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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2> 처용무 - 김기원 이수자

역병 쫓는 강인한 춤사위 … 나라의 吉 빈다는 이유로 일제때 칼질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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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신 물리친 처용 설화 기원
- 신라인 평안·행복 기원한 상징
- 조선시대 궁중무로 자리잡아
-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지정

- 5인 남성 춤꾼의 매력적인 탈
- 팥죽색에 복숭아·모란꽃 장식
- 잡귀 내쫓고 신성함 나타내

- 김 씨 부산 보존협회 설립 일조
- 年 공연횟수 2,3회 수준 그쳐
- “전통 잊혀지는 현실 안타까워”

처용무는 역신(疫神·역병을 일으키는 신)을 내쫓는 춤이다. 팥죽색 탈을 쓰고 한삼(손목에 착용하는 긴 소매)을 펼치며 평안과 행복을 기원한다. 통일신라부터 1000년을 이어져 왔다. 고려시대에는 민간에서 사랑받다가 조선시대 궁중무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19일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열린 처용무 공연 모습. 이우정PD
처용은 학창시절에 배운 향가(鄕歌) ‘처용가’의 그 처용이다. 통일신라 49대 헌강왕은 용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개운포(울산 간절곶)에 절을 창건한다. 용은 자신의 아들들을 보내 헌강왕의 덕을 찬양했다. 그 아들 중 하나가 바로 ‘처용’이다. 헌강왕은 처용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혼사를 도왔다. 어느 날 처용이 집으로 들어가니 역신이 잠든 아내를 탐하고 있었다(가라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처용은 분노하기 보다 춤 추며 용서했다(본되 내해다마란 아자날 엇디하릿고). 그 모습을 본 역신은 감복하여 처용의 얼굴이 있는 곳엔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때부터 통일신라 민중들은 액운을 막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탈로 만들어 쓰고 춤을 추거나 문에 걸어두었다. 처용무의 기원이다. 최근 부산국립국악원에서 만난 김기원 처용무(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이수자는 “역병과 악을 내쫓고 좋은 기운을 가져온다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이 처용무의 본질이다. 코로나19라는 역병 탓에 어지러운 요즘과 가장 어울리는 춤”이라고 소개했다.그는 “처용무에는 한삼을 힘차게 뻗고, 무릎을 크게 벌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동작처럼 씩씩한 표현이 많다. 주로 정적인 정재무(呈才舞·궁중무용의 통칭)와 다른점”이라고 덧붙였다.

처용무는 과거엔 혼자서 추는 춤이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오방(동서남북과 중앙)과 시간의 의미를 더해 5명이 추는 형태로 바꿨다. 탈을 쓴 5명의 처용은 무대에 한 줄로 입장해 음악과 함께 춤을 시작한다. 각각 청·홍·황·흑·백색 옷을 입는다. 청색은 동쪽과 봄, 홍(적)색은 남쪽과 여름, 흑색은 북쪽과 겨울, 백색은 서쪽과 가을, 황색은 중앙과 늦여름을 상징한다. 5명의 처용이 무대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조화를 의미한다. 춤이 끝나면 입장한 곳으로 퇴장하는데, 이는 윤회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처용무를 남성 무용수들이 많이 추는 이유는 유교국가인 조선시대 종묘행사에 많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종묘 제례에는 남성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처용무 공연에 사용되는 처용탈.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처용무는 춤 못지않게 탈도 매력적이다. 처용무의 탈은 악학궤범(궁중음악의 법식과 제도를 기록한 책)을 토대로 제작된다. 처용을 본떠 만든 탈은 팥죽색 얼굴에 진하고 풍성한 눈썹과 수염을 뽐낸다. 머리 위로는 천도복숭아 7개가 맺혀 있고 이마 양쪽에 모란꽃이 피어있다. 복숭아는 잡귀를 내쫓고, 모란꽃은 신성함을 나타낸다. 독특한 탈 모습 때문에 처용이 아랍인이라는 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처용무가 오광대와 같은 가면극에 영향을 줬다는 설도 있다. 김기원 이수자는 “탈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지만 처용무의 탈은 그 자체로 벽사진경을 나타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처용무는 탈을 비롯해 형식이나 내용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일제는 조선의 장악원(궁중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는 관청)을 없애고 규모를 줄인 ‘이왕직아악부’를 만든다. 탈 제작 장인을 대부분 해고하고 조선 왕을 찬양하거나 나라의 길(吉)을 바라는 내용도 처용무에서 삭제했다. 광복 이후, 정부는 이왕직아악부를 폐지하고 국립국악원을 설치해 일제강점기 소실된 문화재 복원에 나선다. 당시 국악원과 문화재청이 고종황제 앞에서 궁중무용을 선보였던 장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남아있는 기록을 토대로 원형을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처용무는 춤과 함께 다양한 타령과 장단으로 이뤄진다. 막이 오르면 웅장한 수제천(아악에 속하는 국악합주곡) 반주에 맞춰 탈을 쓴 5명의 처용이 등장한다. 이후 향당교주(향악기와 당악기의 혼합연주)가 시작되면 청과 홍, 흑과 백은 서로 마주보고 중앙의 황(黃)은 동쪽을 향해 마주 인사하며 조화를 표현한다.

다음은 모든 처용이 180도 몸을 돌려 반대쪽을 향해 다시 인사한다. 이는 인·의·예·지·신에 대해 예를 갖추는 의미다. 이후 세령산 타령과 도드리 장단에 맞춰 춤을 이어가다 마지막에 5명의 처용이 퇴장한다.

김기원 처용무 이수자
김기원 이수자는 부산국악원에서 처용무를 공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다 한국무용으로 전과했다. 정재무(呈才舞·궁중무용의 통칭) 중에서 처용무를 배우길 원했지만 당시에는 서울에 있는 처용무보존협회에서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이진호 처용무 전수조교를 만나게 된다. 스승과 함께 처용무보존협회 부산지부 설립에 힘을 쏟았고, 마침내 지방에서는 최초로 부산에 지부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잊혀져 간다’는 김 이수자의 가장 큰 걱정이다. 그는 “현재 울산처용문화제와 전주문화유산원에서 주로 초청 공연을 하고 있다. 연간 공연횟수가 2, 3회밖에 안된다”며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공연을 늘리고 싶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탈과 의상 비용도 만만치 않아 춤을 배워도 쉽게 공연을 못하는 게 현실이다”고 전했다.

중국이 우리 전통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현실도 우려했다. “과거 중국 유학생과 교수들이 우리 연습장을 찾아 처용무를 녹화해 간적이 있어요. 아리랑과 한복 등 우리 문화가 침략당하는 상황에서 그 영상이 어떻게 쓰일지 의문입니다”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배경엔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져온 긴 역사가 있다. 또한 그 역사를 짊어지고 춤을 후세에 전하는 장인들의 노력이 모인 결과다. 지금의 처용무를 볼 수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미래에도 처용무를 볼 수 있을까. 김 이수자는 “우리 문화가 우리에게서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 지원과 함께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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