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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38> 가수 차은희의 삶과 부산 사랑

전쟁통에 전학온 서울 여고생, 몰래 가요콩쿨 나가 대상 받고 스타덤

  • 이동순 시인
  •  |   입력 : 2021-12-05 19:28:2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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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으로 피란 뒤 대중가요 심취
- 옆집 살던 아코디언 명인 심성락
- 재능 알아보고 대회 출전 권유
- 친지 반대·퇴학 무릅쓰고 가수로

- 1956년 ‘한 많은 오륙도’ 발표
- 특유 활달함에 전국서 가수활동
- 결혼·시대 변화 속 잊혀졌으나
- 원로가수로 부산가요 발전 공헌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갖고 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를 말한다. 하지만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한국현대사의 거친 파도는 한 인간을 고향에서 안정되게 살지 못하도록 떠밀었다.

부산에서 가수 활동을 이어 온 가수 차은희의 LP음반 재킷.
그 누군들 고향 땅에서 일가친척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인가. 하지만 운명의 가파른 풍파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타향으로 떠나 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적지않았다.

서울 출생이지만 평생을 부산에서 살아온 한 아름다운 가인(歌人)의 삶과 그의 활동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바로 원로가수 차은희(車銀姬, 1937~ )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집안 대대로 서울토박이였다. 조부는 종로 5가에서 여관업에 종사했다. 효제초등을 거쳐 숙명여중 1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여고를 다니다 부산 데레사여고로 전학했는데 학업을 위해 고모 가족을 따라 이주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모는 부산 남성여중 교사로 재직 중이었고, 조카의 절대적 보호자였다.

어린 시절 차은희는 우리 가곡과 대중가요에 심취했다. 하지만 엄격한 고모는 조카가 서양음악적 교양과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차은희의 가능성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코디언 명인 심성락이었다. 이웃집에 살던 심성락은 그녀의 가창력을 발견하고 가요콩쿨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음악적 욕구와 열망을 부여안은 채 차은희는 여고생 신분으로 1955년, 국제신문이 주최하는 노래자랑에 고모 가족들 몰래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차은희는 1등으로 뽑혔다. 차상은 은방울자매의 박애경이었다.

이듬해에도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가요콩쿨에 고모 몰래 출전해 최종결선까지 올랐고 마침내 최고상을 받았다. 이날 심사위원은 미도파레코드 사장이었던 가수 한복남, 작사가 야인초, 작곡가 이재호 백영호 등이었다. 특히 이재호는 차은희의 재능과 가창력에 특별히 주목했다. 이 대회의 선배가수는 남백송과 방운아였고, 후배가수는 최갑석이다.

국제신문에 최고상을 받은 차은희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면서 고모 가족들도 뒤늦게 대회 출전을 알게 됐다. 고모는 조카가 가수의 길을 가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차은희의 모교 데레사여고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풍기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움직임까지 있었다. 하지만 차은희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마침내 가수의 길을 걸었다.

이후 차은희는 부산방송국 전속가수로 출발해 미도파레코드 신신(신세계)레코드 오아시스레코드 킹레코드 등 여러 회사의 전속이 되어 가수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데뷔곡 ‘한 많은 오륙도’가 수록된 음반.
1956년 데뷔곡 ‘한 많은 오륙도’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일선의 우리 오빠’를 히트시키면서 가요팬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대구의 애호레코드사 전속으로 음반을 내기도 했고, 1958년 가을에는 서울로 옮겨서 가수활동을 이어나갔다. ‘순항선 사랑’ ‘대답 없는 추억’ ‘목포의 비가’ 등은 이 무렵의 발표곡들이다. 1960년에 발표한 ‘아내의 노래’는 원래 선배가수 심연옥의 곡이었으나 원곡 가수보다 더욱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1961년에 발표한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은 가수 차은희의 뚜렷한 개성을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했다.

1966년 결혼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이주한 차은희는 지금까지 줄곧 부산을 지키면서 부산가요사의 발전과 트로트 위상의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작사가 천봉(천상률)이 연예협회 부산지부장을 맡았을 때 차은희는 가수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가수 차은희 노래를 들어보면 선배가수 장세정 황금심 백난아 백설희 등의 노래가 지닌 음색과 창법 등 장점을 두루 하나로 통합시킨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 서울토박이로서의 분명한 발음과 가사 전달, 경쾌하고 발랄한 표현과 가창력,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활달함과 자유분방함이 차은희 노래의 특별한 개성이라 하겠다.

차은희의 대표곡은 대단히 많다. 하지만 가요팬에게 깊이 각인된 히트곡은 두께가 비교적 얇은 편이다. 그 까닭은 SP시대에서 LP로 문화적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뀐 것과 후배가수의 등장으로 활동무대가 현저히 축소된 것이 주된 이유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도 유튜브에서 대면하게 되는 가수 차은희의 노래는 매우 기품이 느껴지고 정통트로트의 격조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1950년대 후반, 한국대중음악사의 대표가수로 자리했던 차은희의 주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갈매기 우는 목포항’ ‘대답 없는 추억’ ‘순정아가씨’ ‘아베크 토요일’ ‘꽃 파는 차은희’ ‘님은 온다네’ ‘달려라 유람마차’ ‘미망인 부르스’ ‘관광버스 여차장’ ‘서울의 전차차장’ ‘추억의 청진부두’ ‘여배우 일기’ ‘캬라반의 밤’ ‘노래하는 꾀꼬리’ ‘순정의 룸바’ ‘요지경 인생’ ‘고요한 밤길’ ‘기차는 떠나가고’ ‘당신만 아세요’ ‘순정 아가씨’ ‘애수의 여인’ ‘행복을 찾아서’ ‘어디로 갈까’ ‘산사로 가는 길’ ‘첫사랑 꾸냥’ ‘야래화’ ‘청춘의 꽃서울’ ‘애수의 여인’ ‘이별의 쌍고동’ ‘요지경 인생’ ‘봄에 우는 새’ ‘님 소식’ ‘아메리카 신혼여행’ ‘서울이 가고파요’ 등 다수다.

특히 민요를 편곡한 ‘도라지’ ‘아리랑’ 등을 비롯하여 ‘망향포 사랑’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 ’항구의 무명초‘ 등의 옛 가요 리바이벌 음반도 좋은 평판을 받았다.

차은희는 결혼과 더불어 가요계와 거리를 두었고, 급격한 시대변화 속에서 소외된 가수가 됐다. 그러나 가톨릭신자로서 노래봉사를 다니고 평생토록 부산이라는 터전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가는 원로가수의 건재한 모습은 가요팬에게 존경심을 갖게 한다. 시인·가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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