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45> 도미도레코드 설립했던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

‘빈대떡 신사’로 공전의 히트…피란 온 부산서 참기름 틀로 음반 찍어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3-20 19:24:0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이북서 양복점 꾸렸던 재단사
- 6·25 전쟁 때 가족과 부산으로

- 축음기부품 등 팔아 모은 돈으로
- 열악한 환경 속 음반제조사 설립
- ‘한 많은 대동강’‘오동동 타령’ 등
- 직접 작곡, 가창한 히트곡 다수

- 환도조치 때도 부산 굳건히 지켜
- 가수 발굴 등 대중음악 붐 선도

1950년대 초반 6·25전쟁의 피란시기에 부산은 도시 규모가 한 순간에 100만 명 규모로 팽창됐다. 가장 절박한 것이 먹고 사는 문제였지만, 고단한 삶을 버티게 하는 심리적 위안도 반드시 필요했던 시대였다. 노래만이 서민의 애환을 달래줄 도구였다.

6·25 피란시절 부산에서 음반제작자와 작곡자겸 가수로 활동했던 한복남(오른쪽)과 가수 손인호.
날 저문 어느날 저녁 송도 바닷가를 한 청년이 술에 취해서 혼자 거닐며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고 있었다. 일제치하 말에 발표된 그 노래는 히트를 하지 못했는데 그 노래를 절절히 부르는 걸 보면 필시 실향민의 한 사람이었다.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던 이가 있었다. 평안남도 안주 출생의 한복남(韓福男·1919~1991).

본명은 한영순(韓永淳)이다. 그는 고향에서 ‘일광양복점’이라는 가게를 꾸려가던 재단사였는데 대중음악을 몹시 즐기며 심취했다. 1942년 이동연예대에 입단해서 자신이 만든 ‘빈대떡 신사’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광복 직후 서울로 내려와 여전히 양복점을 열고 가창과 작곡에 심취해 있었다. 1947년 작곡가 김해송이 조직한 KPK악단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어 ‘빈대떡 신사’와 ‘저무는 충무로’ 두 곡을 불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격동의 시절,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는 가족과 부산으로 내려왔다. 절박한 궁핍으로 힘들게 들고 왔던 재봉틀까지 국제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국제시장은 피란민이 갖고 온 온갖 물건을 거래하던 곳이어서 도떼기 시장이라 불렸다. 한복남은 시장을 돌다가 기이한 물건을 발견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RCA 빅터사 제조의 녹음기였다. 축음기 부품과 음반을 재생하는 바늘도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는 대로 사 모았다.

양복재단사는 축음기 부품과 바늘을 판매하는 장사꾼으로 바뀌었다. 제법 수입이 쏠쏠해지면서 서구 아미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동사무소의 빈 공간을 어렵게 빌려 녹음실을 만들었다. 장비는 국제시장에서 구입해온 미제 녹음기였고 방음 장치는 출입문에 둘러치는 미군 담요와 가마니가 전부였다. 이런 어설픈 환경에서 음반을 만들었다. 음반 제조에는 무른 재료를 압축시키는 프레스가 필요했는데 그게 없으니 대용품으로 참기름 틀을 빌려다 썼다. 일단 음반 제조사가 만들어졌으니 이름이 필요했다. 부르기 쉽고 음악적 분위기도 느껴지는 ‘도미도레코드’라 붙였다.

당시 부산에는 코로나, 스타, 유니온, 신태평 등 수십 개의 레코드회사가 난립했다. 하지만 대개 도미도레코드처럼 열악하고 영세했다. 이렇게 만든 음반에 라벨을 붙이고 막걸리를 배달하는 짐자전거에 실어 국제시장에 직접 나가서 팔았다. 남포동 광복동 중앙동 일대의 다방을 돌면서 가족이 음반과 바늘을 팔기도 했다. 그때 나온 음반이 ‘홍콩아가씨’(금사향) ‘물방아 도는 내력’(박재홍) ‘꿈에 본 내 고향’(한정무) 등이다. ‘신라의 칼’ ‘에레나가 된 순이’(한정무) 등은 직접 자신이 곡을 붙인 노래다. 신인가수 허민을 발굴해서 ‘페르샤 왕자’ ‘백마강’을 히트시키기도 했다.

한복남은 도미도레코드사 대표로서 작곡과 가창까지도 직접 하며 음반을 냈는데 크게 히트한 곡이 많았다. ‘오동동 타령’(황정자) ‘처녀뱃사공’(황정자) ‘앵두나무 처녀’(김정애) ‘한 많은 대동강’(한복남) ‘엽전 열닷냥’(한복남) ‘불국사의 밤’(현인) 등이다. 도미도레코드의 성공을 눈 여겨 지켜보던 임정수가 서구 남부민동에 미도파레코드사를 새로 열었다. 이 회사도 당시 피란시절의 대중음악 붐에 힘입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빅토리’란 이름의 자회사까지 만들어서 작곡가 백영호에게 위탁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초반 부산에서 한복남이 펼친 활동은 눈부시다. 음반제작기술과 재료 조달을 위해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 대표 이병주를 찾아가 아들과 함께 제조공장에 머물며 기술 연수를 받기도 했다. 그 아들이 나중에 작곡가로 성공한 하기송(본명 한정일)이다. 부친과 고락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대중음악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와 ‘한복남, 하기송 작곡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음반의 노래는 가수 한명숙 최희준이 앙상블로 취입했다. 한복남의 대표곡으로는 ‘나그네 밤거리’ ‘맘보타령’ ‘청춘 마도로스’ ‘전복타령’ ‘백제야화’ ‘정들자 이별’ ‘마음의 부산항’ ‘충무로의 밤’ ‘오동동 사나이’ ‘청춘등대’ ‘잊지 못할 순이’ ‘물새야 왜 우느냐’ ‘동백꽃 일기’ ‘경상도 사나이’ ‘비 오는 정거장’ 등 600곡이 넘는다.

1953년 임시수도를 서울로 다시 복귀시키는 환도 조치가 있었다. 대다수의 피란민이 부산을 떠날 때에도 한복남은 부산에서 도미도레코드사를 굳건히 지키며 줄기차게 음반을 발매하는 한편 새로운 가수를 발굴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늘날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부산시민은 1950년대 그 가혹하던 시절의 대중음악 종사자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도미도레코드와 미도파레코드사 등 음반사가 어디에 있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산시 문화담당 부서에서는 1950년대 부산에서 활동하던 대중문화의 장소와 인물, 그 활동 성과를 다시금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고 보존할 것을 제안한다. 뿐만 아니라 부산 근대가요사박물관을 설립해 당시의 자료와 이제는 거의 소멸 위기에 있는 귀중한 자료를 수집해 그 빛나는 가치를 후대에 널리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3. 3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4. 4“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5. 5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6. 6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7. 7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8. 8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9. 9[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10. 10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5. 5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6. 6靑 “우크라 ‘비공개 합의 없었다’는 거짓 발표”…해명·사과 요구
  7. 7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8. 8[속보]유시민, 이 대통령 검찰개혁 "국민 속인 것"…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9. 9[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2주 연속 상승…민주 38.7%·국힘 39.4%
  10. 10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5. 5‘사장님 퇴직금’ 노란우산, 공제·목돈 마련 든든
  6. 6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7. 7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8. 8“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9. 9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10. 10아레나 지을때까지 땅 텅텅? 임시 야외 공연장 활용안 부상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3. 3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4. 4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5. 5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6. 6‘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7. 7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8. 8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9. 9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10. 10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7. 7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8. 8[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9. 9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10. 10한국 양궁…단체전 6종목 모두 4강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디세이’ 6주 연속 1위 질주, 역대 외화 관객 수 7위 올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3일 (음 8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