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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4> 해남 토종닭 육회와 통닭 요리

닭 육회부터 주물럭·구이·백숙까지… 이 풀코스를 ‘통닭’이라 부른다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3-29 19:43:1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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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에서만 맛보는 토종닭 요리
- 주문하면 바로잡아 육회 제공
- 다음엔 소금구이와 양념 불고기
- 백숙과 닭죽으로 식사 마무리

전남 해남의 고찰 대흥사 인근에는 닭요리를 주업으로 하는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해남읍 연동리의 ‘닭요리 촌’이 그곳이다.
‘닭 한 마리 코스’의 첫 번째 요리인 닭육회
절 아랫동네에 ‘닭요리 촌’이라니 점잖은 사람은 불경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곳은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토속적으로 닭을 요리해 먹던 방식으로 손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일명 ‘통닭 거리’라고도 불리는데, 호사가들의 우스갯 말을 빌면 ‘이곳에서 먹을 수 없는 유일한 닭요리가 통닭’이라고 말한다. 모든 닭요리가 제공되는데, 기름에 한 마리를 통으로 튀겨내는 통닭만 상차림에 없다는 말이다.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닭을 잡아 육회도 내고, 구이로도 내고, 주물럭으로도 내고, 백숙과 죽 등으로도 내는, 토종닭 한 마리를 다양한 요리로 내는 곳이다. 토종닭 한 마리를 오롯하게 ‘통’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낸다고 ‘통닭’이란다.

무게가 3㎏이 넘는 토종닭을 사용해 한 마리를 가지고 서너 명이 족히 배불리 먹을 수가 있는데, 말 그대로 토종닭으로 여러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기에 ‘닭 한 마리 코스 요리’라 말할 수 있겠다.

고추장 양념으로 가슴살을 무쳐낸 주물럭
이곳의 시작은 1970년대 ‘장수통닭’이라는 작은 음식점이 집에서 기르던 토종닭을 도시 손님에게 요리해 팔면서부터다. 마을주민이 으레 먹던 방식대로 한 마리씩 요리해 대접했는데 이 맛에 반한 도시 손님이 내내 몰려들었다고. 단골이 늘고 명성을 얻으면서 음식점 주위로 하나둘 토종닭 음식점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며 ‘통닭 거리’를 이뤘다고 한다.

요즘은 연동리 돌고개 주변에 형성된 통닭 거리를 ‘닭요리 촌’이라 명명해 부른다. 닭백숙을 팔던 작은 음식점에서 시작해 해남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현재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오래전부터 해남의 농가 대부분은 마당에 닭을 풀어놓고 키웠다. 농가라면 대개 그렇지만 소는 농사의 주요한 노동력이었고, 돼지는 집안의 대소사에 쓰이는 가축이었다. 따라서 집안 사람들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은 집에서 기르던 닭이었다.

그러하기에 집안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계절이 바뀔 때 보양식으로 유효한 역할을 했던 가축이 바로 닭이었다. 이곳 ‘닭요리 촌’의 특징도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닭을 주문 즉시 잡아 손님들에게 내놓는다는 것.

그래서 이곳에서는 싱싱한 ‘닭 생고기’를 즉석에서 바로 먹을 수가 있다. 닭 생고기는 바로잡아 신선할 때가 아니면 절대 먹을 수 없기에,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특히 전남 남부지역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닭을 잡아 가슴살이나 모래집 등을 쓱쓱 썰어 소금 기름장에 푹 찍어 먹었다. 향토음식쯤 된다는 뜻이다.

날개와 봉, 발 등을 노릇노릇 구운 닭구이
해남 통닭집에 들어서면 먼저 기본 찬에다 토종닭이 낳은 삶은 달걀을 내준다. 갓 부쳐낸 바삭하고 고소한 부침개와 묵은지에 모두부 등 남도의 맛이 총총한 반찬에다 잘 삶은 달걀로 술 한 잔 마시다 보면 느지막이 첫 코스인 닭 육회와 소금구이가 상에 오른다.

원래 닭을 잡고 나면 배를 가르고 모래주머니와 내장을 들어내는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모래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육회로 썰어낸다. 살아있는 놈을 바로 잡았으니 신선도가 좋아 회로 먹을 수 있다. 이때 닭발 껍질도 쫑쫑 다져내고, 가슴살도 살살 저며내어 함께 육회로 먹는다.

“해남에서는 오래전부터 닭고기를 회로 즐겼어요. 참기름장에 콕 찍어 먹으면 고소한 것이 일품이죠. 가슴살은 부드럽고, 모래집은 꼬들꼬들합니다. 닭발 껍질은 쫀득쫀득하지요. 여러 식감으로 먹을 수 있어서 아주 일미로 칩니다.” 닭요리 촌 주변 돌고개 마을주민들의 말이다.

코스의 마지막인 거대한 크기의 닭백숙
닭구이는 날개와 봉, 발 등을 노릇노릇 구워서 소금에 찍어 먹는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은근하게 입맛을 당긴다. 이렇게 여러 부위의 육회, 구이와 함께 먹다 보면 소주 한 병이 게눈 감추듯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뒤이어 고추장 양념으로 가슴살을 조물조물 무쳐낸 주물럭이 상에 오른다. 냄새를 맡으니 칼칼한 고추장 냄새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덧입혀져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원래 닭 주물럭은 불고기로 구워 먹지만 이곳 ‘닭요리 촌’의 주물럭은 처음에는 생으로 먹는다.

고추장과 참기름에 버무린 주물럭 생고기는 매콤하면서도 고소하다. 식감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맛이 있다. 이들이 함께 섞여 들큼 쫀득한 것이 ‘소고기 생고기’와 ‘생선회 무침’의 풍미와 식감이 어우러진다. 뒤이어 주물럭을 불고기로 굽는다. 잘 익어가는 불고기 냄새가 흔쾌하다. 지글지글 기분 좋게 주물럭이 다 익으면 상추쌈에 싸서 한입 가득 먹으면 된다.

백숙 삶은 육수에 쌀과 녹두를 넣어 끓어낸 죽
벌써 포만감은 넘쳐나고 주흥은 도도해지는데, 백숙이 큰 접시에 담겨져 나온다. 이미 세 가지 요리에 많은 부위를 떼주고도 백숙의 크기는 실로 거대하다. 국내에서 제일 큰 토종닭을 사용하는 ‘닭요리 촌’이기에 그렇다. 살을 발겨내 소금에 찍어 먹으니 보들보들, 쫄깃쫄깃, 쫀득쫀득, 오독오독 다양한 맛이 혀를 희롱한다.

백숙을 삶은 육수에 쌀과 녹두를 넉넉히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죽은 지금까지 먹은 다양한 닭 요리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한창 거방지게 차려 먹은 후의 위장을 도닥도닥 다독여주는 음식이 바로 닭죽이다. 심심하면서도 은근한 맛이 떠먹을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같은 재료라도 지역과 환경에 따라 먹는 방식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 음식이다. 그래서 음식의 역사나 유래, 조리법의 다양성, 인문지리적 환경 등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음식문화’라 통칭하는 것이다.

해남의 닭 육회, 닭 생고기 식용문화 또한 그 지역의 역사와 주변 환경 등을 잘 반영한 음식문화 중 하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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