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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8> 차승호 동화집 ‘도깨비 창고’

아버지 잃은 상심 달래려 쓴 동시, 그 작품들이 동화로 환생했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4-10 19:21:5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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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시절 담임 덕에 글쓰기 눈떠
- 부친 이야기로 詩창작 활동 시작
- 동화로 영역 넓혀 신춘문예 당선
- 고향집 소재 기발한 상상력 돋봬

도깨비가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으면서도 사람의 꾀에 넘어가는 어수룩한 도깨비였기에 무섭지 않았다. 차승호 작가의 동화집 ‘도깨비 창고’가 그 기억을 다시 살려준다. 아이들을 위해 지은 재미난 이야기가 담긴 책 자체가 바로 도깨비 창고일지도 모른다. 차승호 작가를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났다.
동화집 ‘도깨비 창고’의 작가 차승호가 부산시민공원에서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고향 생각나는 시민공원 보리밭

차승호는 1963년 충남 당진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부산에서 살고 있다.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푸른 동시놀이터’에 동시 추천, 2020년 전북일보에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다. 시집 ‘즐거운 사진사’ ‘들판과 마주서다’ ‘소주 한 잔’ ‘얼굴 문장’ ‘난장’을 냈다.

‘도깨비 창고’는 그의 첫 동화집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부산 시민공원에는 봄 기운이 가득했다. 어린 연두잎을 매단 버드나무가 보드라운 바람에 봄처녀 긴 머릿결처럼 찰랑거렸다. 오후로 막 넘어갈 무렵이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는 근처의 직장인, 유모차를 몰고 나온 젊은 부부, 무조건 내달렸다가 되돌아오는 손자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그늘 아래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민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보리밭이에요!”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차승호 작가가 몇 발자국 앞의 푸른 화단을 가리켰다. 공원을 조성할 때 산책로 곁에 만든 화단, 아니 보리밭이다. 넓은 밭은 아니지만, 보리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때가 되면 추수도 하는지 궁금하다. 그때가 오면 보러와야겠다. 차승호는 보리밭 옆에 잠시 앉았다. “공원에 오면 늘 이 쪽으로 길을 잡아 걸어요. 고향 마을이 생각나는 곳이에요.”

그의 고향집 뒤에는 400년이 넘은 수령의 소나무가 있다. 충남 당진시 보호수다. “밤이 되면 창밖에 소나무 가지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소나무라는 걸 알면서도 무서운 상상을 하곤 했지요. 겁이 많았거든요.” 겁 많은 소년은 상여가 가장 무서웠고, 상여가 지나간 길도 무서웠다. “뭔지 모르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였겠지요. 시골마을에 밤이 내리면 온통 먹물 같은 어둠이에요. 방문 밖으로 나서질 못했답니다.”

필자도 몇 년간 시골마을에 살았던지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 말라는 금기도 많았고, 조심시키느라 어른들은 귀신 이야기로 아이들을 겁주곤 했다는 걸 철이 든 후에 알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무서웠다. 비슷한 경험을 서로 털어놓으며 한참 웃었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자란 그는 시를 쓰면서 들판과 농촌마을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을 쏟아냈다. 그의 시도 읽어보고 싶다.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문예반 지도교사였습니다. 그때 작문이라는 걸 처음 해보았습니다. 내 마음을 담아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 그의 길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 도깨비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

도깨비 창고- 차승호 /신생/ 2022
2015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심에 빠져 있던 그는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쓴 동시 ‘우주인 할아버지’는 후에 다시 동화로 태어나 첫 동화집에 실렸다. “동화로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 시상식장에서 더럭 겁이 나더라고요. 써놓은 동화가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동화를 열심히 썼지요. 그 작품들을 모아 ‘도깨비 창고’를 냈습니다.”

동화집의 8편 이야기에는 따뜻한 감동과 재미가 있다. ‘작가의 말’도 정겹다. “축하해, 드디어 찾았구나. 열쇠의 방 가득 잠자리 떼처럼 날아다니는 열쇠 중에서 너는 농촌으로 들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은 거야. 그러니까 이 책은 열쇠야. (중략) 자, 그러면 자물통에 열쇠를 밀어 넣듯 다음 페이지를 넘겨 봐.”

열쇠를 밀어 넣어 책장을 넘겨본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우주인 할아버지’라면, 달리기를 못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투덜투덜 꼴찌 스타’는 차승호의 어린 시절 고백에 가깝다. ‘도깨비 창고’는 아버지가 없는 시골집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다.

“틈날 때마다 시골집에 가서 어머니 손이 못 미치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농기구와 이런저런 물건을 보관한 창고를 청소했는데,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그 물건들은 어머니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처럼 제 역할을 못하고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로 있지만, 아버지의 손길과 땀이 배인 물건들이 도깨비가 된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도 했고요. ‘도깨비 창고’의 할머니는 어머니를 모델로 했습니다.”

지게 절구통 호미 갈퀴 항아리 떡시루 맷돌 삽 낫 톱 망치 빗자루…. 작품 속에서 창고 안 농기구들은 할머니 걱정이 태산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 지고 아침이 오면 할머니가 고드름 낙수물 때문에 얼어붙은 길에서 미끄러져 다칠까 봐다. 몰래 눈을 쓸고 싶지만, 사람 눈에 뜨이면 도깨비가 되지 못하니까 좋은 방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마침내 망치가 나서서 고드름을 조심조심 깼다. 이렇게 착한 존재가 도깨비가 되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도깨비가 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시간과 땀방울로 버무려진 농부의 손때가 더께로 앉아 있고 몸이 몽당하게 닳아 없어져야 되거든요. 무엇보다 백 년 동안 숨생이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되고요.” 숨생이는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이다. 숨을 쉬지 않는 무숨생이는 숨생이에게 들키면 안 된다니 도깨비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 무엇보다 착한 사람이 소중하게 다루는 것, 그것이 도깨비가 되는 기본 조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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