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선비 전형이 남긴 사행록
- 명필로 인기… 군중 몰고 다녀
- 日 접대법·풍속 등 생생히 담아

선비 전형(全滎, 1609~1660) 선생이 쓴 ‘해사일기(海槎日記)’는 ‘통신사 사행록 번역총서’(기획 허경진·출판 보고사)의 일곱 번째 책이다.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학술서를 이번 주의 책으로 꼽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지난해 9월 24일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2021 조선통신사 해신제가 열리고 있다. 해신제는 통신사 일행이 일본으로 출항하기 전 안전과 임무완수, 항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올린 제례의식이다. 국제신문 DB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자료는 부산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조선 조정은 통신사(通信使)를 전기 8회, 후기 12회를 합쳐 모두 20회 일본에 파견했다. 많을 때는 500명이 넘었던 통신사 일행이 출발하고 돌아온 핵심 근거지가 지금의 부산이다. 부산문화재단은 통신사 기념사업을 다양하고 체계 있게 펼친다.

전형의 ‘해사일기’가 가진 독특한 가치를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전형은 1636년 병자년 통신사에 능서관(能書官)으로 참여한 뒤 그 체험을 담아 ‘해사일기’를 썼다. 그런데 ‘능서관’ 직책은 통신사 역사에서 딱 한 번 등장한다. 전형 이전에도, 이후에도 안 나온다고 한다. “능서관이라는 직함을 띠게 된 것은 그를 데려가기 위해 (1636년 통신사의 정사) 김세렴이 특별히 이 직책을 주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12쪽)고 이 책을 번역하고 해설한 구지현 선문대 국문학과 교수는 추정했다. 전형의 ‘해사일기’는 정사·부사·종사관 등 ‘사신’의 눈이 아닌 “일반 사행원의 눈에서 일본 사행을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문헌”(15쪽)이기도 하다.

전형이라는 인물 자체도 관심을 끈다.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전형은 사행 도중 일본 전역에 글씨로 명성을 날렸다. 김세렴은 그의 사행록인 ‘해사록’에 ‘서화’를 구하는 왜인들이 밤낮으로 모여들어서 박지영 조정현 김명국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였고, 김명국은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왜인들이 전형의 서법을 가장 귀중하게 여겼다.”(12쪽) “자줏빛 옷을 입은 사람이 전형이라는 소문이 돌아, 자줏빛 옷을 입은 역관 윤정우가 전형으로 오인받았고 통역이 열심히 설명한 끝에 간신히 군중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사행원들이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13쪽)

전형은 일본에 다녀온 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합천에서 지내다 52세에 생을 마쳤다고 하는데, 이런 일화도 남겼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김세렴이 조정에 아뢰어 벼슬을 주고자 하였으나, ‘남아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원대한 공을 세우려는 뜻을 장대하게 하고자 하여 동쪽 바다 만 리를 관광하였는데 이것으로 관직을 얻으려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하며 사양했다.”(10쪽)

전형의 ‘해사일기’는 그의 문집 ‘두암문집’에 실릴 때부터 하권이 유실된 상태였다. 그래서 짧다. 이 책에서 일기에 해당하는 본문은 70여 쪽밖에 안 되며, 기간으로 치면 병자년(1636년) 9~11월뿐이다. 공간으로 따지면, 고향에서 출발해 창녕 밀양을 거쳐 부산에 왔다가 대마도와 규슈를 지나 오사카까지 간 기록뿐이다. 책의 나머지는 원문과 영인된 본문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내용이 풍부하다. 일반 사행원이던 그는 겪은 일을 세심하게 기록했다. 일본 쪽이 접대를 어떻게 했고, 우리 쪽 구성원 면면은 어떠하며, 일본 풍경과 풍속의 특징이 무언지 예술가이자 선비다운 눈매와 호기심으로 관찰했다. 당시 부산의 군사 효용과 활용법에 관한 토로는 그가 실질을 중시하는 기상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한다. 세키가하라전투를 직접 봤던 조선 역관 강우성과 유명한 외교관 홍희남도 생생하게 등장한다. 1763년 통신사 정사였던 탁월한 행정가·학자인 조엄의 ‘해사일기’와 함께 읽을 만하다. 전형 선생은 전호환 동명대 총장의 12대 조부이다.(국제신문 2021년 12월 24일 자 칼럼 전호환의 두잉 세상 ‘서예의 향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