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캐릭터 뼈대 재현 ‘아니마투스’ 등
- 해부·생물·고고학 연구한 작품세계 망라
미술관에 실험실이 차려졌다. 한쪽 벽엔 두개골 척추, 갈비뼈 등 크고 작은 동물의 뼈들이 선반에 올려져 있고, 해부학 연구 흔적도 보인다. 테이블로 눈길을 옮겨보니 맞추다 만 듯한 동물 뼈대가 마치 덮칠 것처럼 두 발로 서 있다. 온갖 뼈들이 나뒹구는 이 으스스한 공간의 정체는 사실 조각가 이형구의 작업실 ‘아니마투스 실험실(ANIMATUS LAB)’이다. 미술관에 그대로 재현했다. 점토와 조각칼, 물감, 붓 등 조각 도구들이 이곳에 가득한 뼈대가 사실은 모형이라고 안심시켜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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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구 작가의 ‘Anas Df Animatus’.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몸’에 대한 주제 의식을 이어가는 작가 이형구의 개인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를 소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네 번째 전시로, 오는 8월 7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100여 점이 출품되며,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업실을 비롯해 작가가 연구해온 해부학 생물학 고고학 등에 대한 아카이브도 함께 선보인다. 오랫동안 미술의 대상이 되어온 ‘몸’의 의미를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다시금 고민할 수 있는 자리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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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구 작가의 ‘pink vessel’.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관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신작 ‘핑크 베슬(Pink Vessel)’이다. 피가 순환하고 있는 듯 울퉁불퉁한 혈관 모양을 튜브처럼 바람을 넣어 공중에 매달았다. 가로 15m가 넘는 이 대형 설치작은 최근 인체 내부로 시선을 옮긴 작가의 케미컬 시리즈 작품으로, 관객은 마치 누군가의 몸 안에 들어가 내부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전시는 작가가 몸에 대한 주제 의식을 선보인 시리즈 순서대로 전개된다. 첫 번째로 만나는 시리즈는 초기작 ‘오브젝츄얼스(The Objectuals)’. 미국 유학 시절, 인종에 따라 신체적 차이를 경험한 작가는 원하는 크기나 형태로 인체를 변형할 수 있는 장치를 제작했다. 광학필름과 렌즈 등을 이용해 눈과 입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키우는 등 인체 변형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포스트휴먼의 신체성 담론을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조형 언어로 나타냈다는 평가다.
변형된 인체 형상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신체적 특징을 발견한 작가는 만화 캐릭터의 골격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아니마투스(Animatus)’는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벅스 버니, 톰과 제리 등 2차 원의 만화 캐릭터를 3차원의 공간으로 도약시킨 작업이다. 상상력과 해부학적 연구로 재현한 이들은 당장이라도 전시장을 활보할 것 같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마치 캐릭터의 화석을 관람하는 듯한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몸에 관한 관심은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되어 시각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보는 방식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몸의 감각을 탐구한 ‘아이 트레이스(Eye Trace)’는 물고기 사슴 곤충 등의 시각 형태를 체험할 수 있는 인체 조율 장치를 개발하고 이들이 ‘되어보기’를 시도하는 작업이다. 관상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페이스 트레이스(Face Trace)’는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려는 주체적 태도를, 스스로 말이 되어 마장마술을 행하는 영상작품 ‘매저(MEASURE)’는 작가만의 유쾌한 시각언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실험을 거치며 몸이 동반하는 지각의 변화를 확인한 작가는 ‘케미컬(Chemical)’ ‘케미컬 볼륨(Chemical Volume)’에서 확장된 공간으로 몸을 펼쳐 보인다. 몸 안으로 들어와 마주하는 생경한 풍경은 천체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일종의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인체 내부로 이동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관람객은 일종의 천체적 풍경, 소우주로서 ‘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