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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3> 서울 ‘서서갈비’

서서 먹으면 어때, 드럼통 연탄불에 굽는 소갈비집 줄까지 섰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3-15 19:54:0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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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후 마포·신촌서 유래
- ‘마포 종점’ 버스·택시 운전기사
- 목재상·노동자·대학생들 단골
- 바쁜 시절 서서 먹는 문화 정착

- 서울 기본 고깃값의 60~70%대
- 상추 같은 채소·식사 제공 안해
- 양념장 고추 마늘 고추장이 전부
- 불편하나 독특 ‘미래유산’ 등재

서울에는 서서 먹는 소 갈빗집이 있다. 서울 마포, 신촌 지역에 터를 잡고 영업하고 있는 ‘서서갈비 식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갈비를 서서 먹는다는 데도 오후 3, 4시쯤 이른 시간대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서서갈비의 상차림은 단출하다. 양념장, 고추장, 고추 등만 제공 한다.
‘서서갈비’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마포지역에서 6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이다. 드럼통 연탄불 앞에 서서 구워 먹는 방식의 소갈비를 말한다. 말인즉슨 ‘서서 먹는 갈비’라고 ‘서서갈비’라는 음식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 ‘서서갈비’를 파는 식당의 독특한 영업 방식은 싸게 양을 많이 주는 대신 빨리 먹고 가라고 드럼통 불판 앞에서 서서 먹게 한다는 것. 그런 불편함 속에서도 제대로 된 소갈비 맛 때문에 지금도 서민들에게 큰 사랑을 얻고 있다.

주위의 말을 빌자면 ‘저녁 6시 이후에는 당연히 줄을 서야 하고, 7시 이후 재주문할 때면 고기가 동이나 더 못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차려지는 기본 상차림은 단출하다 못해 소홀할 정도이다. 주문한 소갈비와 주류 외에 기본 찬은 양념장 고추 마늘 고추장이 전부다. 밥이나 된장찌개 국수 등 식사는 제공도 안 한다.

서서갈비를 찾은 손님들이 서서 음식을 먹고 있다.
식사가 안 되니 이렇다 할 반찬도 없다. 고기에 당연히 따라붙는 상추 깻잎 또한 없다. 일반적으로 입맛을 다실 반찬 하나 제공하지 않는다. 제대로 못 차려 주는 미안함 때문일까? 햇반이나 포장김치 채소 등 일정량의 개인 먹을거리 반입은 허용하고 있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서서갈비가 시작된 한국전쟁 이후 시기에도 소고기는 아주 귀했을 터이다. 아무리 미흡한 상차림에 드럼통 불판에 구워 먹는 고기라도 서민들이 넉넉하게 소고기를 먹었을 수 있었을까?

당시 인근 마포나루는 서울로 향하는 모든 물산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한때 목재상과 철물점이 밀집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을 재건하면서 제일 먼저 경기가 일어난 산업이 건설, 건축업이었다. 이와 함께 목재 수요도 급증하면서 목재상이나 목수의 벌이가 괜찮았단다. 당시 자주 드나들던 목수들이 제일 넉넉한 단골이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된 서서 갈비 원조 노포.
이와 함께 한강 변 서울교통의 종착지가 마포였다. ‘마포는 종점’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대중교통 기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소갈비 한 점에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었다. 배차시간이 빡빡한 버스 기사들이 앉을 새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서서 먹고 가면서 단골이 되기도 했단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서 60여 년을 서서 먹는 ‘서서갈비’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예전에는 고기가 질겨 잘 먹지 않았던 비교적 싼 부위였던 갈빗살을, 부드럽게 잘 재워 싼값으로 넉넉하게 팔았기에 손님들이 넘쳐났다.

목재상을 필두로 마포종점의 운전기사들, 마포 일대의 노동자, 샐러리맨에 이어 신촌 부근의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계층의 손님이 차례차례 서서갈비를 먹고 거쳐 간 것이다.

서서갈비는 드럼통 연탄불로 굽는다.
한때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을 이었던 적도 있었다. 일본인에게 서서 먹는 문화는 익숙하다. 바쁜 시간에 간단하게 먹는 음식문화, 특히 역 주변의 ‘우동 가게’나 샐러리맨들이 자주 찾는 ‘다찌노미야’라는 선술집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서서 먹는 소갈비는 없기에 매우 낯익으면서도 대단한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음식문화이다. 중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독특한 고기 문화에 매료되어 줄을 서서 먹고 가곤 했는데, 잘 될 때는 관광버스로 와서 단체로 먹기도 했단다.

‘백반 기행’의 허영만 화백은 “한 50년 전쯤에는 갈비 한 대 50~60원 정도 했다”라며 “조그마한 불판에 여러 손님이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합석문화가 이곳에서는 빈번한 일이었다는 것.

“합석해서 고기를 굽다 보면 서로의 고기가 섞일 법도 한데, 그래도 자기 고기는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집어먹는지 신기할 정도였어요.” 옛 생각에 희미한 미소를 짓는 허 화백이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고기를 굽다 보면 뒤에 온 사람이 ‘합석해도 됩니까?’ 그래요. ‘예, 한자리하시죠.’ 그렇게 술꾼들끼리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데 안 그렇겠어요?” 심지어 서너 명이 한 불판에서 구워 먹던 시절도 있었단다.

불판에 잘 익고 있는 서서갈비.
이러한 연원이 있어서일까. 오랜 역사에 서민의 구구한 사연들과 백 년을 이어갈 독특한 음식문화이기에,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100년 후 미래세대에게 전할 가치로운 문화유산을 뜻한다.

직원이 탄불을 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불빛이 빨갛다. 불꽃이 이글댄다. 달궈진 불판에 갈빗살을 올리니 고기 사이로 푸른 불꽃이 일렁인다. “치지직, 치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고기가 맛있게 익기 시작한다.

실내에는 10여 대 이상의 환풍기가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창문을 열어놓아도 자욱하게 고기 굽는 연기는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당연히 이곳에 있으면 몸 곳곳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하랴. 소갈비 냄새는 그저 달콤하기만 하고, 입 안에서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으로 아우성을 칠뿐인데.

서울 물가로 치자면 기본 소갈비 가격의 60~70%대.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풍미 좋은 숙성과정을 거쳐 맛이 좋을뿐더러, 독특한 음식문화에 복고풍 감성의 공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서서갈비’. 60여 년을 이어오는 단골들과 소통하며 만들어진 음식이자 음식문화이다.

이렇듯 ‘서서갈비’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스스로 지어낸 자발적 ‘네이밍’이다. 길가에 천막을 치고 드럼통 연탄불 앞에서 ‘서서 고기를 구워 먹는 집’인데 값도 싸고 맛 또한 좋다. 그런데 변변한 상호도 없다. 다시 찾고 싶어 약속을 정하려다 보니 손님들 스스로가 상호를 붙여 부른 이름이 ‘서서갈비’다.

이렇게 음식, 음식문화는 인간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주변 환경이 열악하거나 특수한 상황일 때,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독특한 음식이나 음식문화가 발현할 개연성이 높다. 마치 한국전쟁이란 환경 속에서 탄생한 부산의 돼지국밥이나 밀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서서 먹는 ‘서서갈비’ 탄생의 역사적 배경이, 우리에게는 생경하지 않고 익숙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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