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출신에도 부산 테마 노래
- ‘마도로스 부기’ 등 잇따라 히트
- 파병군 울린 ‘잘 있거라 부산항’
- 부산 공연 중 숙소서 즉흥 제작
- 당국 1966년 왜색 짙다며 탄압
- 활동 금지 조치 1986년에 풀려
지난 10일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5층 컨퍼런스홀에서는 특별한 행사 하나가 열렸다. 부산항발전협의회가 주관하고 부산해양수산청, 부산항만공사가 주최하는 행사 ‘부산 최초 바다를 열다-부산포개항 615주년, 근대 개항 146주년’이었다. 1407년 조선 태종 7년의 부산포 개항을 기준으로 설정한 뜻 깊은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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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마도로스 복장으로 열창하는 가수 백야성. |
부산포 개항 축하공연이 있었고, 부산세관박물관장의 ‘부산포 개항의 의미’와 필자의 ‘한국 트로트의 고향 부산’ 특강도 있었다. 한국 최초의 국적선사 첫 여성선장인 전경옥 씨와 부산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항만 관계자 및 공로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흐뭇한 자리였다.
이날 꼭 감사패를 받아야 할 분이 있었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가수 백야성(白夜星, 본명 문석준, 1934~2016)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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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있거라 부산항’ 노래가 수록된 백야성의 음반 재킷. |
백야성이야말로 부산과 부산항 발전을 위해 평생 동안 불철주야 노래로 헌신해 온 공로자이다. 서울 출생이지만 전생의 고향이 부산이 아닌가 착각이 들만큼 부산 노래, 특히 마도로스를 테마로 한 노래를 많이 발표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백야성을 ‘마도로스 노래의 황제’라 부른다. ‘마도로스 가수’ ‘가요계의 마도로스’란 별칭도 있다. 그의 앨범 재킷은 마도로스복장을 갖춘 멋진 모습으로 많은 가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백야성의 노래를 부르다 심취해서 마도로스가 된 사람도 있을 정도다. 부산 테마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적지 않지만 백야성이야말로 부산을 지극히 사랑하고, 스스로 정신적 고향이 부산이었다며 공공연히 밝혔던 분이었다.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서 태어난 백야성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무척 좋아하고 심취했다. 서울에서 고교 재학 중에 공군 사병으로 입대했고 군복을 입은 채 1958년 가요콩쿨대회에 출전해서 입상했다. 그 대회는 오아시스레코드의 전속가수 선발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함께 입상한 여성가수가 나중에 이 씨스터즈의 멤버가 된 김천숙이다.
당시 백야성의 데뷔곡은 ‘마음의 이별’ ‘왜 왔느냐’ 등 두 곡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의 작곡가 이시우로부터도 곡을 받았지만 히트하지 못했다. 백야성이란 예명은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지어주었다. 이재호는 자신의 곡 ‘귀향선’을 연습시켰지만 어떤 연유로 발표도 하지 못했다. 작곡가 김초성의 ‘무전타향’ ‘왜 왔느냐’ ‘낙타야 가자’ 등도 발표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1950년대 말 백조가극단에 입단해 무대공연 중 우연히 도미도레코드 대표 한복남에 발탁됐다. 그때부터 백야성의 화려한 시간이 펼쳐지게 된다. 이를 보면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인연이란 게 따른다는 확신이 든다. 이후 발표한 ‘마도로스 부기’(1960) ‘잘 있거라 부산항’(1961) ‘항구의 0번지’(1962) 등이 잇따라 히트했고, 백야성은 단숨에 인기가수가 되었다. 특히 ‘잘 있거라 부산항’(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은 1965년 월남 파병으로 부산항을 떠나던 맹호부대, 청룡부대 용사들이 울면서 이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불렀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아~ 잘 있거라 부산 항구야 /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 /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잘 있거라 부산항 1절’.
이 노래는 백야성이 부산에서 공연 중일 때 숙소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함께 출연했던 무대동료 코미디언 백금녀가 생일을 맞이해서 파티를 열었는데, 서영춘과 배삼룡이 즉석에서 가사를 짓고, 김용만이 곡을 붙였다고 한다. 후에 작사가 손로원이 최종적으로 가사를 다듬었다.
이를 기점으로 백야성의 발표작은 주로 항구와 마도로스를 테마로한 노래가 많았다. 백야성이 발표한 마도로스 테마 노래는 ‘마도로스 부기’ ‘마도로스 도돔바’ ‘마도로스 맘보’ ‘마도로스 기타’ ‘마도로스 폴카’ ‘마도로스 스윙’ ‘마도로스 센터’ ‘마도로스 탄식’ ‘마도로스 사랑’ ‘마도로스 삼총사’ 등 30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마도로스 센터’(1965)란 노래의 가사에는 부산항 3부두 건너편의 선박용품 판매소와 외항선원 휴게실로 이용되던 장소의 풍경 묘사가 담겨 있다.
극장과 일반 무대 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된 백야성의 가수생활에도 그늘이 끼기 시작했다. KBS에 출연해서 ‘향수의 나그네’ ‘마도로스 부기’ 등 2곡을 불렀는데 왜색 가요를 송출했다며 담당 PD가 시말서를 쓰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 뒤 백야성의 모든 방송출연은 금지됐다. 작곡가 나화랑의 문하에 들어가 민요, 신민요풍의 노래를 불렀으나 이번에도 왜색 창법이라며 또 다시 금지되고 말았다. 1966년 예술윤리공연심의위원회(예륜)가 발족하면서 백야성의 노래와 모든 가수활동이 금지됐다. 한 사람의 가수에게는 울분과 피눈물을 강요하는 파쇼적 조치였다. 백야성은 가수활동을 접고 사업계로 진출해서 일을 했다.
1983년 가수 현철이 ‘못난 내 청춘’(백야성 원곡)을 리바이벌로 불러서 히트시키며 백야성의 이름이 다시 소환됐다. 그가 다시 무대에 서게 된 것은 1986년 해금 조치가 내려진 직후이다.
백야성의 발표 곡은 90장의 음반과 350곡의 가요가 있다. 가수 김용만과 명콤비를 이루어 듀엣으로 발표한 음반도 있으며 주로 서민적 생활 감성을 다룬 친숙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특히 부산을 테마로 한 노래는 아주 많다. 가수 백야성은 분명히 부산이라는 문화적 토양과 환경이 배출한 대중예술인이다. 부산과 부산항 발전을 위해서 평생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가수 백야성을 부산과 시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