 했으나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로 소수 인원만 참여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배우로 참여하는 한 주민은 “그동안 초보인 주민들이 실력을 갈고닦으며 땀을 많이 흘린 만큼 수많은 관객 앞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꿈에 부풀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열악한 무대 사정으로 변변한 조명 설치도 어려워 앞으로 전용 소극장을 갖는 게 주민의 소망이다. 행사 당일 주민은 손수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플리마켓도 열기로 하는 등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