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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4> 김점미 시인의 시집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

길 위에서 쓴 詩 … 그가 걸어온 지난 시간의 발자국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2-13 20:12:3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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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교지 편집 경험 되살려
- 교사 발령 전까지 편집자로 일해
- 부임 초엔 영화에 푹 빠져 살다가
- 어머니 권유로 2002년 시인 등단

- 집 주변 산책로 거닐며 창작 활동
- “계절마다 바뀌는 풀과 꽃을 보며
- 시 쓸 수 있어 언제나 감사하죠”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없었던 그의 지난 시간’이 궁금했다. 그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자신만의 시간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엿보는 과정이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는 마음일 때가 많다. 특히 시를 읽을 때 그렇다. 문을 활짝 열어 두지는 않았지만 작은 틈으로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시다.

김점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를 읽을 때도 그랬다. 처음 만난 이후 몇 년에 한 번씩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의 마음결은 미처 볼 수 없었다.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간을 더듬어보았다. 김점미 시인을 부산 해운대 장산 호수공원에서 만났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 호수공원에서 김점미 시인을 만나 그가 즐겨 걷는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그림과 영화, 그리고 시

김점미 시인은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3년 남짓을 빼고는 부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림과 책을 좋아했던 그는 학창 시절에 미술반과 문예반 활동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반짝이는 바다를 보면서 저걸 어떻게 그리나 고민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한 붓질 기법을 표현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인상파 화가의 표현기법이었어요. 뭔가에 빠지면 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제 나름대로 길을 찾아가는 아이였지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지 편집에 참여했는데, 그 시절의 열정은 대단했다. 단발머리 소녀 김점미는 교지를 제작하는 인쇄소 직원들 곁에서 활판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궁금한 건 물으며 제작의 재미에 빠졌다. 급기야 식자공들 틈에 끼어 식자를 뽑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한글이 거꾸로 각인된 납 활자, 활자로 찍어낸 책을 쓰다듬으면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 그런 매력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그는 대학에서도 교지를 만들었다.

부산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3년 남짓 서울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하고, 편집하고,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좋았어요. 그 일은 제게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죠. 만약 교사 발령이 더 늦어졌다면 계속 그 일을 하다가 어쩌면 출판사를 차렸을지도 모르죠.” 발령을 받아 부산으로 돌아온 김점미는 30년 넘게 고등학교 독일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를 잘 쓰는 선배로 만난 터라, 그는 필자에게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시인이었다. “바쁘게 살았다고나 할까요. 학교 생활도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영화에 푹 빠져서 영화 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프랑스 문화원의 예술영화관 단골이었고, 발령 초기에는 당시 영화학도들과 함께 영화 소집단인 ‘빛과 소리’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영화에 빠져 있던 그 당시에는 온전히 시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아직 결혼을 안 했으니, 너도 언니처럼 시를 쓰면서 살면 덜 외로울 것 같구나. 어릴 때부터 너도 글을 곧잘 쓰지 않았니’라며 저를 걱정하셨어요. (그의 친언니가 김상미 시인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어 짬짬이 써두었던 시 몇 편을 골라 응모했고, 2002년에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했어요. 어머니는 다행히 그 모습을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그의 첫 시집 ‘한 시간 후, 세상은’은 2013년에 나왔다. 그 시집으로 제7회 요산창작기금을 받았다. 그 시기에 김점미 시인은 부산시교육청에서 펴낸 교과서(교육부 인정도서) ‘고등학교 독일어권 문화’ 책도 출간했다. 꼬박 2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얼마나 빠듯한 시간을 보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그의 열정이 먼저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것은 어느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충실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 있다.

■ 길 위에서 쓰는 시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 김점미 /산지니 / 2021
시집 ‘오늘은 눈이 내리는 저녁이야’는 사랑과 기억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여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시인이 보내온 시간 속에 가라앉아 있는 이야기들이 천천히 떠올라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파문을 일으킨다. 필자 안에 잠들어있던 시간도 깨어나 다시 흘렀다.

‘행복한 도서관’이라는 시에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학창 시절 추억이 살아났다. 이런 구절이 있다. ‘개성도 생각도 다양하여 누구도 소홀하지 못하는 방에서 / 각기 다른 가방 꾸리며 떠나는 여행지 / 여기 세상 한켠이면서 세상 전부이고 / 동양이면서 서양이고 / 오늘이면서 내일이고 / 현재이면서 과거이고 /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모여 / 나른한 오후의 담소 즐기는’. 도서관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이 시가 말해준다.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야겠다!

김점미는 길 위에서 시를 쓴다. 걸으며 시를 쓰고 돌아오는 길, 어떤 이미지는 고스란히 남아서 시가 되고 또 어떤 이미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잠든다. 발걸음을 멈추고 앉아 스마트폰에 찍었기에 남은 것들도 있다.

시인이 즐겨 걷는 길을 함께 걸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에는 해운대 장산 호수공원에 이르는 생태천 산책로가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다. 산책로를 오르내리는 인근 주민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여유롭고 편안한 표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올라 도착한 호수공원에는 햇살이 환하게 내려 추위를 잊을 만큼 따뜻했다.

시집 속의 산문 ‘내 속에 상영 중인 아주 특별한 영화 한 편-시인의 시작법’ 한 대목을 읽으며, 길 위에서 시를 쓰는 김점미 시인을 상상해본다. “산책 중에 생각한다. 나는 아주 멋진 산책로 옆에서 살고 있어 언제라도 운동화만 신으면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생태천을 산책할 수 있다. 내가 늘 감사하는 그 길, 계절에 따라 풀과 꽃이 바뀌고 들풀이 무성한 곳, 햇살 아래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총총거리며 함께 걷는 그 길 위에서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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