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조] -라면 / 손증호
꼬불꼬불 인생길도 그대와 함께라면
미운 정 고운 정에 묵은 정도 곁들여서
김치만 얹어 먹어도 후룩후룩 잘도 넘네.
유교의 영향으로 한자로 수용된 ‘정(情)’은 특정한 개념 하나로 못을 박기 어려운 말이다. 정을 표방하며 국민과자로 군림한 초코파이와 더불어 1960년대 산업화 초기 우리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라면’ 역시 같은 맥락의 스토리를 장식했다. 라면의 원조를 두고 중국이네 일본이네 하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라면은 단연코 김치와 곁들인 라면일 것이다. 김치가 빠진 라면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라면으로 확장되었다. 귀한 쌀밥의 대체음식으로 출발한 라면은 한국 근대사에서 질곡의 삶을 함께 한 소울 푸드(Soul food)의 전형이다. 다 같이 없이 살 때 나눈 우리는 정을 주고받았고, 설령 받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 하지도 않았다. 정이란 인간의 관계망을 자로 잰 듯 칼로 무 자르듯 서구의 매몰찬 일회적인 외부 타력의 수용이 아니다. 배고팠던 시절 ‘미운 정 고운 정에 묵은 정’을 듬뿍 담아 ‘후룩후룩’ 목구멍을 지나간 꼬불꼬불한 김치라면 한 그릇의 철학을 기억하고 싶다.
(안수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