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동래관에는 신라 목간(木簡·고대 사회에서 종이를 대신해 글을 써넣던 나무판) 1점이 전시되어 있다. 눈 여겨 봐두지 않는다면 쉽사리 지나쳐 가겠지만, 부산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남다른 의미가 있는 유물이다. 이 목간은 배산성(부산 연제구 연산동 소재) 2호 집수지에서 출토됐다.

2017년 배산성 발굴조사에서 발굴한 목간을 수습한 직후 모습. 부산박물관 제공

목간은 당대 사람이 쓴 1차 기록으로 희소성과 중요성이 인정되는 유물이다. 나무 재질인 목간은 어지간한 환경에서는 쉽게 썩어버려 발굴 현장에서 수습되는 사례가 드물다. 공기가 차단된 습지 환경에서는 유기물일지라도 썩지 않고 남을 수 있다. 목간이 출토된 배산성 집수지에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조성된 탓에 15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담게 되었다.

2017년 봄부터 시작된 배산성 발굴 조사는 예상치 못한 집수지 규모와 막대한 유물 출토량으로 정해진 조사 기한을 넘겨 그해 12월까지 진행됐다. 슬슬 추위가 밀려 오고 발굴조사가 막바지에 달할 즈음, 켜켜이 쌓인 기와무지 틈새에서 목간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조사현장 담당자였던 필자에게 목간을 직접 수습할 기회가 주어졌다. 수백 번의 붓질을 반복하면서 목간 주변의 흙을 걷어 나갔고, 목간을 슬쩍 뒤집어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목간 정중앙에는 먹물 자국이 남은 서체가 육안으로도 또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목간의 발견은 곧장 학계와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량의 글귀가 쓰인 목간 발견 사례도 희귀하거니와 국내 최대 크기(길이 31.7㎝ 너비 6㎝)에 달하는 대형 목간의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가야의 영토였던 부산은 신라에 의해 병합되는 과정을 거친다. 신라 축성 기술이 반영된 배산성과 신라 목간은 부산 일대가 신라에 편입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목간에 적힌 3열의 묵서(墨書)에는 신라의 지방 통치에 관한 힌트가 담겨 있다. 목간에 기재된 을해년은 배산성 운영 시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출토 유물로 보아 배산성은 6~7세기 축조 운영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해당하는 을해년은 615년이나 675년이 유력하며, 삼국 통일전쟁으로 각축을 벌이던 시기다.

목간 첫머리에는 촌락의 명칭과 촌주(村主)의 존재도 등장한다. 신라의 지방 기초 단위가 바로 촌이다. 그 촌의 최고 책임자인 촌주는 역사서나 금석문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내용은 지방 관아에서 곡식을 대여해 주고 2~4월 초하루마다 일정량의 곡식을 걷은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지방 관아 문서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이며, 신라의 중심지인 경주가 아닌 우리 부산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