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유린 현장 부산형제복지원
- 국가권력 비호 아래 처참한 폭력
- 생존자·목격자 구체적 증언 담아

“버스를 타고 사상에 가려면 거기로 지나가야 돼. 그래서 반대 방향인 개금 쪽으로, 럭키아파트 쪽으로만 보고 간다니까. 지금도 안 봅니다. 그쪽은 꼬라지 보기도 싫어서.”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기’는 어디일까. 피해 생존자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거기’는 바로 형제복지원이다. 그들이 겪은 고난 이야기가 최근 나온 책 ‘살아남은 형제들’을 통해 펼쳐진다.

1975~1987년 부산에 있었던, 인권 파괴와 착취의 상징 형제복지원. 국제신문 DB

부산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 선도라는 명목으로 불법 납치와 감금 폭행 살인 등이 자행된 곳이다. 형제복지원 전신으로, 1960년 설립된 형제육아원의 운영 기간까지 더하면, 그 기간은 무려 27년에 달한다. 그 안에서는 실제로 살인에 가까운 폭력, 노동 착취, 성적 유린 그리고 실제 살인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사람만 513명에 이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피해 생존자 27명과 이들을 지켜본 야학교사 1명,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고 도왔던 시민사회·학계 전문가 5명의 증언은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준다.

이 책은 그 절망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전달한다. “누가 덜 맞고 누가 덜 때리고 이런 게 없다니까. 그냥 먹이사슬이야. 내가 살기 위해서 때려야 되고. 똑같이 다 맞을 때 그 고통은 … 거기 있었다는 자체가 전부 다 고통이야.” 형제복지원은 폐쇄됐지만 피해생존자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주위에 사람들이 나를 인간 이하로 보는 거라. 서류를 떼면 주소가 형제복지원으로 나온다 말입니다. 사람을 영 얕잡아 봐요. 쉽게 말하면 그게 내 인권 피해라. 그러니까 내 길이 다 막혀버린 거라.”

복지원 관계자들은 ‘입소’ 혹은 ‘수용’이라 했지만, 실상은 ‘납치·감금’이었다. 한낱 민간시설에 불과했던 형제복지원이 그토록 쉽게 불법을 자행한 것은 공권력이 이들의 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이다. 증언에 따르면 피해생존자 대다수는 집 앞에서 놀다가, 거리에서 자다가,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다가, 명절에 고향 가려고 부산역 갔다가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잡혀갔다.

공권력의 배후에는 내무부 훈령 401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라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 막강한 권력의 비호는 형제복지원의 불법을 더욱 부추겼다. 전두환 정권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국민포장(1981년)과 국민훈장 동백장(1984년)을 수여 했고, 해마다 10억~20억 원을 시설 운영비로 지원했다. 박인근 원장 개인의 추악한 탐욕과 비뚤어진 국가 권력의 합작품인 형제복지원은 그렇게 30년 가까이 견고하게 운영됐고, 그 안의 수많은 원생은 소리 없이 죽거나 다치고 병들어갔다.

현직 기자인 저자 이대진은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살아남은 형제들’이라는 기획보도를 통해 피해생존자 27인을 비롯해 목격자 6인을 만났다. 이들의 증언을 담은 기사와 동영상을 매주 한 편씩 총 33편 게재했다. 2012년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를 계기로 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기 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 책은 글로 만들어진 ‘논픽션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증언의 조각이 더 큰 사건의 조각으로 모이고, 더더욱 큰 진실의 조각이 돼 마침내 형제복지원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