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
-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씨
- 열사 부모 넘어 투사 된 이들
- 그들 별세로 한 시대 저물어
- 민주화 외친 지난 시대 열망
- 세상 변했다고 잊혀선 안돼
- 세대 ‘단절’ 아닌 ‘융합’ 이뤄야
지난 9일 배은심 여사가 향년 82세로 광주에서 별세했을 때, 부산에 사는 박정애(74) 시인은 페이스북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2018년 7월 28일 향년 89세로 타계한 박정기 어르신과 배은심 여사가 생전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박정애 시인은 박정기 씨의 동생이다. 박정기 씨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다. 1965년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난 박종철은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며 민주화운동을 하던 1987년 1월 14일 독재정권 경찰의 고문을 받다 숨졌다.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다. 19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이한열은 연세대 경영학과에 다니며 민주화운동을 하던 1987년 6월 9일 독재 타도 시위 맨 앞줄에 섰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이 숨골에 박혀 숨졌다. 박종철 이한열은 87년 민주대항쟁의 불씨가 돼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를 선사했다. 두 사람 모두 재수해서 대학에 갔고, 형제가 많았으며, 가정은 평범했다. 한국이 팽창과 성장을 준비하던 1960년대 중반 흔한 가족 풍경이 이들 삶에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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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자리를 함께한 박정기(왼쪽) 선생과 배은심 여사. |
■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공통점이 또 있다. 아들이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희생된 뒤, 박정기 배은심은 그저 슬픔에 갇혀 있지 않았다. 아들들이 가고자 한 길, 지키고자 한 가치를 깨달았다. “이부자리에 누우면 철이가 고문을 버티고 버티다 최후에 가슴속에 간직한 게 무엇일까 생각했지. ‘아들을 생각하며 한 치 부끄러움 없이 싸워나가자’ 다짐하면서 잠들곤 했어.” (송기역 지음 ‘유월의 아버지 - 박종철이 남긴 질문, 박정기가 답한 인생’ 157쪽 박정기 씨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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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한열 열사 영정을 곁에 두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은심 여사. |
그런 과정을 거치며 박정기 배은심 씨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가꾸는 절박한 과제에 눈을 떴다.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이던 박정기 씨도, 광주의 가정주부였던 배은심 씨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이자 민주주의를 가꾸는 일꾼의 길을 평생 걷게 된다. 거듭난 것이다. 20대 초의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들들이 가고자 했던 바로 그 길이다. 박정기 배은심 씨 모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대표를 맡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는 숱한 현장에서 싸웠고 사람을 보듬었다.
배은심 씨는 아들 이한열과 남편 이병섭 씨가 잠든 광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장례는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렀다. 2018년 박정기 씨는 아들 박종철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장례는 ‘우리들의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 민주시민장’으로 치렀다. 모두 80대 나이에 돌아가셨고 유월의 아버지 박정기, 유월의 어머니 배은심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 남았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 두 사람은 각별한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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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만난 박정애(오른쪽) 시인과 배은심 여사. 박정애 시인 제공 |
박정애 시인은 박종철 열사의 고모다. 얼마 전 새 시집 ‘바다 악사’를 냈다. 이 시집을 계기로 그를 만난 자리에서 배은심 박정기 씨에 관한 기억을 물었다. “두 분은 각별한 동지였다. 몇 해 전 광주 오월문학제 때 내가 망월동 묘역 한열이 묘소에 가서 꽃을 갈고 있는데 배은심 여사가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빠(박정기) 장례식 때 배은심 여사가 애도하던 모습도 선명하다.”
‘유월의 아버지’에는 “유가협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박정기·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배은심”(189쪽) 같은 표현이 곧잘 나온다. 박정애 시인이 한 마디 톡 보탰다. “그런 자유와 민주를 새 시대에는 더 잘 가꿔야 하지 않을까요?” 박 시인이 보여준 배은심·박정기 씨 사진과 이 말 한마디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의 설을 맞으며 성묘하는 마음으로 두 사람을 떠올린 계기가 됐다.
■ 출렁이는 것만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말에 이런 것이 있다. “태어나 보니 민주화가 이뤄진 세상이었다.” “태어났더니 경제가 발전한 나라였다.”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났고 유전자에 IT(정보통신기술) DNA가 새겨진 세대다.” 그러니 아예 다르다는 취지다. 이런 분석과 의견이 얼마 만큼 타당한지는 알기가 참 어렵다. 2000여 년 동안 인류가 반복해온 앞세대와 뒷세대 사이 자연스러운 차이일까? 아니면 진짜로 아예 다른 새 인류가 출현한 걸까? 4차 산업혁명 기세는 너무나 거세고 기술 발전 속도는 정말 빨라 세상이 지금을 기준으로 앞뒤로 확연히 쪼개지고 달라질 것 같은 멀미가 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게 헷갈릴 땐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두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들이닥치는 큰 변화가 우리 사회와 세대를 단절하려는 쪽으로 향한다면, 그런 부작용을 막고 줄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하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 속 ‘위기 극복 DNA’를 깨우면 아마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함께 지키고 가꾼 민주주의와 자유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과 잊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만나야 한다. 설은 만나는 날이다. 박정애 시인의 새 시집에 실린 ‘부활의 바다’ 한 대목을 읽어본다. “…출렁이는 것만이 얼지 않는 거라고/ …/ 이 바닥을 살자면 바다만큼은 해야지…” 바다처럼 받아주고, 바다만큼은 하자. 설날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