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원준의 음식 사람 <47> 전북 진안 ‘애저찜’

새끼돼지 통째 푹 곤 보양식…살점 살살 녹고, 껍질 두부처럼 부들

  • 최원준 시인
  •  |   입력 : 2021-12-14 19:28:37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태어나자마자 죽은 돼지
- 차마 버리지 못해 먹기 시작
- 3대째 50년 넘은 ‘진안관’선
- 젖떼기 직전 1~2개월만 사용

- 가마솥에 2시간가량 삶아내
- 언뜻 보기엔 닭백숙 연상돼
- 초고추장에 콕 찍어 즐기거나
- 깻잎장아찌 등과 쌈 싸 먹어

- 뽀얀 육수는 진하고 고소
- 진안 특산물 인삼 등도 듬뿍
- 한약재 냄새 은은하게 퍼져
- 묵은지 김치찌개로 마무리

오죽하면 애저(哀猪)일까? 슬픈 돼지. 새끼를 잃은 어미의 애절함이거나, 새끼돼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일 수도 있겠다. 그도 아니면 인간이 자신들의 식욕을 위해 희생시킨 새끼돼지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애저’란 이름으로 발현시켰을 수도 있겠다.
먹기 좋게 해체한 애저찜이 끓고 있다.
새끼돼지를 먹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지어진 이름 애저. 원래 이름은 새끼돼지 애저(兒猪)이다. 어미 돼지 몸 속에 배태된 태저(胎猪)나 갓 태어난 새끼를 말한다. 이 애저로 만든 음식이 애저요리이다. 애저찜 애저구이 애저회 등이 있는데, 그 중 대중화 된 음식은 애저찜이다.

진안 향토요리인 애저찜 한 상. 깨끗한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래 끓여내고 진안 특산 인삼을 비롯한 각종 약재가 들어가 있다.
애저찜은 말 그대로 돼지 태내의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랜 시간 끓여내어 먹는 음식이다. 특히 전남 광주나 전북 진안에서 보양식으로 발달한 향토음식으로 전라북도 10미(味), 광주전통음식 10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에 애저 요리를 기록하고 있는데, 증보산림경제에는 ‘새끼돼지의 뱃속을 여러 가지 양념으로 채운 다음 대나무 발을 건 솥에 안쳐 푹 쪄낸 후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진안은 예부터 산세가 험해 농사가 어려운 지형이라 대신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지금처럼 양돈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어미 뱃속에서 죽었거나 태어나자마자 죽는 돼지새끼가 많았다. 이때 안타깝게 죽은 새끼돼지를 버리지 않고 식용을 하면서 시작된 음식이 애저찜이다. 먹을 것이 아쉬웠던 시절, 죽은 돼지새끼조차 쉬 버리기 힘들었을 터. 세상을 채 보기도 전에 죽은 새끼돼지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요리해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또한 잔칫날 돼지를 잡다 보면 암퇘지 뱃속에 새끼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 뱃속의 새끼까지 식용을 하면서 시작된 음식문화이기도 하다.

특히 진안은 ‘마을 동제의 제물로 새끼돼지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애저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안군 마령면 강정마을은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낼 때, 제물로 새끼 돼지를 땅에 묻어 바쳤다고 전한다. 당산제가 끝나면 돼지를 꺼내어 요리를 해먹었는데, 이때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애저찜’이라는 것이다.

고기는 초장이나 새우젓에 찍어먹는다.
그러다가 이 애저 요리가 부유층이나 호사가들의 사치스런 허례허식의 음식 또는 남성 중심의 특별 보양식으로 변질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을 중심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 그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 별미로 한상 차려 먹었던 음식이 애저요리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진안에서는 마을 잔치 때 식감이 부드럽고 영양가 높은 애저를 이용, 이가 안 좋은 동네 어르신에게 보양식으로 대접해 올렸다고 한다. 때문에 ‘접대한다’는 의미 또한 갖고 있는 음식이 애저찜이었다 한다.

진안에서 3대에 걸쳐 50년 넘게 애저찜을 만들어 팔고 있는 ‘진안관’에 든다. 진안관은 고 김영춘(1929년 생) 여사가 1946년 문을 열어 진안 향토요리인 애저찜을 시작한 곳이다. 지금은 며느리인 2대 김금주(74)씨가 물려받아,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이선형 씨와 함께 운영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가게에 미리 예약해 주문한 애저찜이 상에 오른다. 커다란 돌 냄비에 한 덩이 돼지고기가 들어앉았다. “4등분한 새끼 돼지가 통째 들어가 있다”고 김금주 대표가 설명한다. 언뜻 보기에는 마치 뽀얀 국물에 닭 한 마리 들어가 있는 닭 백숙을 연상시킨다.

묵은 김치, 콩나물 등을 넣은 애저김치찌개 육수.
깨끗한 새끼돼지를 푹 고듯 오래 끓여냈는데, 이에 더해 진안 특산 인삼을 비롯한 각종 약재에 마늘 파 생강 등이 넉넉히 들어 가 있기에 보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이를 김 대표가 선 자리에서 직접 먹기 좋게 해체하기 시작한다. 닭 백숙을 해체하듯 돼지껍질과 살이 먹음직스럽게 분리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 돼지의 살이라 그런지 야들야들해 보인다. 이 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깻잎장아찌에 새우젓 마늘 등으로 쌈해 먹는다.

우선 국물 한 술 맛본다. 진하다. 뽀얀 국물이 입에 짝짝 달라붙듯 진하고 고소하다. 인삼과 더불어 한약재 냄새 또한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기분마저 건강해지는 것 같다. 껍질을 입에 넣는다. 부드럽기가 두부와 같다. 고기도 한 점 먹는다. 육질이 부드럽고 연해 입에서 살살 녹는데 마치 연한 닭고기를 먹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나름 탄력 있고 쫄깃한 식감이 독특하다. 껍질과 살을 함께 먹으니 고소한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서로 어우러지며 조화롭다.

김 대표는 “생후 1~2개월 어미젖 떼기 직전의 새끼돼지를 사용해 애저찜을 만든다”며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가마솥에 2시간 가량 삶아내기에 육질이 연하고 부드러워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양식”이라고 소개한다.

애저찜을 다 먹고 나면 묵은 김치와 야채를 풍성하게 넣은 김치찌개 육수를 내준다. 이 육수를 남은 애저찜에 넣고 끓여내면 애저김치찌개가 된다. 깔끔한 육수에 김치 콩나물 대파 등속을 넣고 끓여내는데 애저찜을 먹고 난 후의 입안을 얼큰하고 개운하게 씻어준다. 두어 술 떠먹으니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어미 뱃속에서 죽었거나 죽어서 태어난 새끼돼지. 세상을 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새끼에 대한 슬픈 헌사의 이름 애저(哀猪). 개인적인 감흥으로는, 슬픈 마음에 지어진 이름이기에 음식 또한 애절하고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지역의 향토음식에는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당시의 생활상, 풍습들이 반영된다. 그러하기에 향토음식이 내포하고 있는 음식문화는 한 시대, 특정 지역을 널리 관통한다. 세상사 희로애락이 진하게 묻어있는 음식이 바로 향토음식이라는 뜻이다. 진안의 애저찜 또한 진안 지역 사람들의 삶을 애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독특한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2. 2위용 드러낸 기장촬영소…부산 대작영화 길 열렸다
  3. 3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4. 4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5. 5워터펌프 쏴도 안 나가는 부캉이
  6. 6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7. 7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8. 8“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9. 9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10. 10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1. 1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2. 2“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3. 3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4. 4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5. 5與 “미래기금으로 지방정부 지원 축소될 일 없어”
  6. 6‘핵잠수함 특별법’ 국무회의 통과(종합)
  7. 7[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8. 8김도읍 "청와대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증액 '선 계약, 후 특별법 반영'으로 결론
  9. 9“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10. 10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1. 1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2. 2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3. 3亞·유럽게임 대거 참가…지스타 판 커진다
  4. 4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법원 인가…정상화 첫발(종합)
  5. 5도토리 숲 언덕서 ‘휴식 한 모금’…바리스타과 겸임교수 깊은 손맛
  6. 6“기장에 양성자 치료센터 짓자…우주산업 활용도 가능”
  7. 7해양·AI 중심 ‘플라이아시아’ 내달 개최
  8. 8파생상품·해양금융 미래, 부산서 답 찾는다
  9. 9주가지수- 2026년 9월 29일
  10. 10[한 손 뉴스] 수과원, 스마트폰서 AI가 고등어 어장상황 예측 서비스
  1. 1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2. 2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3. 3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4. 4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5. 5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6. 6혈세 쓴 도시재생 거점시설 2년간 텅텅
  7. 7부산·울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명뿐
  8. 8[신통이의 신문 읽기] 친근해진 ‘부캉이’…캐릭터로 그려볼까요
  9. 9통영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조성 순항…도남권역 민자유치 속도전
  10. 10윤산터널 돌발상황, AI 실시간 감지
  1. 1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2. 2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3. 3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4. 4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5. 5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6. 6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7. 7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8. 8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9. 9‘세계 최강’ 안세영, 배드민턴 女단식 금메달…아시안게임 첫 2연패
  10. 10이소희·백하나 배드민턴 女 복식 24년 만에 금빛 스매시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부산의 기사식당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9일 (음 8월 1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